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에만 굴복하는 김정일 |
중국의 중재로 미국과 북한이 양자회담이 아닌 6자회담의 탁자에 앉아 다시 동상이몽의 신경전을 벌이며 시간을 벌기로 합의를 본 모양이다. 빠르면 회담 재개 시기가 2006년 11월이라니까 2006년은 그렇게 저렇게 넘어가나 보다. 하얀 손수건을 던지고 칼을 뽑기엔 아직 서로가 시간이 아쉬운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여러 번 김정일의 꼼수를 눈여겨본 부시는 미리 오금을 박는다.
“우리의 파트너 국들과 협력을 통해 현재의 유엔 안보리의 결의가 집행되도록 할 뿐 아니라 회담이 효과적으로 진행돼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팀들을 파견하겠다.”
부시는 김정일에게 ‘명예로운 항복’을 권유하고 있다. 유엔을 통한 대북제재는 조금이라도 완화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확인하고 강요하기 위한 회담임을 밝힌다. 조지아 땅콩장사나 아칸소 바람둥이에게는 꼼수가 통할지 몰라도 텍사스 카우보이한테는 안 통한다는 것을, 벼랑 끝 전술의 얕은꾀를 쓰지 말 것을 동네깡패에서 국제깡패로 인정받으려고 악을 쓰는 평양 박치기에게 경고한다.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는 동서고금의 모든 독재자가 그렇듯이 김정일도 오로지 힘에만 굴복한다. 대화는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전술이다. 자신의 힘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때에 시간을 벌어 힘을 비축하거나 상대방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려 상대방을 서서히 무력화시키기를 원할 때만, 독재자는 ‘말로 하자’며 손을 내민다. 독재자는 세상 모든 것을 죽고 죽이는 전쟁이라고 보기 때문에 상대방이 평화의 원칙으로 나올 때도 전쟁 시의 전략전술을 종횡무진으로 구사한다. 그런 식으로 국내의 정적을 하나하나 완벽히 제거하고 그 다음으로는 나라 밖으로 그 마수를 뻗친다.
월남의 적화통일에 붉은 양탄자를 깔아 준 파리회담의 교훈과 한반도의 적화통일에 이르는 에이스 카드를 묵인해 준 제네바협정의 교훈을 통해, 부시는 김정일 다루는 방법을 터득한 듯하다. 돈줄을 완벽하게 틀어막고 인권유린의 실상을 온 세상에 널리 알리면, 혼자서 팔짝팔짝 뛰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릎을 꿇고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하거나 그 전에 심복에 의해 제거될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부시가 이렇게 북한을 제대로 판단하게 된 시점은 9.11 테러 이후가 아닐까 한다. 그 몇 개월 후인 2002년 연두교서에서 그는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더불어 ‘악의 축’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정책의 변화를 예고한 후에도 미국은 민주국가이기 때문에 인도적 식량지원과 중유 제공을 그만둘 수 없었다. 때마침 파키스탄이 협조해 주었다. 어쩔 수 없이 북한이 2002년 10월에 제네바협정에는 명시되지 않았다는 형식적인 논리를 믿고 우라늄탄 개발을 자랑한 이후에 부시는 비로소 클린턴의 외교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독일이 자유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요인은 크게 나누면 2가지가 있다. ▲ 동독에 대한 철저한 상호주의와 ▲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과의 비굴할 정도의 국제공조였다. 단돈 1마르크도 동독의 인권개선과 연관되지 않은 게 없었다. 그것이 상호주의다. 민족공조란 말은 절대 쓰지 않았다. 게르만의 민족공조는 나치즘과 동의어였기 때문이고 공산주의의 통일전선에 말려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뜻에 어긋나는 짓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구서독과 서유럽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SS-20 중거리 핵탄도 미사일을 무력화시키는 전술핵(퍼싱투미사일)을 기꺼이 구서독에 배치한 것이다. 미국의 적극적인 도움과 소련의 ‘먼 산 쳐다보기’ 없이는 자유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피 흘리지 않고 자유통일을 달성하기가 불가능하다. 단돈 1달러도 북한의 인권개선에는 쓰지 않는 일방주의 때문이다. 힘없는 같은 민족을 굶기고 때리고 가두고 죽이는 독재를 부추기고 연장하고 심화시키는 데 두 눈 질끈 감고 증거 없다고 잡아뗄 테니까 걱정 마시고 알아서 쓰시라며 일방적으로 퍼주기 때문이다. 인권탄압과 테러와 전쟁을 사전에 예방하려는 UN의 만장일치 대북 국제공조에 맞서 독재와 공산주의를 묵인하고 용인하고 사모하는 민족공조를 부르짖기 때문이다.
(2006. 11.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