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역동적(dynamic)이다. 기상천외한 사건과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고가 거의 날마다 일어난다. 기존의 상식을 깨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사람들만 예측불허일 뿐 아니라 요즘엔 자연도 그러하다. 슈퍼컴이 도입되어도 일기예보가 전보다 나아진 게 없다. 기상요원의 전문성 부족으로 몰아치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우리나라 기상요원들은 80년대 이래로 선진국에 과히 뒤떨어지지 않는다. 최근 들어 지구 온난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한국의 기상 현상이 요동치는 일과 관계가 깊다. 하여간 한국에선 인간이 일으킨 일이든 자연이 변덕을 부리는 일이든 어지간해선 주목도 받지 못한다. 다른 나라에선 1년에 한 번 일어날까 하는 대형 사건과 사고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터진다. 때로는 하루에도 여러 건 터진다. 한 달 동안 메인 뉴스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10대 뉴스를 한국만큼 고르기 힘든 나라가 없다. 못된 인간과 나쁜 일만 아니라 한국에선 영웅과 기적도 속출한다. 바둑의 이창호(건강 이상 등으로 최악의 해를 보내고 있다는 데도 국가 대항전인 농심배 우승을 확정지었을 뿐 아니라 대만이 개최한 중환배에서 판마다 눈에 번쩍 띄는 명국을 선보며 가뿐하게 우승하여 현존하는 모든 세계 대회를 1번 이상 제패했는데,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중일 프로 바둑 기사의 세계대회 우승을 모두 합친 것보다 여러 번 우승했다.), 수영의 박태환, 역도의 장미란, K-50 고등훈련기, 핵융합로 K-Star, 삼성과 LG의 고화질 TV, 조선업 상위 랭킹 싹쓸이 등이 2007년에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슈퍼스타요 쾌거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의 척박한 환경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연속성의 선상에 있는 게 아니라 불연속성의 선상에 있다는 말이다. 이를 일러 사람들은 설명이 궁하니까 알아듣기 쉽게 ‘기적’이라 한다. 한국에선 따로 연극을 볼 필요가 없고 굳이 영화관을 찾을 필요도 없다. 한류 열풍을 일으킨 한국의 드라마도 점점 황당무계해지고 엽기적으로 흐른다. 그렇지 않으면 숫제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리모컨을 꽉 눌러 흥미진진한 뉴스를 본다. 뭐니뭐니 해도 한국에선 정치가 가장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여긴 삼일천하도 쉽지 않다. 거의 매일 사건이 터진다. 오전에 일어난 일이 오후에 잊히고 오후에 터진 일이 저녁에 뒤집어지고, 저녁에 세상을 발칵 뒤집은 일이 다음 날 아침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기존의 어떤 잣대로도 한국의 정치는 가늠할 수가 없다. 직선과 곡선이 뒤엉켜 있고, 우주와 양자가 섞여 있고, 천사와 악마가 동거하고, 물과 기름이 어울린다. 충격적인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국의 방송과 신문은 24시간 특집 방송 체제에 돌입하고 1면에서 36면까지 도배를 한다. 사람들마다 만나면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게거품을 물거나 멱살을 잡는다. 정치 뉴스에 대한 해설을 잘못하다가 직장 동료는 말할 것도 없고 노숙자끼리 치고받다가 우주보다 귀한 생명을 잃고 1단 기사로 부고 아닌 부고를 내는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충격적인 사건이 긴급 뉴스로 전파를 타는 순간, 그제까지의 특집 방송과 도배 기사는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싸늘하게 식어 가던 전국의 냄비가 다시 바글바글 끓기 시작한다. 그래서 생긴 말이 ‘냄비 기질’이다. 여기에 대해서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놀랍게도 겉 구조(surface structure)가 아니라 속 구조(deep structure)를 들여다보면, 한국인에게는 냄비 기질과 정반대되는 ‘진돗개 기질’이 있다. 아시다시피 진돗개는 덩치는 작아도 거칠면서 충직하고 영리하면서 용감하다. 상대가 누구든 싸움에 임하여 물러섬이 없다. 화랑의 임전무퇴 정신을 내면화했다. 작은 놈은 단숨에 물어 죽이고, 저보다 두세 배 큰 놈도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회를 노리다가 한 번 물었다 하면 상대가 거꾸러지거나 살점이 떨어질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 주인인 한국 사람과 쏙 빼 닮았다. 1597년 이순신 장군이 12척 더하기 1척으로, 해신(海神) 포세이돈의 사부를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임진란 최고의 영웅이 되고자 마른침을 삼키며 폭풍같이 몰려온 왜선 200여척 중 133척과 맞붙어 단 한 척 망실(亡失)하지 않고 왜적을 일망타진하는 ‘기적의 기적’을 울돌목 기슭에서 개발에 땀이 나도록 조마조마하게 지켜 본 진도의 개들이 너무도 큰 감명을 받아 바로 까무러쳤다가 마침내 일어났을 때는 이미 자신도 모르게 그 감동을 고스란히 유전자에 담아 후손에게 물려 준 것이 아닐까. 한국인은 열에 아홉은 냄비처럼 확 달아올랐다가 역시 냄비처럼 팍 식어 버린다. 각 개인도 마찬가지다. 열 가지 일을 당하면 아홉 가지는 금방 잡아 죽일 듯이 펄펄 뛰거나 심장이 터질 듯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다가도 다음 날이면 싹 잊어 버리지만, 그 중 하나에 대해서는 절대 흥분하는 일도 없고 절대 포기하는 일도 없다. 죽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엄숙한 유언을 남겨 자자손손 대를 이어 계속하게 한다. 자손이 없으면, 원혼이 되어 저승사자의 손을 뿌리치고 저승(천국 또는 지옥)으로 가지 않고 이승(한국)을 떠돌다가 입에 칼을 빼물고 수십 년 또는 수백 년에 걸쳐 두고두고 나타난다. 한국인은 그렇다면 어떤 일에는 냄비 기질로 스트레스를 풀고 어떤 일에는 진돗개 기질로 스트레스를 쌓을까. 그것은 자신의 이익과 인생관과 목표에 관한 것일 때 그러하다. 이게 제일 잘 나타나는 게 고등고시다. 서울대 법대 출신은 3분의 1은 고시 합격으로 출세의 가도를 달리고 3분의 1은 다른 길로 그들 못지않게 가문의 영광을 드러내고 3분의 1은 인간쓰레기로 전락한다고 보면 된다. 이들 인간쓰레기들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데도 아랑곳없이 고시공부를 평생직업으로 삼거나 죽을 때까지 고시에 연연하며 세상 모든 일을 귀찮아하거나 우습게 본다. 스스로 과대망상형 자폐증 환자로 전락한다. 방향을 잘못 잡은 진돗개 기질 때문이다. 이들보다 한심하고 무서운 자들이 있다. 시대착오적인 사회주의 이념으로 삼손의 머리카락 포함하여 머리끝에서 아킬레스건 포함하여 발끝까지 무장한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누구도 못 말린다. 부모도 못 말리고 애인도 못 말리고 자식도 못 말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말릴수록 더욱 가슴 속 깊이 간직한 그들의 이상은 진주처럼 단단해진다. 하늘같은 선배들의 가르침을 받아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가장 멋진 나라로 만들겠다는 애국심으로 중무장한 스무 살 대학 1학년은 그 날 이후로 애오라지 그것밖에 모른다. 성장이 딱 멈춰 버린다. 나이 70이 넘어도 이인모 같은 장기수처럼 조금도 변함이 없다. 경찰에 쫓겨도, 감옥에 갇혀도, 고문을 당해도, 가문이 몰락해도, 화랑의 후예가 품은 드높은 이상은 세한도의 소나무처럼 변함이 없다. 뿐만 아니라, 여우같은 마누라를 만나도, 토끼 같은 자식을 두어도,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하여 백만장자가 되어도, 하루아침에 장관으로 발탁되어도(최근에는 이재정이 가장 튐), 임 향한 한 조각 붉은 심장은 식을 줄을 모른다. 그들의 이상은 민주요, 평화요, 통일이다. 그들의 비원은 친일파 척결이요, 과거 청산이요, 정통성 바로 세우기요, 이승만 시체를 꺼내어 매질하기요, 박정희 무덤에 침 뱉기요, 전두환 대머리에 총알 박기다. 그들의 소원은 평등이요, 사회주의요, 주체사상이요, 혁명이다. 조선이 두만강과 압록강 건너의 시답잖은 오랑캐로 경멸했던 만주족에 의해, 조선이 하늘처럼 떠받들던 명(明)이 영원히 지구에서 떠난 후에도, 그 전에 닭 모가지 하나 비틀 힘이 없는 주제에 배달민족 입장에서 보면 청(淸)과 똑같은 오랑캐에 지나지 않는 명에 대한 충성을 당당히 외치다가 두 번(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나 나라가 짓밟히고 왕 이하 만백성이 무수히 죽거나 살아서 가진 굴욕을 당하고도, 조선의 마음에서 빛나는 북극성은 더 한층 선명해졌다. 그것을 자랑스럽게 소중화(小中華)라고 일컬었다. 천하의 정통성이 조선 한 나라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누가?” -- 조선의 왕족과 양반 나으리들이! 정말 그들이 망할 만해서 망했을 따름인 명에 충성을 다 바쳤을까. 정말 조선이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청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들이 그렇게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대를 이어 그 후에도 약 300년 동안 간직한 것은 크게 두 가지 때문이라고 본다. 첫째, 그것이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대한 전쟁 책임을 면하는 제일 확실한 방법이 군사와 경제의 개혁을 거부하고 다시 임란 이전으로 돌아가 유교 경전을 무오류의 경전으로 숭상하고 기존 계급을 하늘이 정한 것으로 굳게 믿고 몽땅 회복하여 길이길이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편이었을 따름이다. 나라야 망하든 말든 가문의 영광만 지키면 되었던 것이다. 단, 군자는 이익을 멀리하고 의리를 가까이 해야 하기 때문에, 곧 죽어도 공맹과 주자의 말씀을 달달 외웠다. 둘째, 그들이 아는 것이 과거(科擧)의 교과목인 성리학과 과거의 답안지 작성에 필수 불가결한 시문(詩文) 놀이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실천을 중시한 명의 양명학도 거부하고, 성리학을 건너 뛰어 고문(古文)으로 돌아가 새로 경전을 해석하는 청의 고증학도, 당연히 그들은 거부했다. 새 학설을 받아들이는 순간 기득권에 거대한 균열이 올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치열한 학문 논쟁과 피 튀는 권력 투쟁에서 그들을 제치고 새로운 귀족층이 대두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후에 실학이 등장했지만, 그것은 400년 기득 세력인 성리학에는 애시당초 상대가 안 되었다. 정조는 마지막으로 개혁을 시도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또한 실학도 그 당시 세계적 흐름으로 보아 찻잔 속의 태풍에 지나지 않았다. 서양의 대포 한 방에 혼비백산하던 청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서양을 어설프게 정리한 것을 가져온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산업화는 조선의 풍토로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새로이 조선의 하늘이 된 청이 두 나라로 갈라져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실학파조차 근본은 성리학이었다. 박정희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오기까지 한국은 산업화를 추진할 수가 없었다. 박정희는 역사의 연속선상에 위치한 인물이 아니다. 불연속선상에 우뚝 선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업적을 일컬어 한강의 기적이라 한다. 당연히 역사의 연속선상에 위치한 한국의 대다수 지식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의 이름만 들어도 속이 뒤집혀지고 머리에 쥐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진돗개 기질이 긍정적으로 발휘될 때는 한국인만큼 위대한 민족이 없다. 일본인이든 중국인이든 게르만이든 유태인이든 한국은 모조리 이길 수 있다. 한강의 기적은 그렇게 해서 탄생할 수 있었다. 반대로 진돗개 기질이 부정적으로 발휘될 때는 한국인만큼 한심한 민족이 없다. 식인종보다 나을 것이 없다. 김일성을 보고 김정일을 보라. 그들은 대를 이어 동족을 전쟁으로 또는 고문으로 조준사격으로 기아로 도합 7백만을 죽였다. 생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이 과연 존재했는지 모르겠거니와, 설령 존재했다 한들 그들이 인류 역사 통틀어 몇 명이나 잡아먹었을까. 공산권이 무너진 후 아직까지 스탈린 식 공산체제를 유지하는 데는 북한밖에 없다. 마르크스 사상과 김일성 사상을 곧이곧대로 유지하고 있는 데는 북한과 한국밖에 없다. 명이 멸망한 후에도 성리학을 곧이곧대로 고수한 못난 조상의 피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 조선의 양반은 오늘날 북한과 한국의 마교(마르크스교)도에 견줄 수 있다. 오늘날의 주체사상 또는 선군사상은 조선시대의 송자(송시열을 공자의 반열로 높여 부르는 칭호)사상에 비견할 수 있다. 조선의 왕족과 양반처럼 김정일 집단과 한국의 친북좌파도 결국은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거대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진돗개 기질을 발휘할 따름이다. 기득권은 권력과 부만이 아니라 명예도 있다. 명예란 지금 당장 죽어도 자기들만 옳다는 편집광이다. 한국의 수구보수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신자유주의가 틀렸고 자기들만 옳다는 몽상이다. “무엇이?” -- 마르크스 사상과 주체사상이! “누가?” -- 김일성과 김정일이! 조선의 왕족과 양반처럼 망하기 전까지는 이들 남북의 기득권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진돗개는 절대 한 번 문 것을 놓지 않느니, 상대가 죽거나 자신이 죽을 때까지 놓지 않느니라. --아멘. (2007. 10. 7.)
진돗개 기질이 부정적으로 발휘될 때는 한국인만큼 한심한 민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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