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는 비굴하고, 깡패는 야비하고, 장군은 당당하다. 거지는 비굴함으로 동정을 사고, 깡패는 야비함으로 공포감을 조성하고, 장군은 김장수 장군처럼 당당함으로 명예를 드높인다. 그런데, 이 셋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 생산하지 않고 남이 생산한 것으로 먹고 산다는 것이다. 거지는 빈손으로 동정심을 유발하여 필요한 물질을 얻고, 깡패는 주먹으로 공포감을 조성하여 돈을 뜯어낸다.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거지는 경멸하고 저런 깡패는 증오한다.
정상 국가의 장군은 총칼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 주는 대가로 당당히 월급을 받아 산다. 따라서 그들은 이런 월급에 대해 고마워할 이유가 없다. 덤으로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란 명예를 얻는다. 비정상 국가에선 그렇지 않다. 특히 장군을 겸한 독재자는 깡패 형 장군으로 오로지 약탈로 먹고 산다. 그에게 전쟁의 상대는 적국의 군대가 아니라 자국의 국민이다. 그는 비판 불허의 무지막지한 명령과 지시로 국가의 생산 기반을 깡그리 파괴하고 비겁하게도 비무장의 국민들을 일방적으로 약탈한다. 여기에 무슨 공산 국가니, 자본주의 국가니, 봉건 국가니 하는 차이가 없다. 이런 자는 국가의 원수(元帥)가 아니라 국민의 원수(怨讐)다. 북한 말로 원수가 아니라 '원쑤'다.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다.
거지는 무엇을 받든 무조건 감사하고, 깡패는 아무리 많이 받아도 절대 감사하지 않고, 장군은 얼마를 받든 월급을 당연시한다. 거지는 쉰 밥 한 덩이에도 큰절을 하고 돈 100원에도 허리를 90도 꺾는다. 깡패는 밥을 주면 반찬이 없다고 호통치고 돈 10,000원을 주면 장난하느냐며 주먹부터 날린다. 제대로 된 장군은 쉰 밥 찬 밥 뜨거운 밥 가리지 않고, 소찬(素饌)과 진수성찬을 가리지 않고, 돌이나 황금이나 매한가지로 본다. 장군은 전시에는 거지보다 못 먹을 수도 있고, 평시에는 월급 이외의 재물은 어차피 자신이 가질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군을 겸한 독재자는 진수성찬이 아니면 불같이 화를 내고 천문학적인 돈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고도 절대 고마워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군대권력과 정치권력을 한 손에 거머쥔 장군 겸 독재자는 국내에서 먹을 것이 떨어지면 이웃 국가에서 만만한 상대를 구한다. 이 때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방법이 인질범의 수법이다. 인질을 확보하는 순간, 공작새가 꼬리를 활짝 펼치듯이 득의만면하게 세계평화, 만민평등, 환경보호, 제국주의 타도, 자주독립, 경제주권, 신자유주의 반대, 진보연합, 미군철수 등 호화찬란하고 황당무계한 말을 쫙 늘어놓는다. 여차직하면 위협과 공갈과 테러로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패전국에서 전리품을 챙기듯이 끝없이 '봉' 국가로부터 뜯어낸다. 이 때 은밀히 얼빠진 이웃 국가에 충성 분자나 영웅 숭배자를 심어 놓으면 효과는 배가된다. 이를 보고 당당하다, 멋있다, 라고 하는 자들이 있다. 푸른 수박을 보고 수박 속도 푸르다고 박박 우기는 바보거나 인질범에게 영혼을 빼앗긴 스톡홀름 증후군 환자다.
김정일은 상상불허의 인질이 둘 있다. 북한 주민과 대한민국이 곧 김정일의 인질이다. 한국을 상대로 할 때는 북한 주민을 써 먹고, 미국을 상대로 할 때는 대한민국을 써 먹는다. 동족이 굶어 죽는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이 주도하여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 라는 소문과 협박은 지금까지 멋지게 성공했다. 인질범의 수법이 씨도 안 먹히는 중국과 러시아에겐 김일성의 수법을 답습한다. 그것은 거지로서의 구걸과 똘마니로서의 애원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독재자도 장군을 겸임했던 황금 시절에 비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최소한은 대 주고 무엇보다 미국에 대한 지렛대 역할을 충분히 해 주니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대한민국이 아무 조건 없이 아무리 퍼 주어도 김정일이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인질 전략에 있다. 김정일은 북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도 오롯이 자기 거라고 생각한다. --노 터치! 북한이 세계 유일 초대강국에게 큰소리 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국이나 러시아한테는 이불 속에서도 불만을 털어놓지 못하지만, 미국에게는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뒷골목의 용어를 마구잡이로 쓰고 약속한 것을 질질 끌며 이 핑계 대고 저 트집 잡아 야금야금 깨는 것도, 두 형님 중국과 러시아를 믿고 한국을 인질 삼아 미국에게 협박하는 것이 제법 잘 통하기 때문이다. 일본에게는 납치 고백과 핵실험으로 역효과를 내어 의도와는 달리 영 재미를 못 보고 있다. 애초에 일본에게는 한국이 인질이 될 수 없다.
친북좌파가 두텁게 포진한 한국에게는 앞으로도 잘도 통하겠지만, 미국에게는 별 재미를 못 볼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개혁개방으로 미국에게 한국이 별 대단한 인질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10년간 직접 겪어 봤기 때문에 미국의 짜증과 피로가 점점 커진다. 미국도 결정적 순간을 노리고 이제 립 서비스는 제법 하지만, 식량과 중유는 거의 안 준다. 마카오 은행이 풀리고 원탁이 새로 마련되면서 김정일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지만, 침만 튀기고 춤만 추는 6자 회담이 김정일의 덫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마련한 덫에 자신이 빠졌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꿈틀거리는 벌레 정도로만 알았던 북한 주민이 루마니아 사람들처럼 일시에 들고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을 각종 거짓 보고가 아니라 육감으로 느끼는 순간, 최면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한국의 정통우익이 KBS의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하는 순간, 새 세기를 맞이하여 갈 길 바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안에서 공공연히 새로운 파트너를 찾는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김정일은 '장군'의 본색을 드러내어 대한민국과 지구를 아예 파괴하려 들지 모른다. 그 시간은 김정일 본인을 비롯하여 아무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2007. 10.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