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지명관 선배가 노무현 씨의 2003년 대통령 취임사 준비위원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작 놀랐다. 池明觀 교수는 내 마음 속에 항상 가깝게 느껴지는 양심있는 학자이다. 개인적으로는 평양고보의 선배이기도 하다. 그는 군사독재 하에서 나와 비슷한 고생을 한 그런 사실 때문에 한국에 살지 못하고 일본으로 피신하여 어느 여자대학의 교수직에 오래 있었다.

근년에는 만나서 이야기 할 기회도 없었는데 나는 어느 날 신문을 보고 지 선배가 노무현 씨의 2003년 대통령 취임사 준비위원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작 놀랐다.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대선 때 노무현에게 표를 던져주었다는 말인가. 철없는 1천명의 젊은 학생들이 노무현을 지지했다는 말보다 한 사람의 지명관 교수가 노무현에게 표를 던졌다는 사실이 하도 기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 그 취임사에 무슨 말을 써주었기에 노무현이라는 자는 저 꼴이 된 것인가.

그런데 지 선배가 과거에 했던 일 보다도 최근에 그가 했다는 말이 나로 하여금 더욱 분통을 터뜨리게 한다. “국민에게 버림 받은 것을 탈권위라고 말하면 되나”라느니 “정치개혁은 대통령이 한 게 아니라 역사의 흐름”이었다느니, 또는 “가장 나쁜 건 민주평통발언 같은 것이며,(그런 발언 때문에) 미국에 골치 아픈 정권으로 돼버렀다”라는 비판의 소리를 듣고 지 선배의 말이 때가 늦었을 뿐 아니라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느끼는 한국인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도 사람 볼 줄을 몰랐다는 것인가. 그런 사람을 지 교수나 지 교수 주변에서 밀어주었기 때문에 나라가 이 꼴이 되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http://www.kimdonggill.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