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보다 달콤한 만인의 절대평등을 내세운 공산전체주의자의 사상전은 공산권이 자체 모순에 의해 신기루처럼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전 세계에서 자체의 동력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마음껏 누리는 건강한 나라에서는 건강한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병균이 오히려 면역력을 키워 주는 데 도움을 주듯이 공산 세균은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건강하지 못하거나 어리뻥뻥하는 나라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공산전체주의자는 김정일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카스트로가 아직 살아 있긴 하지만, 그는 공산주의자이되 전체주의자라고 하기엔 순진하고 착하다. 제한적이나마 개혁개방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공산국가 중에서 권력을 세습한 독재자는 김정일뿐이다. 왜 그랬을까. 내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합작하여 ‘완벽한’ 전체주의 공산왕국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개혁개방의 싹이 될 성부른 자는 삼족을 멸하고 삼대에 걸쳐 완벽하게 사회와 격리했기 때문에 감히 고개를 쳐들 자가 없었던 것이다. 세계 어디서나 가장 자유스럽고 낭만적인 집단인 대학생도 북한에서는 청춘남녀로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애 한 번 하다가 들켜도 바로 퇴학이다. 대학생도 개인행동은 일체 용납되지 않는다. 식당에도 반드시 오와 열을 맞추어 함께 가야 한다. 방학도 여름겨울 다 합해서 3주밖에 안 된다. 모든 강의에는 반드시 김일성과 김정일을 학습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대학 재학 중 6개월간 군사 훈련도 받아야 한다. 10년간 군대복무한 자도 예외가 없다. 졸업 후에도 당에서 명령하는 대로 취직해야 한다.
대학생이 이러니, 일반 국민들은 오죽 하겠는가.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고발하고 비판한다. 날마다 주마다 달마다 어김없이 치르는 생활총화는 천주교인이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하듯 한 점 의혹 없이 자신의 죄를 만들어서라도 까발려야 한다. 자신의 죄를 고해성사할 필요 없는 유일신은 딱 한 명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조리 무소부재(無所不在)한 유일신 앞에 한 점 의혹 없이 죄를 고백해야 한다. 만인이 감시하고 통제하기 때문에, 곧 그것이 유일신의 눈과 귀이기 때문에 털끝만한 죄도 숨기면 즉시 들통 난다.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는 방안의 벽 위에서든 몸의 가슴 위에서든 부모나 자식의 생명보다 귀중히 여겨야 한다. 김일성 동상은 더욱 잘 받들어야 한다. 심지어 김일성과 김정일이 한 번 다녀간 장소도 ‘거룩하게’ 특별 관리해야 한다. ‘수령님 앉으신 데, 장군님 만지신 곳’ 이렇게 눈에 띄게 크게 써 놓고 부모님의 옥체보다 소중히 모셔야 한다.
헌법이니 노동당 규약이니 몰라도 된다. 그저 10대원칙과 교시와 말씀만 곧이곧대로 따르면 된다. 북한 주민은 완벽한 꼭두각시다. 북한 주민을 꼼짝하지 못하게 다루는 최대의 무기는 그들의 배를 움켜쥐고 발을 묶는 것이다. 굶주림과 여행 통제로 북한 주민은 모조리 잘 사육된 가축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완벽한 공산전체주의 땅이니, 수령님의 효자동이 맏아들이자 수령님과 10년 이상 공동통치한 장군님이 대를 이어 혁명과업을 이룩하겠다는 데 감히 반대할 자가 나올 수 없다.
전체주의자들은 대외적으로 제국주의자의 음모를 질타하면서 늘 평화를 내세웠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그 누구도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 물건과 내 노예’는 때려 부수든 잡아먹든 내 마음이니까,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독재를 만끽하겠다는 뜻이다. 둘째, 어리석은 자들이 평화라는 말에 폭삭 속고서 안보 의식이 실종되어 총과 대포가 녹슬게 내버려두고 날마다 광란의 파티를 벌이는 순간 전력을 극대화하여 흐리멍텅 조는 척하면서 호시탐탐 노리다가 전광석화처럼 습격하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이 자신과 쏙 빼 닮은‘아기 천사’들을 대거 복제하겠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스탈린과 동조 그리고 후에 레둑토가 평화조약을 헌신짝같이 버린 것은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에게 속은 자만이 바보였다. 김일성도 스탈린과 모택동과 머리를 맞대어 궁리한 끝에 ‘평화와 자주’를 내세워 소련군과 미군이 차례로 철수하게 만든 다음, 미군이 태평양을 건너오는 사이에 부산까지 능히 내려갈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만에 하나 태평양에 비하면 너무너무 작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중공군이나 소련군이 언제든지 투입될 수 있다는(지리상 이점으로 북한은 중공군이나 소련군이 주둔한 것과 마찬가지) 것을 믿고 과감히 기습남침했던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한국을 상대로 벌인 사상전에서 80년대 이후 대성공을 거두었다. ‘평화와 자주와 평등과 민주’라는 미끼에 대학생과 야당과 재야와 노조가 속속 걸려들었다. 무엇보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흐뭇하게 한 것은 자생 김일성 민족의 대거 등장이었다. 이들은 공산권 몰락 이후 대위기를 겪었지만, 그것을 역이용하여 ‘순진한’ 공산주의자들을 제거하고 재야일통(在野一統)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민주로 위장하여 차츰차츰 세력을 넓혀 자신들과 생각이 거의 같은 정권을 연이어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김정일은 기사회생했고 북한주민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다시 굴러 떨어졌다. 한국의 김일성 민족이 목숨을 걸고 민 두 대통령은 차례로 김정일을 만나 ‘평화와 자주’를 역설하며 감격에 부르르 떨었다.
전체주의자의 아름다운 말은 아름다운 독버섯이다. 눈에는 즐겁지만 몸에는 치명적이다. 방송과 신문과 인터넷과 범여권의 경선장에서는 ‘평화’ 선언에 환호작약한다. 눈물을 줄줄 흘리는 순진무구한 이들도 숱하다. 정권교체를 소리 높여 외치는 야당은 꿀 먹은 벙어리다. 거기에도 '평화와 자주’ 민족이 만만찮다는 반증이다. 약간의 희망이 보이는 것은 이미 한 번 속은 적이 있는지라, 염려의 목소리가 작으나마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소리가 마왕에게 잡혀가는 어린애의 외침처럼 애처롭기만 하다.
(2007. 10.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