상대보다 큰 장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남의 장점을 흉내만 내는 자는 무슨 일에든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즈믄해라 불린 거북의 한
통제사는 이들을 한 마디도 나무라지 않으시고 곧바로 대장선(기함)을 이끌고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보세요! 단 혼자서 적을 상대로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르 황' 천자포, 지자포, 현자총통, 황자총통을 마구 쏘았습니다. 무려 20문의 대포를 한꺼번에 터뜨렸습니다. 적들이 순식간에 대장선을 몇 겹으로 에워쌌습니다. 해류를 타고 그들은 더욱 더 빨리 다가왔습니다.
모두들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누구보다 통제사를 잘 아는 즈문해도 간이 콩알만하게 오그라들었습니다.
온화하게 웃으시며 통제사가 말했습니다.
'걱정 마라. 저들이 기함을 함부로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자, 다시 불을 뿜어라.'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통제사의 모습에 왠지 모를 용기가 솟아 다시 대장선에 탄 250명 우리 수군이 막강한 대포와 날카로운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습니다.
왜적은 조총과 화살을 쉴새없이 쏘았습니다. 통제사는 세상에서 제일 멀리 가고 가장 힘이 센 조선의 맥궁에 화살을 팽팽히 매어 침착하게 한 발 한 발 쏘셨습니다. 같이 있던 수군들도 불화살과 화살을 휙휙 쏘았습니다.
드디어 적선에 불이 붙으면서 배가 몇 척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통제사께서 손을 옆으로 가로 저었습니다. 일시 함포 사격을 중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어 돛대 꼭대기에 중군기를 매달게 하고(그건 대장선을 지켜야 하는 중군장 김응함에게, 요새 거리로 2킬로미터나 떨어져서 구경만 하던 김응함에게 빨리 다가오라는 뜻이었습니다.) '모여라' 깃발(초요기招搖旗)를 매달게 했습니다.
통제사는 이어 입에 둥글게 주먹을 대고 부는 시늉을 했습니다. 즉시 나팔수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조선의 나팔은 요새 거리로 8킬로미터도 더 멀리 퍼져나갑니다.
그러자 모든 조선 수군이 대장선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직 건재했습니다. 끄떡도 없었습니다. 무려 한 시간을(12시에서 1시까지) 거기 오로지 혼자서 버텨서 적과 싸워 당당히 이기고 있었습니다. 지금 진도대교가 놓여 있는 울돌목의 바위와 바위 사이는 120 미터밖에 안 됩니다. 거기서 대장선 혼자 막아서 고군 분투함에도 불구하고 적은 한 척도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대장부가 길목을 막으면 능히 혼자서 천 명을 상대할 수 있느니라.(일부당경 족구천부 一夫當逕足懼千夫)'라던 통제사의 말씀이 실감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건 조총의 유효 사정거리가 110미터, 우리 대포의 유효 사정거리는 웬만하면 그 두 배인 200미터(최대 사정거리는 1,000미터가 넘었습니다.)가 되었던 데 크게 힘입었습니다. 조선의 누구도 이런 보배를 두고도 이용을 못했지만, 통제사는 이를 기가 막히게 잘 활용했던 겁니다. 저 고이연 백인들이 전세계를 집어삼키는 비결이었던 19세기 말 유럽의 함포사격 전법을 무려 3세기 앞서 이순신 장군이 쓴 것입니다.
스타크래프트 작전이 기기묘묘하다고 하지만, 사실 이순신 장군이 자유자재로 구사한 전법에 비하면 실감도 안 나거니와 참 유치하지요. 공부를 죽어도 안 하는 한국인들은 이런 걸 모르니, 스타크를 순식간에 골동품으로 만들 오락 게임은 만들 수가 없지요. 그저 일본 오락처럼 두들겨 부수기만 해서 작전이랄 것도 없는 쓰레기를 만들지요. 그 결과 청소년들이 오락을 할수록 정신이 황폐해지고요.
즈믄해는 함포사격의 비법을 통제사로부터 다 들었답니다. 바보 원균은 통제사 뒤를 그렇게 졸졸 따라다녔지만, 이것 하나 깨닫지 못했습니다. 조선 일반 수군은 이미 첫 전투인 옥포 해전에서 실전을 통해 알아 버렸는데 말입니다.
육지에서는 끝내 한 장군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왜의 조총이 조선의 대포에는 무용지물임을 전혀 몰랐던 거지요. 조총 소리만 들으면 혼비백산 도망갈 줄밖에 몰랐지요. 사실대로 말하면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것은 몇 문밖에 없어서 적에게 크게 위협을 줄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태종, 세종 연간에 대포만 해도 무려 1만 문이나 있었는데, 임진왜란 당시 육지에 있었던 것은 천여 문도 안 되었답니다. 그나마 그걸 써 보지도 않고 도망가기 바빴지요.
태평 세월 흰옷을 벗고 피 빛 붉은 옷을 입은 영리한 홍의장군 곽재우가 조선의 화살이 실은 조총보다 더 멀리 나간다는 걸 알고 멀찍이 떨어져서 왜병을 여러 번 혼냈지요. 성문을 굳게 닫고 대포만 뻥뻥 쏘았으면 왜병은 영남 땅을 넘기 어려웠지요. 아예 대포를 장치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있는 대포도 쓸 줄 몰랐고요. 만들 기술자도 거의 없어져 버렸고요.
상대보다 큰 장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남의 장점을 흉내만 내는 자는 무슨 일에든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하여튼 우리 통제사는 대단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혼자서 선봉대인 31척과 대결하여 이기고 있었으니까요.
안위가 멈칫거리다가 먼저 달려왔습니다. 어찌 빨리 다가왔습니다. 아, 해류가 반대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이 다가오자 통제사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소리쳤습니다.
'안위야, 안위야! 군법으로 죽고 싶으냐? 군법으로 죽고 싶으냐? 네가 도망가서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안위는 부끄러워 즉시 적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습니다. 마구 대포와 화살을 쏘았습니다. 그러나 즉시 포위되었습니다. 그러자 통제사가 휙 날아가 구원했습니다. 새알탄(조란환鳥卵丸)을 한꺼번에 4천 발씩 쏘아댔습니다. 이어 따라온 다른 전선들과 힘을 합해 집중적으로 적의 대장선과 그 좌우의 전선에 조선 대포의 뜨거운 맛을 보여 주었습니다. 통제사의 전매 특허인 저 유명한 집중 발사의 전술(현대 경영에서 이 방법을 쓰면 '선택과 집중'이랍니다. 통제사는 이를 합력사살合力射殺이라 하셨지요.)을 썼습니다.
3척을 즉시 박살 내었습니다. 적의 대장선을 포함하여 순식간에 개미 새끼 한 마리 남김없이 다 죽어 널브러졌습니다.
이 때사 중군장 김응함이 다가왔습니다. 대장선을 호위해야 하고 대장의 명령을 전달하고 앞장서 돌격해야 하는 중군장이 이제 온 겁니다.
통제사는 외쳤습니다.
'응함아, 너는 중군장으로 어이 대장을 구하지 않느냐? 그 죄를 어찌 면하리!'
청아한 그 목소리는 위엄과 기쁨이 함께 어울려 있었습니다.
'적장이다!'
요란한 갑옷을 입은 내도(內島)란 놈이 죽어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걸 누가 발견했습니다. 누군가 갈고리로 끌어 올려 그 자의 머리를 높이 매달았습니다. 통제사는 전혀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둘째손가락을 치켜올렸습니다. 순식간에 아군의 사기는 쑥 올라가고 적의 사기는 뚝 떨어졌습니다.
아무리 전쟁의 신이라고 해도 이번에야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했던 이순신이 화려한 뒤집기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가, 적선 133척에 나누어 탄 무려 1,8000 명 왜병에게 무시무시한 공포가 먹구름처럼 뒤덮었습니다. 태풍처럼 대포와 화살이 퍼붓고 지진이 일어난 듯 전선이 흔들렸습니다. 부셔졌습니다.
'이겨라! 이겨라!'
이 때 어디선가 응원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겨라! 이겨라! 통제사, 이겨라!'
--계속--
400년 전 바다 이야기(5/6)
- 최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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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9-05, 22: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