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평화주의자는 자기기만에 빠진 교만한 위선자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의 박대를 받으면서도 북한에서 똑바로 수행하고 온 하나의 정치적 책무는 바로 '사이비 평화세력의 평화통일 공세를 강력하게 전개한 것'이었다. 남한에서 민주와 평화와는 거리가 먼 언동을 보여준 노무현이 북한 김정일을 만나서 북한에 서부전성을 포기하는 내용을 가진 그럴싸한 남북한 평화선언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노무현이나 김정일이 말하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북한 주민을 억압한 폭력과 사기를 한반도에 확산시키자는 집권 좌파세력의 수작에 불과하다. 한국인들은 오늘날 집권 좌파세력이 말하는, 평화, 통일, 통합, 개혁, 미래 등의 단어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집권 좌파세력의 어용방송에 선동되어 입에서 평화와 통합을 함부로 말하는 자들은 거짓에 세뇌되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자해하는 멍충이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집권 좌파세력에게 포로되어 고생하고 있는 '평화'와 '통합(통일)'이라는 단어를 살피면서, 사이비 평화주의자들의 본색을 한번 따져보자.
세상에 평화(peace)보다 더 많이 찬양받는 단어도 더물 것이다. 특히 한국의 방송에는 평화라는 단어가 가장 자주 사용된다. 오늘날 배가 부르면서 넘치는 성욕을 해소하기 위하여 사랑이라는 단어가 평가절하되더 온 세상에 난무하지만, 그래도 평화는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흔한 인사로 통용되었다. 사랑이나 정의보다 사실은 평화(샬롬, 안녕)이라는 단어가 여러 문명권에서 인사로 사용되어 왔다. 사랑과 정의는 배부른 뒤에 생각할 단어에 가깝지만, 평화나 안녕은 생존권과 안전권과 같은 더 최소한의 기본권에 관련된 단어이다. 그래서 평화 혹은 안녕(안보)은 사랑이나 정의보다 더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신경을 써서 고민해야 하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말이 남용되어 평가절하(devaluated) 되었듯이, 평화라는 말도 오용되어 가치가 폭락되었다. 평화라는 단어가 제 뜻을 가지지 못하는 가치가 혼란된 나라는 반드시 폭력과 사기와 전쟁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평화라는 단어가 사이비 평화주의자들에 의해 사기당하는 사회에는 전쟁이 몰려오기 마련이다.
한 사회의 정치현상은 그 사회의 가치(신념체계)가 만들어내는 부산물이다. 가치체계가 전도되면, 거꾸로 된 사회가 된다. 조지 오웰이 소설 동물농장에서 잘 그려낸 것처럼, '평화가 전쟁, 자유가 억압, 진실이 거짓'을 지칭하는 가치전도가 일어난 사회집단은 의사소통이 전도되고 교란되어 모든 사회정치적 상황이 최악의 지옥상태가 되는 것이다. 한 사회에서 질서와 평화가 깨어지고 전쟁이 발발하게 되기 이전에, 그 전제조건으로서 먼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의식과 양심이 미쳐있는 경우가 많다. 한 사회 구성원들이 정신이 혼미하고 가치가 전도된 상태에 도달하면, 사회의 지적, 도덕적, 법적, 제도적 혼란과 갈등이 고조되면서, 끝내 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하늘(필자는 무신론자)은 무력적 충돌과 폭력을 준비하여 전쟁으로 진전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는 사회가치들이 많이 전도되어 있으며, 특히 '평화통일'이란 단어는 분열과 사기에 찌든 사이비 평화주의자들에 의해서 철저하게 거꾸러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를 살펴보면, 가치들과 세력들 간의 갈등이 거의 전쟁상태이다. 좌파세력의 10년 집권 기간에, 많은 용어들의 의미가 전도되었으며, 사회가치는 심하게 혼동되어 있고, 사회의 질서는 매우 혼탁하고, 법적인 권위는 추락하여, 정치적으로는 무정부상태가 되어가고, 사회적으로는 무질서의 상태가 되어가고, 법적으로는 무법천지가 되어가고 있다. 대통령이 헌법을 깨는 선봉장이고, 법조계가 사법의 권위를 파괴하는 선봉장이고, 청와대가 행정의 합리성을 파괴하는 선봉장이고, 정당은 정치의 정당성의 훼손하는 아지트가 되고 있다. 그 와중에 집권 좌파세력에 의한 용어의 혼란과 가치의 전복은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많은 한국어들이 좌파세력의 문화선동으로 인하여 어의가 꼬이거나 전복되어 있다. 나쁜 정치세력이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말이 타락하고, 그 다음에 가치체계(value system)이 혼란되고, 그 다음에 사회가 쇠퇴하게 되는 것 같다. 거짓된 좌파세력의 집권이 가진 가장 큰 사회적 폐해는 말의 왜곡과 타락이다.
막말로 한국어를 가장 심각하게 파괴한 노무현 좌파정권 치하에서 많은 단어들이 왜곡되고 타락했지만, 특히 '통합'과 '평화'라는 단어의 의미가 많이 왜곡되어 쓰이고 그 용어 자체가 타락했다. 민주, 개혁, 참여, 미래 등의 그 좋던 단어들이 이제 나쁜 함의를 가지게 되었다. 기만과 선동에 익숙한 좌파세력은 한국말들을 심하게 타락시키고 왜곡시켰다. 오늘날 김대중-노무현의 대통합민주신당 세력에 의해서 통합은 갈등을 의미하고, 통일은 분열을 의미하고, 민주는 독선과 아집을 뜻하고, 개혁은 부패를 의미하고, 진보는 수구를 의미하고, 평화는 기만과 폭력을 뜻하게 되었다. 평화통일은 오늘날 남한인들을 무시하고 김정일 전체주의체제를 살리는 정치구호로 전락되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기만적인 좌파 정치선동가들에 의해서 가장 악용되고 저주받은 용어는 '평화'와 '통합'이다. 평화와 통일이 표현(dennotation)과 내용(connotation)이 일치되는 단어가 되기 위해서는 정신이 꼬인 좌파세력이 물러나고 본정신을 가진 우파세력이 들어서야 한다.
평화의 이름으로 억압받는 북한 주민들은 더 억압체제를 연장하게 되었으며, 평화의 이름으로 남한 국민들은 좌익세력의 정치선동에 미혹당하고 있다. 그리고 통합의 이름으로 갈갈이 파탄하는 대통합민주신당을 구경하면서 '통합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깽판 용어'라고 국민들이 생각하게 된다. 평화의 이름으로 김정일 전체주의체제를 인정하고 연장시키려는 노무현과 김대중의 피나는 노력을 보면서, 국민들은 '평화는 폭력과 독재를 연장시키는 선동 용어'라고 생각하게 된다. 평화와 통일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거짓과 위선과 교만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교만한 좌파세력이 들먹이는 통합과 평화는 자기기만적이라서 철저하게 분열과 폭력을 의미할 수 밖에 없다. 오늘날 '평화'와 '통일(통합)'이란 정치구호는 사이비 평화주의자들의 자기기만(self-deception)이 만들어내는 마지막 병리적 부산물이다.
그럼 오늘날 한국에서 오용되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단어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오용될 수 있으며, 어떻게 평화라는 단어의 오용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 평화라는 단어를 악용하는 세력의 교만과 사기를 밝혀야, 사이비 평화세력과 사이비 통일세력을 척결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집단 간이나 국가 간의 대결에서 평화라는 단어가 함부로 남용될 수 없으며, 평화를 남용하는 평화주의자들의 오판과 교만과 위선을 깨밝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화 혹은 평화주의를 악용한 사이비 평화주의자과 치열하게 투쟁한 역사적 경험이나 사례를 참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방후 한국사회에서 거짓 민주와 통일을 겪은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사이비 평화세력과 통일세력에 대한 지식은 불행하게도 필자에게 없다.
그래서 교조성을 띤 종파적 평화주의(sectarian pacifism)와 가장 치열하게 싸운 미국의 기독교 사회윤리학자였던 라인홀드 니버를 참조해보고자 한다. 그는 평화주의자들의 오판과 교만과 위선이 낳은 더 큰 폭력을 깨밝힌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idealistic realist)라서, 이상과 현실이 가진 한계와 모순에 매우 좋은 판단기준을 준다. 한때 평화주의자였다가 후에 평화주의의 한계를 비판한, 그래서 평화주의의 한계와 장점을 모두 이해한 라인홀드 니버는 오늘날 한국정치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상한 도덕과 추악한 위선이 뒤엉킨 정치현상에 많은 조명을 줄 수 있다. 특히 니버는 한국의 사이비 평화세력과 통일세력의 교만과 거짓과 위선을 밝히는 데에 타산지석의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니버는 평화주의자를 현실세계와 자기자신에 대해 오판을 내리는 자기기만(self-deception)에 빠진 지적 결함자로 보았다. 라인홀드 니버가 평화주의자들을 상황 오판자와 자기기만자로 비판하는 이유는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자기중심주의(이기심)와 그 이기심이 사회적으로 구현된 필연적 갈등구조를 평화주의자들이 간과했다는 점이다. 인간 세계는 이기적인 개인들이 사회에서 치열한 이권을 다투기 때문에, 그러한 이기심의 갈등을 무시하는 완벽주의나 평화주의는 기본적으로 허구적 판단일 수 밖에 없음을 니버는 지적한다. 특히 집단 간에는 집단적 이기주의가 치열하게 갈등하지, 자기희생이 자리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현실을 니버는 강조한다. 국가 간의 갈등과 협상에서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 평화를 과잉 강조하는 자는 자기기만자이거나 혹은 반역자라고 니버는 의심했다. 인간세계의 치명적인 이기심과 그로 인해 당연히 발생되는 갈등을 거부하는 평화주의자들은 그들의 판단착오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더 큰 갈등과 폭력을 몰고올 것이라고 니버는 진단했다.
그리고 니버는 교조적 평화주의자들을 도덕적으로 자기교만에 빠진 위선자들로 보았다. 평화주의만 완벽하고 절대적인 진리라는 자신의 판단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교조적 평화주의자들은 사실상 누구보다도 이기적이고 분열적인 인간들이라고 니버는 꼬집었다. 사회의 모든 갈등들이 개인의 이권이나 판단을 고집하는 데에서 기인되는데, 자기의로움에 빠진 평화주의자들의 고집과 교만은 결과적으로 가장 극심한 갈등과 분열과 싸움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가장 이타적인 인간이 가장 이기적인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본다. 권력욕과 소유욕 없다고 입만 열면 말하는 중들이 가장 권력에 치열한 인간이다. 모든 갈등과 전쟁은 자신의 이익과 판단을 절대화하는 교만한 자에 의해서 촉발되는데, 교조적 평화주의자의 교만과 고집은 가장 악질적인 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사실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종교전은 종교적 교리로 포장된 사이비 평화주의의 가장 악질적인 폭력의 형태가 아닌가. 니버는 교조적 평화주의에 세뇌되어 사특한 전쟁세력에게 맹목적으로 무장을 해제하는 평화주의를 가장 나쁜 형태의 폭력배로 보았다.
그 결과 라인홀드 니버는 인간의 이기주의를 과소평가하고 자신의 이기주의를 부정하는 자기기만적 평화주의자들이 결국 더 큰 폭력과 사기를 이땅에 촉발시키고 유지하는 폭력세력의 아류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니버는 히틀러나 김정일과 같이 이 땅에 절대적 평등과 완전한 평화를 이룩하겠다던 전체주의자들에게 대항하여 무력으로 전쟁하는 것이 그러한 전체주의자들에게 평화를 선언하고 타협하는 것보다 사실상 훨씬 더 평화를 사랑하는 판단이고 행동이라고 진단했다. 히틀러나 김일성과 같은 전체주의자가 지배하는 사회는 평상시가 곧 전쟁상태라는 진단을 니버가 내린 것이다. 개인의 자연스러운 이기심의 포기를 강요하는 전체주의는 그 자체가 어떤 전쟁보다도 더 큰 폭력이라고 판단한 니버는 전체주의자들에게 오직 대화만 강요하는 평화주의자들을 전체주의자들을 제거하라는 전쟁주의자들보다 평화구현에 더 큰 훼방꾼으로 보았다. 그는 평화주의자들을 자신의 이기심을 부인하고 자신의 도덕적 위선을 절대화하는 자기기만자로 보았다. 그래서 니버는 한편 전체주의적 체제에 예속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전체주의체제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훨씬 더 평화애호자라고 판단한 현실주의자였다.
비록 니버가 냉혹한 현실주의의 입장을 견지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 신학자였던 라인홀드 니버가 전쟁관은 아니었다. 비록 그가 평화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이기심과 자존심을 포기할 수 있다는 자기교만에 빠진 교조적 평화주의자(sectarian pacifist)들의 몽상과 기만을 혹독하게 비판했지만, 오직 무력에 의존하여 적을 제거해야 평화가 온다는 냉혹한 현실주의자는 아니었다. 니버는 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전체주의자를 피하는 것이 평화라고 믿는 감상주의를 거부하면서, 동시에 전쟁만이 모든 악을 제거할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주의도 거부했다. 그는 전쟁을 가능한 피해야 하지만, 그러나 인간의 기본권 자체를 완전히 말살시키는 전체주의세력에 대해서는 전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평화주의가 아무리 좋아도, 인간의 기본적 이기심을 부인하는 몽상적이어서는 안 되며, 인간의 기본권을 말살하는 전체주의 세력에는 전쟁도 필요하다고 니버는 보았다. 성전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니버는 필요악으로서 전체주의와 공산주의와의 전쟁을 인정하고 지지했다.
이러한 니버의 '이상주의적 현실주의(idealistic realism)는 미국이 전체주의 세력들인 히틀러의 나찌나 공산세력을 상대하는 전쟁의 과정에서 낭만적 평화주의자들의 반발을 막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정치상황에서 평화를 논하는 김대중과 노무현을 관찰하면, 평화주의자들에 대한 라인홀드 니버의 냉정한 비판은 인간의 본성과 정치현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고 치료를 제공할 것이다. 예를 들면 오늘날 평화와 통일을 하늘 높이 외치면서 다리는 노무현과 김대중의 행동을 관찰하고 판단하려면, 평화주의에 대한 라인홀드 니버의 진단은 매우 좋은 판단기준을 제공할 것이다. 평화를 큰 소리로 외치는 자들이 사실은 그 평화의 구호 속에 얼마나 자신들의 이기심과 이익을 심하게 숨겼는지를 국민들은 파악해야 한다. 극단적 자기희생을 남한에 강요하는 노무현과 김대중의 사이비 평화주의는 사실은 노무현-김대중-김정일의 극단적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악마적 구호에 불과함을 라인홀드 니버는 정확하게 가르쳐준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바로 평화가 사기와 진실을 판가름하는 핵심적 용어가 되고 있다. 평화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대북정책은 물론이고 남한의 대선에서도 판단은 달라진다. 집권 좌파세력이 선동하는 평화통일이나 평화체제를 진정성이 있다고 보느냐 혹은 아니냐에 따라, 한 사람의 판단과 행동은 완전히 달라진다. 집권 좌파세력이 국민들을 깜짝 속이기 위해서 혹은 김정일 전체주의체제를 연장시키기 위해서 평화공세를 편다고 보는 자들은 평화주의의 폐악을 감지한 자들이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이 선동하는 평화를 그대로 따라가는 자들은 북한 주민들을 노예로 반세기 이상 전락시킨 김정일의 평화를 사랑하는 자들이다. 오늘날 라인홀드 니버가 한국에 살아있다면, 남한의 국토와 주권을 전체주의자 김정일에게 포기하는 극단적 자기희생을 보이는 평화주의자 노무현을 사이비 평화주의자라고 할 것이다.
진정한 '평화'와 '통일'이 사이비 평화주의자와 통일론자들에 의해서 강간당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평화통일의 이름으로 한국인들에게 가장 몰상식한 지적, 양심적, 정치적 폭력을 자행하는 노무현과 김대중은 사이비 평화주의자이다. 민주와 통합의 이름으로 분열적 정치상황을 한국사회에 연출하는 노무현과 김대중은 사이비 통합세력의 핵심이다. 노무현과 김대중이 오늘날 광적으로 외쳐대는 평화통일의 구호는 그들의 권력욕을 충족시키고 폭력과 독재의 상징인 김정일을 구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오늘날 한국의 방송들에서 선동되는 평화통일은 집권 좌익세력을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 선동구호의 단어일 뿐이다. 김정일은 북한 주민들의 기본권인 생존권, 안전권, 자유권을 몽땅 박탈하여 노예로 만든 폭군이다. 그 비정상적 폭군 김정일을 정상적인 대화상대로 보는 남한의 광신적 평화통일론자 김대중과 노무현은, 니버의 눈에, 폭력과 사기에 빠진 김정일의 아류이거나 혹은 자기 기만과 교만에 빠진 위선자로 보일 수 있다.
[http://allinkorea.net/ 조영환 올인코리아 편집인]
기만과 교만=사이비 평화주의자의 속성
- 조영환(올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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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0-05, 1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