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스탈린, 네루, 모택동, 김일성, 박정희, 등소평--
이들은 얼핏 보기엔 아무 관련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경제정책에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국가 주도로 경제개발계획을 실천에 옮긴 최고권력자다. 경제개발계획을 실행한 순서는 위에 나온 대로이다. 그러니까 경제개발계획은 스탈린이 원조다. 공산주의자 스탈린을 따라 공산국가만이 아니라 비동맹 국가에서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후진국들은 다투어 경제개발계획을 밀어붙였지만, 이들 중 성공한 지도자는 박정희와 등소평뿐이다. 왜 그랬을까?
위에 든 6명 중에 네루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다. 그를 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계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를 이끌면서 경제자립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치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도모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듣는다. 과연 그럴까?
네루의 딸인 인디라 간디에 이어 그녀의 아들 곧 네루의 외손자인 라지브 간디마저 총리로 재임 중 암살되자 10억 인구를 이끌 국가 지도자가 네루 가문에서는 한 동안 나오기 힘들게 되었다. 때마침 소련이 붕괴하자, 비동맹이면서 친소 국가였던 인도는 1991년에 1930년대의 세계적인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위기에 봉착한다. 암담했다. 이 때 나타난 사람이 바로 흐리멍텅하게 생긴 70대 노인 나라시마 라오 총리였다. 그는 한 시크교도에게 경제를 일임한다. 그가 바로 한국의 남덕우요 중국의 주용기인 현 총리 맘모한 싱이다. 결과는 대성공! 이후 인도는 세계최대 거지 국가에서 세계최대 소프트웨어 국가로 탈바꿈한다. 세계 최초로 3차 산업에서 2차 산업으로 2차 산업에서 1차 산업으로 '내리 발전'하는 신기하고 무서운 국가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미국 다음은 중국, 중국 다음은 인도라는 예측이 굳이 미래학자가 아니더라도 이제 보통 사람도 가능하다.
1961년 박정희, 1978년 등소평, 1991년 라오--한국과 중국과 인도는 1995년 무렵만 해도 국가 발전 단계가 이 세 지도자가 등장한 햇수만큼 차이 났다. 그 때만 해도 중국은 한국보다 대략 20년 뒤떨어졌고 인도는 30년 뒤떨어졌던 것이다. 국가 지도자의 역할은 그토록 중요하다. 등소평과 라오는 정치안정을 바탕으로 한 경제발전을 도모했는데, 방법은 박정희를 거의 그대로 베꼈다. 대신 한국은 거꾸로 90년대부터 인도의 네루 또는 북한의 김일성을 본받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이것이 한국의 최대 화두였다. 네루와 김일성도 날마다 부르짖던 이념이다.
김일성은 희대의 독재자였지만 인민민주주의야말로 진짜 민주주의라고 총칼로 위협하고 언론을 동원하여 죽는 날까지 우겼고, 소련군의 일개 대위(꺼삐딴) 주제에 스탈린과 모택동에게 애걸복걸해서 전쟁을 일으켜 동족을 300만이나 학살하고도 민족해방의 구세주임을 2천만에게 세뇌했다.
네루는 독재는 않았지만, 무능했다. 착한 겉똑똑이였다. 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함으로 해서 인도의 3000년 악습을 전혀 바꾸지 못했다. 불가촉천민(달리트)이 땅을 더립힌다고 침을 담을 턱받기 옹기를 달고 다니고 발자국으로 더럽혀진 땅을 쓸기 위해서 엉덩이에 빗자루를 달고 다니는 행위만 법률로 금했을 뿐, 민주를 내세워 정치 권력을 잡아 부정부패를 일삼는 정치 깡패와 사기꾼이 득세하는 봉건 카스트 사회는 거의 바꾸지 못했다. 인도는 세분하면 카스트는 5계층이 아니라 무려 3천여 계층이 있었다.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관습은 네루 가문이 약 40년간 인도를 통치하던 내내 거의 그대로 존재했다. 이것이 어벙하게 생긴 라오 총리가 집권하면서 급속히 변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30년만 더 흐르면 인도는 카스트 제도가 거의 유명무실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민주 국가로 변신하게 될 것이다. 60년대만 해도 엄연히 존재하던 한국의 양반과 상놈 제도가 경제개발과 더불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한국이 좋은 예이다. 라오가 알게 모르게 박정희를 구루(스승)로 모신 건 3000년 인도 역사의 대혁명이다. 그에 비하면 네루는 일개 계몽군주에 지나지 않았다.
박정희는 어떻게 민족의 최대 원수 중 한 명인 스탈린이 시작한 경제개발계획을 과감히 가져와 세계 최고 부자 나라 미국과 일본의 비웃음을 사면서 한강의 기적을 낳았을까.
한국의 지식인은 너나 없이 제1공화국이 초안하고 제2공화국이 기획한 경제개발정책을 그대로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며 박정희의 경제 기적을 폄훼한다. 누구든지 할 수 있었다고 강변한다. 그들은 그러면 왜 제2 공화국의 경제개발계획과 빼다 박은 경제정책을 쓴 네루와 스탈린과 모택동은 수천만 명을 굶겨 죽였는지 모른다. 그들이 주장하는 경제정책을 거의 그대로 쓴 중남미 국가들이 왜 100년 이상 독재와 빈곤에 시달렸는지 모른다. 기껏 말한다는 게 미국의 음모론이다. 종속론이다.
박정희도 처음에는 경제를 거의 몰랐으니까, 계획만 대충 세웠을 뿐 실천은 엄두도 못 냈던 이전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을 그대로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그 계획은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깨닫자마자 그는 원래 계획을 180도 뒤바꿨다. 여기에 바로 박정희의 위대함이 있다. 그는 끊임없이 성장했고 끊임없이 깨달았고 깨달으면 바로 실천했다. 그 깨달음의 첫 해가 1964년이다.
2차대전의 종식과 더불어 제국주의가 서방 선진국에서는 이미 용도 폐기되었지만, 식민지의 쓰라린 경험 때문에 제국주의의 음모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가공의 제국주의에 대한 '고슴도치' 전략이 바로 네루와 모택동과 김일성의 민족주의다. 그들은 자연히 자립경제를 최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된 지 얼마 안 되는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이든 장면이든 경제정책의 목표는 자립경제였다. 그래서 공산권이든 제3세계든 대체산업 및 국영기업 육성과 보호무역 고수는 경제정책의 불문율이었다. 뜨거운 애국심만 있었지, 경제를 몰랐던 박정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3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고슴도치 경제계획은 아니함만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슴도치 경제계획 대신 수출산업 육성(개혁)과 자유무역(개방)의 늑대 경제계획으로 호랑이와 사자와 독사가 득실거리는 경제 정글로 박정희는 한국의 산업전사들을 달랑 방물장사의 보따리만 하나 들려서 사정없이 내몰았다. 세종대왕 이래로 500년간 잠들었던 한국인의 야성에 불을 질렀다.
이 때부터 그는 경제기획원과 상공부의 장관을 제대로 뽑아 하나같이 장수 장관으로, 청사에 길이 빛나는 명 장관으로 키웠다. 아니, 극진히 모셨다. 그들의 아이디어와 말을 원도 끝도 없이 들어 주고 밀어 주었다. 그 이전에는 그도 별 수 없었다. 경제기획원 장관은 평균 5개월마다 바꾸었고 상공부 장관은 평균 7개월마다 바꿨다. 김영삼 정부 이래 지난 15년이나 다를 바 없었다. 대통령이 중심을 잡으니까, 기라성 같은 장수 장관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기영, 박충훈, 김학렬, 태완선, 남덕우(이상 경제기획원 장관), 박충훈, 김정렴, 태완선, 최각규(이상 상공부 장관)--박정희에게 개혁개방의 묘책을 가르쳐 준 사람은 박충훈 장관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경제기획원 장관과 상공부 장관을 넘나들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박정희는 여기에 각각 1967년과 1969년과 1971년부터 최형섭과 김정렴과 오원철을 KIST 소장(후에 과기처 장관)과 비서실장과 경제2수석으로 임명하고 1978년 12월 또는 1979년 10월 26일까지 과학기술과 경제 전반과 공업을 주도하게 만들었다. 그 후에도 무수한 난관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일 중독에 빠진 이들 장관을 위시한 여러 세계적 인재들의 도움을 받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18년 동안 세계제일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박정희는 그렇다고 해서 서방 세계의 위대한 경제학자들이 권고하는 대로 곧이곧대로 한 게 아니다. 국내의 해외 박사들이 한결같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지도 않았다. 그는 구름 잡는 이론과 지식을 따르지 않고 손에 잡히는 현실과 상식을 따랐다. 그는 우선 국내 기업을 키웠다. 터무니없이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하나하나 목표를 달성했다. 그 결과 처음에는 가발, 합판, 섬유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에서 석유화학, 철강업, 조선, 전자, 자동차 산업 등 자본집약적이고 기술집약적인 중화학공업을 독일, 일본 이후 세계 최초로 미국과 당당히 맞서는 대기업을 일궜다. 국내의 학자와 정치가와 경제인만이 아니라 세계의 학자와 정치가와 경제인의 충심 어린 충고와 염려스러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적이다!
박정희는 반드시 시차를 두고 국내에 한 업종에 2개 이상의 기업을 키웠다. 그렇게 국내서 치열한 경쟁을 하게 만들고 곧장 해외로 진출시켰다. 사자와 호랑이가 득실거리는 정글로 굶주린 늑대와 영리한 여우를 과감하게 풀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커진 기업은 적극적으로 주식시장에 상장시켰다. 그런 식으로 기업들이 자본을 조달하게 하는 동시에 사실상 대부분의 주식을 국가와 사회에 환원하게 만든 것이다.
박정희는 자본도 기술도 자원도 없는 세계 최후진국에서, 곧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경제개발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선행시키고 동행시킨 게 2가지 있다. 그것은 법률 제정과 교육 입국이다. 정치 안정을 바탕으로 그는 항상 경제계획을 추진할 수 있는 법률을 먼저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경제활동이 편법이나 불법이 아닌 합법적인 행위가 되도록 그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또한 경제의 밑바탕은 인력이라는 것을 알고 교육에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기능공과 기술자를 키우기 위해 공고와 공대를 대대적으로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매년 50만 개 내지 10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자 상대 출신들도 물 만난 고기처럼 활기를 띠었고, 인문대 자연대도 대학 졸업장만 손에 쥐면 어디든 취직이 되었다. 국졸, 중졸 산업전사를 위해서는 산업체 부설학교도 개설하여 주경야독하는 그들에게 정규 학교와 똑같은 학력을 인정했다.
박정희는 도시와 농촌의 소득격차가 커지자 새마을운동을 일으켜 농민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그들의 야성에 불을 질렀다. 70년대 말에는 도농간의 소득을 역전시키기에 이르렀다. 박정희는 농촌마다 마을회관을 건설하여 거기서 거의 날마다 자치적으로 마을 전체가 다 함께 잘 살도록 만드는 건설적인 회의를 거듭하게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혼자 다 한 듯이 기고만장하는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집권한 이후의 국회보다 10배는 더 나은 민주주의도 농촌마다 뿌리 내리게 했다.
박정희는 처음부터 환경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공장들은 대부분 오염을 가장 덜 일으키고 수출하기도 좋도록 임해공업단지를 조성하여 거기에 건설했다. 그래서 오늘날 중국의 환경오염을 보면 알겠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산업화 초기에 오염이 적었다. 환경보전의 입장에서 보아, 박정희는 무엇보다 산림녹화에 성공했다. 박정희 덕분에 전국에 깔려 있던 민둥산이 모조리 푸른 치마를 입었다. 한국은 현재 산림면적비율이 63.8%로 핀란드 75.5%, 스웨덴 73.5%, 일본 68.9%에 이어 당당 세계 4위다. 여기서 나오는 산소는 4800만의 가슴을 뻥 뚫리게 해 준다. 5위는 캐나다인데 45.3%로 우리나라에 한참 뒤진다.
박정희의 산업화는 인정하지만 그를 독재자로 매도하는 데 서슴없는 사람들이 한국의 지식인 중에는 '억수로' 많다. 그들은 자신을 가장 객관적인 사람으로, 가장 똑똑한 사람으로, 가장 양심적인 사람으로 확신한다. 나는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눈 먼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온 몸으로 겪고도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6·25의 상흔과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한 1960년대와 무장공비가 청와대까지 쳐들어오고 월남이 적화된 1970년대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지도자가 누군가. 김대중인가, 김영삼인가, 백낙청인가! 시대상황과 정치수준에 맞추어 정치적 자유를 일부 제한한 것을 독재라고 한다면, 선거 천국에 거지 왕국을 만들고 3000여개에 이르는 카스트 제도를 온존시킨 네루는 어떻게 민주주의자라 할 수 있는가. 박정희와 더불어 공산국가에서는 처음으로 경제개발계획을 멋지게 성공시킨 등소평은 비록 경제는 일으켰지만 천안문에서 비무장 학생과 노동자를 탱크와 총으로 진압하고 13억 인구 중에 야당을 단 한 명도 인정하지 않았는데, 어찌 그를 보고는 독재자라고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가. 박정희는 등소평에 비하면 민주의 화신이다. 동족을 300만이나 학살하고 경제개발한답시고 결국 300만을 굶겨 죽이고 2천만 북한 주민에게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말할 자유, 생각할 자유마저 주지 않은 김일성에 비하면, 박정희는 타는 대지의 봄비요 옥에 갇힌 춘향의 이도령이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한국의 민주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자유민주요 또 하나는 자유민주를 사갈시하고 파괴하려는 김일성 부자와 이심전심하는 위장 민주다. 내가 보기에는 여기에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김영삼 식 민주주의다. 이를 신봉하는 무리들은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자로 확신하지만 기껏 '선거'민주주의 곧 군부의 입김 없이 선거만 하면 그것이 곧 자유민주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은 조선시대의 입신양명에 무의식을 저당 잡힌 봉건주의로 일관하면서 권력의 칼을 정의의 칼이라며 마구 휘둘러 시대에 역행하는 악법을 양산하여 전국민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만드는 자들이다. 이들은 현재 박정희를 독재자로 가차없이 매도하면서 박정희 시대에 한 번이라도 데모한 적이 있는 사람이면 백두산처럼 우러러보며 민주동지로 부모형제보다 가깝게 여기고, 그 민주동지가 정권을 잡으면 유연한 상호주의에 입각하여 핵 폭탄과 미사일로 위협하는 김정일에게 두 '햇볕' 정부보다 더 화끈하게 퍼 주는 것을 진보와 개혁과 평화라고 당당히 외치는 자들이다. 한 길 사람의 마음을 전혀 헤아릴 줄 모르는 이들은 위장 민주세력에게 자기도 모르게 이용당하고 있다.
(2007. 7.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