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자회담, 약일까 독일까 |
1975년의 베트남 적화통일과 1990년의 독일 자유통일은 남북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5천년 역사상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희대의 독재자 김일성은 70년대에 무력적화통일의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김일성 뺨치는 독재자 김정일은 90년대에 흡수통일의 공포에 시달렸던 것이다. 70년대에 위기에 처한 한국은 박정희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안보와 경제와 애국심 그 어느 면에서도 북한을 압도해 버렸다. 90년대에 세계 공산권의 몰락과 더불어, 러시아도 손을 내미는 경제강국 한국은 히틀러나 스탈린 체제보다 악랄한 공산김씨왕조를 안락사 시킬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지만, 김정일이 한국의 민주화 바람에 실어 보낸 핵개발 말풍선과 난데없이 불어 닥친 국수주의 바람에 띄워 보낸 통일전선 풍선에 마음이 혹해지면서 희망찬 21세기에 접어들자마자 얼토당토않게 한국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되었다.
김일성은 70년대를 무력적화통일의 호기로 여기고 도끼로 미군 병사의 이마를 찍어 버렸다. 과감히 도발한 것이다. 카터의 미군철수 공약과 김일성의 도발로 사면초가에 갇힌 박정희는 호랑이 굴을 눈앞에 두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몽상가 카터를 훈계하는 한편, 북한을 압도하기 시작한 경제를 바탕으로 방위산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하여 재래식 무기에서 도리어 북한을 능가해 버렸다. 아울러 그는 1978년에 카터를 압박하여 한미연합사를 발족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NATO 수준으로 만든 것이다. 여기에 전술핵도 배치하여 해마다 핵우산을 다짐 받았다. 북한이 휴전선을 넘는 순간 바로 응징하여 자유통일을 달성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중공과 소련도 미군의 핵이 무서워 감히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기세등등하던 김일성은 박정희가 한미 합동으로 미루나무를 마저 베자 멀뚱멀뚱 쳐다보며 꼬리를 내리고 정식으로 사과했다. 한국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와 안보 모두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하여 박정희가 1979년에 시해되었지만, 곧 이어 광주사태로 나라가 어수선해졌지만, 김일성은 감히 휴전선을 넘을 수가 없었다. 반공정신이 투철한 국군과 예비군이 인민군보다 우수한 무기로 무장하고 개미 새끼 한 마리 드나들지 못하도록 휴전선을 지키고 있었고, 한미연합사령부가 내심 사마귀가 수레에 덤비는 꼴인 남침을 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90년대에 북한은 한국이 70년대에 처했던 것보다 훨씬 큰 위기를 맞이했다. 김일성은 우선 당장 살아남고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굽히고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에 고분고분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김일성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약속한 남북기본합의서에 아랫것을 시켜 서명했다. 신이 난 노태우는 결정적 실수를 저질렀다. 누구의 말을 들었는지 느닷없이 남북비핵화선언을 공표한 것이다. 시인도 부인도 않는 이른바 NCND 정책을 버리고 미군의 전술핵을 몽땅 철수 시키고 핵폐기물 재처리도 않겠다고, 원자탄은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해 버린 것이다. 아마 이 때 김일성과 김정일은 얼싸안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난리 났을 것이다. 희망의 별이 반짝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 빠져 나간 핵이 다시 들어오는 것은 민주국가인 한국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50년대부터 개발해 오던 핵무기를 북한이 개발하면 한국을 도리어 흡수통일할 수 있다. 적화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
남북의 비핵화선언 이후 한국은 이미 북한의 외교 상대가 아니었다. 한국은 북한의 핵 인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북한의 외교상대는 미국이 있었을 따름이다. 시간을 벌기 위해 이 때부터 북한은 특유의 벼랑 끝 외교전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돈은 친북좌파의 문화권력에 장악된 한국의 정치권력이 어떤 명목으로든 퍼주게 되어 있어서 전혀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일이 미국의 북폭 위협보다 두려워하는 북한인권 고발은 한국의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이 물 먹일 게 뻔했고.
클린턴과 부시를 상대한 김정일의 최대 무기는 정보다. 어느 나라든 북한에 대한 정보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다. 반면에 한국과 미국에 대한 정보는 김정일은 언제든지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이든 한국이든 심지어 중국이든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는 오리무중이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친북좌파가 연이어 집권하면서 북한에 대한 정보는 왜곡과 축소와 분식의 아궁이와 구들과 굴뚝을 지나가 더욱 파악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양자회담이든, 6자회담이든 모든 것은 지난 12년 동안 김정일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었다. 저승에 가서도 철이 안 들 카터는 김일성의 손안에서 재롱을 피웠고, 스스로 바보인 줄도 모르는 진짜 바보 김영삼은 몇 대 맞고 열이 받친 아마추어 권투선수처럼 눈을 질끈 감고 마구 두 주먹을 휘두르다가 제 풀에 캔버스에 드러누웠다. 김정일은 잽 한 번 안 날리고 김영삼을 KO 시킨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순풍에 돛을 달았다. 민주와 민족과 평화의 울긋불긋한 천으로 온 몸을 칭칭 감은 선수가 연달아 링에 올라와 싸울 것 없다며 알고 보면 친구라며 같은 편이라며 상대방 선수에게 손을 내밀고 그를 끌어안을 뿐 아니라 응원 나온 사람들을 전부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연전연승하는 상대방 선수에게, 불세출의 천재 선수에게 박수를 유도한 것이다.
아마 미국도 한국의 친북좌파 나무가 얼마나 뿌리 깊고 그늘이 큰지 잘 몰랐을 것이다.
북한인권도 북한의 조직적 국제범죄도 정확히 몰랐을 것이다. 알았어도 그것을 외교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상당히 주저했던 것은 틀림없다. 이제는 어느 정도 미국이 북한을 파악한 듯하다. 북한이 UN의 대북인권결의안과 미국의 금융제재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6자회담의 결의를 헌신짝같이 버리고 도리어 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하고 핵실험을 강행한 후에 중국까지 나서서 석유와 식량으로 압박하자, 못 이기는 척 다시 미국을 농락하고 시간을 벌고 한국의 대북 지원에 대한 명분을 쌓아 주기 위해 크게 인심 쓰듯 회담하는 척하는 것을 보고 김정일 집단이 어떤 집단이고 한국의 권력이 누구 손에 쥐어 있고 한국인의 정신이 얼마나 몽롱해져 있나를 미국은 비로소 깨달았을 것이다. 아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못 된 짓을 일부러 더 많이 저지른 자가 단지 회담장에 나오겠다는 것뿐인데, 금융제재를 일부 푼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말이 벌써 솔솔 흘러나오고 있으니까.
지금까지 미국을 상대로 벌인 북한의 외교는 승승장구했다. 때마침 오사마 빈 라덴과 사담 후세인도 김정일을 간접적으로 크게 도와 주었다. 부시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놓아 주지 않았던 것이다. 부시는 중동의 사막 한가운데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부시의 약을 살살 올리며 치고 빠질 시간적 여유가 아직 김정일에겐 제법 있다는 말이다. 최소한 1년은 번 셈이다.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아프리카의 사바나에서도 남미의 아마존에서도 히말라야의 설산에서도 휴대폰이 터진다. 비밀과 거짓은 금방 들통 난다. 이제 어떤 나라도 시대를 거꾸로 살 수는 없다. 적극적으로 시대의 파도를 타고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느냐, 거역하다가 일시에 익사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중간은 없다. 김정일처럼 정보의 문을 단단히 닫아걸고 약삭빠르게 정보를 역이용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유태인 탄압보다 더 악랄한 인권탄압은 극심해지고 아무 죄 없이 민중이 그렇게 고통을 당한 만큼, ‘하늘도 놀라고 땅도 놀랄 그 날’에 독재자와 그 일당과 혹세무민하는 자들의 고통이 심해진다. 미국의 쓸모 있는 바보들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진검 승부의 날은 머잖아(어쩌면 1, 2년 안에) 도둑같이 찾아올 것이고 그 날에는 미국도 한국도 ‘음향과 분노’가 천지에 가득 찰 것이다.
6자회담이 이번에도 남북의 정권에겐 약이 되고 북한의 주민과 한국의 정통우익과 우방에겐 독이 될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정반대가 될 것이다. 한국의 친북좌파도 진검 승부의 날엔 유태인 학살을 사주하고 방조하던 게르만족처럼 평생토록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수시로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 할 것이다. 설령 김정일이 3일천하에 성공하더라도 베트남의 적화통일 후에 베트콩의 운명이 그러했듯이 그들이 제일 먼저 처형되거나 수용소로 끌려갈 것이다. 토끼사냥이 끝나면 예로부터 쓸모없는 사냥개는 죽여서 삶아 버렸던 것이다(兎死狗烹).
(2006. 1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