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떼법으로 사회권력마저 장악한 그들 |
이 치안력이 무너진 사회는 더 이상 국가가 아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장소로서 변하여 주먹이 늘 법을 앞서기 때문이다. 국가가 해체 단계에 들어가면 늘 이런 일이 발생한다. 그러면 이윽고 내란이 발생하거나 외환이 덮쳐 극심한 고통 후에 새로운 국가가 탄생한다. 이런 과정에서 강성하던 나라가 영원히 소멸되는 수가 많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는 각종 시위가 정권의 비호를 받으면서 나날이 그 강도가 세어졌다. 모택동의 조반유리(造反有理)가 연상된다. 정치권력과 코드가 같은 사회권력이 의도적으로 경찰의 치안력을 약화시켜 떼법으로 법률을 무력화시키고 국민정서법으로 헌법을 사문화시키고 있다. 경찰은 코드에 관계없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정치권력의 뜻을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평생 진리로 믿어 의심치 않고 지켜온 상식에, 국제표준이 된 건전한 상식에 반(反)하는 명령을 받으면 몸은 가더라도 마음은 따로 놀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공산독재체제에서 아직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북한의 정치권력이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를 파괴하기 위해 내려 보내는 간첩을 잡던 사람에게 고위층이 그 간첩을 통일일꾼이라며 보호하라고 간접적으로 명령하거나 은근히 협박하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코드를 맞추더라도 성심성의를 다할 수가 없다.
이 때 내미는 것이 바로 시위대의 구호와 죽창이다.
“독재자의 시녀 시절이 그리운가! 새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수구보수 관료주의의 타성에 젖어 있도다!”
만약 이 때 법의 수호자로서 경찰이 가차 없이 주먹에 수갑을 채우면, 민주시민 탄압이라고 시위대는 길길이 뛰고 정치권력은 슬그머니 수갑을 벗겨 버린다. 합법적 평화시위는 날이 갈수록 불법폭력시위에 밀려난다. 떼법의 위력은 무시무시해진다. 법정에 가서도 묵비권과 잡아뗌과 소란과 거짓으로 떼법은 법률을 허수아비로 만든다.
목소리 크고 깃발 화려하고 배짱 좋으면 시위대는 승승장구한다. 경찰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알고서 이제는 술주정뱅이도 경찰서에서 행패 부리는 것이 예사다. 친북좌익 사회권력은 바로 정치권력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청와대의 비서진과 정부의 위원회는 이들의 독무대다. 친북좌파 시민단체는 2006년 노골적으로 미군철수를 부르짖은 평택의 불법폭력 시위로 한국 사회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경찰을 넘어 군대까지 오합지졸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군인을 패는 시위대! 이건 국가 반란이다! 신라 왕의 입김이 경주 부근에만 머물던 후삼국 시대에도 보기 드물던 일이다. 놀라운 것은 국방장관의 태도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군인을 보고 이성을 잃지 않았다고 잘했다고 칭찬했다. 불법폭력시위에 내성이 생길 대로 생긴 국민은 덤덤히 받아들이거나 혀를 몇 번 찼을 뿐이다. 최근에 법원에서 죽은 줄 알았던 정의의 여신이 행동대원 몇 명에게 솜방망이를 휘두른 모양이다. 아마 그들은 그걸 도리어 빛나는 민주애국 훈장으로 여길 것이다. 국회의원 정도는 따 논 당상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사회권력은 노조와 시민단체와 위원회가 장악하고 있다. 코드는 친북좌파다. 노조위원장은 세계적 대기업 총수의 내부 정보를 흘려 한 눈으로 찡긋 검찰에 넘기고, 시민단체의 어른은 경찰청장과 육군참모총장의 모자를 손짓 한 번으로 벗겼다 씌웠다 하고, 위원회는 뒷짐을 지고 창밖을 내다보며 장관의 입을 청와대 ‘부’대변인의 ‘꿀’입으로 바꾼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여기까지 왔다. 단지 대선으로 정권 한 번 바뀐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들이 들고 일어나 1년 365일 ‘민주’ ‘민족’ ‘평화’ ‘통일’ 시위를 벌이면, 과연 새 정권이 정상적으로 국가를 경영할 수 있을까.
(2006. 11.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