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소수를 잘 대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풀린다.
왜 이렇게 최소한의 절개도 없어졌을까?
그것은 명분 문화에 실리 문화가 접목됨으로써 사람들이 뻔뻔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자기한테 이익만 된다면 언제든지 합칠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다. 비록 말로는 여전히 누구나 '민주주의'를 내세우지만, 국회의원이나 장관 자리가 눈앞에 어른거리면 어제의 말을 금세 취소하고 오늘의 말을 만들어낸다. 이런 일을 조금도 꺼리지 않는다.
철저한 실리파다. 누가 봐도 속이 빤히 보인다. 그래도 절대 자기가 그런 시시한 이득 때문에 당을 옮기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고 새 정치를 위해서라고 당당히 주장한다.
아무리 모순되는 말도 어찌나 머리가 좋은지 순식간에 그것들이 전혀 모순되지 않게 하나로 이어 버린다.
언제나 자기가 속한 당은 무오류이다. 여든 야든 똑같다. 심지어 일반 국민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의 당은 무오류이다. 만약 누가 봐도 틀렸다는 것이 입증되어도 그걸 음모론으로 몰아붙이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극구 변명한다.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그 동안 쌓았던 신화가 다 허물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누구건 자기가 모시는 분의 당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설령 어쩔 수 없이 인정해도 그것은 단지 우연히 잘했거나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에 의해서 그리 되었다고 장황하게 설명한다. 우연히 그 시간 그 장소에 그 사람이 있었다는 식이다.
대신 자기가 모시는 분이 한 일은 오로지 그 개인 능력에 의해서 한 일이 된다. 세계적인 지도자라서 만난을 무릅쓰고 이루어낸 일이 된다.
국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마침내 시민연대가 일어섰다. 그러나 그들도 어느 사이 흑백론의 신도가 되었다. 자기들이 하는 일은 무조건 옳고 자기들에게 반론을 제기하는 자는 모조리 반개혁 세력이다. 그런 자는 정보화 시대에 컴퓨터도 켤 줄 모르는 한심한 인간이다.
디지털 세대인 자신들에 비해 감히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모조리 아날로그 세대이다.
마침내 국민들도 정치 회오리에 말려든다. 냉소하던 국민들이 어느새 무당파(無黨派)에서 급격히 자기가 원래 지지했던 분이 지금 어디 속해 있나를 살핀 후 그 당을 열렬히 지지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누군가를 고르긴 골라야겠는데, 역시 믿을 건 자기가 원래 지지했던 분의 당이다. 아무래도 그 분이 최고로 보인다.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언제까지 흑백론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인가?
한국인이 흑백론에서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면 이 흑백론의 장점을 살려야 할 것이다. 일본과 중국이 섬나라 근성의 좋은 점과 중화 사상의 좋은 점을 살려 부활했고 부활하고 있듯이 우리도 이 흑백론의 장점을 살림으로써 그 단점이 가려지게 해야겠다.
흑백론은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 힘을 발휘한다. 전 국민이 똘똘 뭉치게 한다. 한말에는 뭉쳐봐야 아무 힘이 없었기 때문에 속절없이 나라를 빼앗겼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우리도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서 힘이 상당하다. 세계 11위 경제강국이고 아시아에서 최초로 명실상부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달성했다. 군사력도 만만찮다. 고려 초 강감찬 시대 이후 거의 1,000년만에 군사 강국이 되었다.
문제는 이 산업화와 민주화가 둘 다 미완성이라는 데 있다. 더군다나 하루 빨리 정보화로 나아가야 한다. 민주주의도 정보화 시대에 맞는 걸로 새로 만들어야 한다.
외환 위기로 나라가 백척간두에 서게 되자 한국인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한 마음으로 나라를 걱정했다. 일제히 손에 낀 반지, 장롱 속에 숨겨둔 금가락지, 금 열쇠, 금송아지 다 끄집어냈다.
세계가 깜짝 놀랐다. 자유중국 사람, 중국 사람, 일본 사람도 깜짝 놀랐다. 자기 국민은 절대 그렇게 못할 것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흑백론의 장점이다. 외국에게 나라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일제히 한 마음이 된 것이다. 왜?
외국은 악(black), 우리 나라는 선(white)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일제히 깨달아야 한다. 이대로 우리가 서로 치고 받으며 끝없이 소모전만 벌이면 머잖아 다같이 망한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정치인들도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시민연대도 다 망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언론도 다 망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경제도 초토화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안보도 일시에 허물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민도 다 망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미 깨달았을 때는 늦다는 걸 알아야 한다.
빨리 상대방의 장점부터 인정해야 한다. 더불어 자기 잘못을 고백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도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걸 서로가 인정해야 한다. 상대방의 작은 잘못은 너그러이 봐 줄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잘못은 작은 것도 용서를 빌어야 한다. 달게 죄 값을 받고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되는 순간 우리 국민은 하나가 되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어 있다.
1987년에 우린 이런 감격적인 경험을 한 적이 있다.
6·10의 분노에 놀란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위원은 서슬 퍼렇던 군사 정권의 한가운데서 무조건 항복하는 조건을 대통령에게 던졌다. 6·29 선언이 바로 그것이다.
그 후 여야 의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헌법을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도 전혀 바뀌지 않는 6공화국 헌법이다. 이 때 여야 의원들은 얼마나 사이가 좋았는지 모른다. 서로 농담을 하면서 머리를 짜내서 당시에 생각해 낼 수 있는 최고의 헌법을 만들었다.
전문가의 의견도 얼마나 다소곳이 들었는지 모른다. 함께 어깨동무하고 술집에 가서 술도 밤이 새도록 마셨다. 그리고 나서도 아침이면 끄떡없이 일제히 국회에 나왔다.
이런 화기애애한 장면은 어떤 선진국에도 없었다. 우리가 정치 능력이 절대 없는 게 아니다. 어느 나라보다 잘할 수 있다.
모두가 우리편이라는 생각만 들면 우리 나라 국민은 정말 잘한다.
신라의 화백 제도가 괜히 있었던 게 아니다. 우리는 만장일치가 될 때 가장 잘한다. 권력을 잡은 자들이 다수의 힘을 믿고 이권을 독차지하려고 하면 소수가 절대 승복을 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너 죽고 나 죽자'고 덤빈다. 법이고 뭐고 없다. 오로지 죽기 살기로 덤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소수를 잘 대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풀린다. 형님, 아우 하면서 웬만한 것은 다 눈감아 준다.
--계속--
흑백론이 한국을 망치고 있다2/3
- 최성재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6-09-21, 21: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