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이미 나라를 두 번 살렸다

박근혜는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자유민주의 불씨를 되살렸고, 대통령의 대연정 제의와 개헌 밀어붙이기를 일장춘몽으로 만들었다.

 이명박이 이겼고 박근혜가 졌다. 둘은 나란히 단상에 올라 한 손에는 꽃을 들고 한 손으로는 서로 맞잡고 각자 뜻이 다른 웃음을 지었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다들 박수로 화답했지만, 한 웃음은 작은 내상을 일시에 치유하는 웃음이었고 다른 웃음은 30여 년 만에 일생 중 세 번째로 큰 내상을 입고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이슬 한 방울 안 내비치고 잔잔하게 피워 올린 백의종군의 웃음이었다.  

 박근혜는 난파된 열두 척을 가까스로 수습하여 천여 척을 거느린 적에겐 승승장구했지만, 번갈아 차륜전을 펼치는 8명의 적장을 상대로 40전 40승했지만, 나라의 운명을 건 최후의 일전을 앞두고 아군 이명박과의 지휘권 인기 투표에서 1.5% 차이로 무너졌다. 잠시 한쪽에 모셔 두었던 천막당의 지휘봉은 이명박의 손에 쥐어졌다. 박근혜 상승 장군은 이제 이등병도 아닌 무등병(無等兵) 신세다. 꽃다운 20대에 5년 간격으로 누구보다 사랑하고 존경하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피묻은 옷을 눈물로 빤 것으로 가혹한 시련이 영원히 끝나는 줄 알았지만, 박근혜는 절정의 순간에 스스로 물러나 지휘권에 대한 신임을 묻다가 천만뜻밖에도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다행히 박근혜가 떨어지는 순간 거대한 민심의 물이 솜처럼 받쳐 주어 오른손이 좀 부은 것 외에는 외상이 전혀 없다고 한다. 소신은 굽히지 않되 몸을 낮추고 기다리면, 빠르면 1년 (2008 총선) 안에 늦어도 5년 안에 다시 지휘봉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18년을 기다려야 했던 지난번에 비교하면 이번은 아주 짧은 시간이다. 그만큼 나라가 한 해 앞을 내다보지 못할 정도로 위태롭다.

 박근혜는 국민들이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나라를 2번 구했다. 한 번은 2004년 4월 15일이었다. 그 해 3월 12일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백두산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하루도 못 넘기고 바로 그 날 저녁 거센 역풍에 휘날려 동해 깊숙이 익사한 날이다. 건국 이래 거의 한 해도 빠짐없이 여야가 대략 동수를 이루며 팽팽히 맞선 한국의 국회에서, '무조건 찬성과 무조건 반대'가 가장 큰 불문율로 자리잡고 있는 한국의 국회에서, 어떠한 안건이든지 3분의 2 찬성이라는 건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환상의 수치였다. 그것도 조선시대 왕보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을 불신임하는 안건에서 여야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한다는 것은 절대 권력자 왕이 상대 권력자 수상에게 권력을 물려 준 영국의 명예혁명에 버금갈 한국의 명예혁명이었다. 한국에도 민주주의가 드디어 명실상부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절호의 계기였다. 그러나! 국회에서 즉시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뒤집어질 쿠데타가 한줌밖에 안 되는 대통령당에 의해 일어났다. 친위 쿠데타였다. 그 가관이란!

 3분의 1에 훨씬 못 미치는 자들이 국회를 물리력으로 장악하자마자 방송은 그들의 나팔수로 기꺼이 나섰다. 그 날로 한국의 국민은 들을 귀와 볼 눈만 있었을 뿐, 말할 입이 봉해졌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무법천지였다. 저 60년 동토의 산하 북한과 조금도 다를 것 없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민주주의의 불씨를 되살린 민주 투사가 바로 박근혜다. 20석을 간신히 바라보던 상황에서 그녀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비바람 새고 햇볕이 뜨거운 천막을 치고 때로 손수 김밥을 싸서 전국의 땅을 한 걸음 한 걸음 밟기 시작했다. 그녀의 유일한 무기는 가녀린 오른손이었다. 짜라투스트라의 의지로 하루 2시간씩 자며 퉁퉁 부은 손을 내밀며 그녀는 낮은 속삭임으로 유권자의 영혼을 울렸다.

'대한민국을 살려 주세요. 민주주의를 살려 주세요.'

 눈과 귀를 사로잡는 방송에 의해 일시적으로 세뇌된 국민이 그녀만 나타나면 거짓말처럼 우르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결과는 121석!
급조된 여당은 자신만만해 하던 개헌선인 3분의 2를 차지하지 못하고 과반수를 살짝 넘겼을 따름이다. 그게 어디냐고 그들은 환호했다. 하여간 이로써 한국의 민주주의 나무는 비록 여린 모습이었지만 되살아났다. 이후로 국민은 재보선 선거와 지방자치선거에서 압도적으로 박근혜의 천막당을 밀어 주었다. 유신공주, 독재자의 딸, 이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박정희를 관에서 끄집어내어 수시로 매타작을 해도 국민은 표로써 민주는 박근혜라고 민주는 더 이상 노무현도 김대중도 아니라고 엄숙히 선언했다.

 박근혜는 해방 60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 공당(公黨)을 만들었다. 그 이전은 민주 사당(私黨) 또는 대통령당에 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박근혜는 계보를 만들지 않았고 민주를 팔아먹고 사는 자들에게 황금 알을 낳는 닭이었던 공천권(대주주의 100% 지분)을 깨끗이 포기했다. 민주주의 원칙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지만, 민주의 화신을 자처하는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후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공천권을 박근혜는 깨끗이 포기했다. 그로써 그녀는 부메랑을 맞아 이번에 이명박에게 졌지만, 스스로 세운 천막당의 민주 원칙인 만큼 깨끗이 승복했다. 그것은 사실상 자기 자신에게 승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박근혜의 나라 구하기는 또 한 번 있었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자다가 봉창 두드리기 식 대연정 제의와 막무가내 식 개헌 밀어붙이기를 옷고름 한 번 흩트리지 않고 은장도 한 번 번쩍이지 않고 초절정 무공고수가 소리 없이 대마두의 혈도를 짚듯이 조용히 일장춘몽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사이에 국가보안법을 수호하고 사학법을 지키기 위해 추운 겨울에 장외투쟁한 공도 있지만, 그것은 간신히 되살린 자유민주의 불씨를 맨몸으로 지킨 것이었다. 그러나 대연정 제의와 개헌 밀어붙이기는 이름만 다를 뿐 결국 똑같은 것이었거니와 대한민국의 헌법을 고려연방제에 적합한 헌법으로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는 의미에서 국가를 백척간두의 위기에 세우는 망국의 대흉계였다. 국민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대한민국은 존망의 기로에 섰던 것이다.

 박근혜 상승 장군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대연정 제의는 청와대에서 서희도 놀랄 담판으로 좌절 시켰고, 개헌 공작은 천막당이 비바람에 찢어지기는커녕 몸집을 점점 늘려서 국회 의석의 과반수에 육박하고 지방자치단체를 대부분 장악하자 아무리 국정홍보처가 예산을 펑펑 써도 결국 용두사미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 때까지 한 번 마음먹으면 이루지 못한 것이 없는 고집불통 노무현이었지만, 민주주의의 원리원칙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천막당의 대표에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노무현의 집념은 무섭다. 박근혜에게는 두 번이나 좌절했지만, 그는 북으로 눈을 돌려 김정일을 움직였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김대중이 그렇게 애원했지만, 끝내 들어주지 않았던 2차 남북정상회담을 양보 또 양보로 기어코 성사시킨 것이다. 일차 크게 속은 국민의 반응이 어느 정도 환상에서 깨어나 미적지근하지만, 어차피 51%만 결집하면 되니까, 대한민국의 반을 떼어 주더라도 아까워하지 않고 1997년과 2002년의 세력은 다시 뭉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자유민주의 거룩한 땅에서 어느 날부터 인민민주를 포용하는 민족주의의 지성소로 굳건히 자리잡은 광주의 불행을 대한민국 문화권력자들의 입맛대로 각색한 <화려한 휴가>로 이미 저들은 여론 바람몰이에 들어가서 민주와 평화에 대한 금난전권(禁難廛權)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아직 대표주자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에 맞서기는 지난한 일이다. 5년, 10년 전보다 결코 쉽지 않다. 박근혜가 이번에 천막당의 지휘봉을 쥐었더라도 희망은 할 수 있으되 자신할 수는 없다. 그만큼 저들은 무섭다. 어떤 의미에서 박근혜는 본의는 아니었지만 바위처럼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이왕지사 푹 쉬면서 내상을 치료하며 재충전할 좋은 기회다.

 옛날부터 구국의 명장을 구하기는 전쟁의 신 마르스를 지상으로 모셔오는 것만큼 어렵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여의었을 때처럼 하얀 옷을 입고 있는 박근혜 무등병은 목숨만 부지하고 있으면, 그 사이에 천명을 헤아리고 실력을 더 쌓으면서 때를 기다리면 나라가 다시 부를 날이 올 것이다. 시대가 완고하고 악하여 박 다르크를 내치고 스스로 불구덩이에 들어가겠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007.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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