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단이든 그 집단을 현상유지하려는 세력과 한 단계 발전시키려는 세력과 아예 해체해 버리려는 세력이 있다. 나는 이 3세력을 각각 이기적 다수와 창조적 소수 그리고 파괴적 소수라고 일컫는다.
이기적 다수는 곧잘 보수주의자로 불리는데, 창조적 소수와 파괴적 소수는 서로 원수지간이지만 다투어 진보주의자로 불리길 원한다. 특히 파괴적 소수가 그러하다. 그러나 그 뒤를 따르면 가면 갈수록 신기루만 아른거리다가 이윽고 수렁으로 빠지고 벼랑에서 떨어지고 골짜기에 갇히고 우물에 빠진다. 실은 파괴적 소수는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퇴보주의자란 말이다. 창조적 소수와 파괴적 소수는 자유와 강제, 설득과 강요, 열림과 닫힘, 소신과 독선, 사랑과 증오의 잣대로 구별할 수 있다. 제일 확실한 잣대는 시간이다. 대개 5년 안에 결판나고 10년이면 확연히 구별되고 30년이면 1mm와 1km만큼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파괴적 소수는 일단 권력을 잡으면 절대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끝없이 마녀사냥을 획책하면서 곧 지상낙원이 도래한다고 나팔이란 나팔을 다 동원하여 귀가 멍멍해지도록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 불어댄다. 1mm가 1km보다 길다고 우긴다. ‘너희는 불행하고 우리는 행복하다.’고 우긴다. 지도자는 주로 이기적 다수 즉 범상한 무리 중에서 나온다. 창조적 소수가 천신만고 끝에 새로운 사회나 국가를 건설하면, 그 다음에는 이기적 다수는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고 기득권을 유지하고 눈앞의 쾌락을 즐기려고 하는데, 평화는 대개 이렇게 온다. 그러면 지도자도 이런 자 중에서 나온다. 처음에는 괜찮지만 긴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이런 사회나 국가는 필연적으로 정체되고 부패한다. 그러면 창조적 소수와 파괴적 소수가 동시에 출현하여 심심하고 답답해진 이기적 다수를 서로 제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애쓴다. 혼란과 격동과 전쟁의 시기가 도래하는 것이다. 한국의 삼국시대와 후삼국시대, 여말선초(麗末鮮初)와 한말, 일본의 전국시대와 덕천막부 말기 등도 바로 그런 시기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위진남북조 시대, 5호16국 시대도 바로 그러한 시대다. 서양은 고대 그리스 말기에서 로마 제국의 설립까지의 시기와 십자군 원정에서 르네상스 시기까지가 그런 시기다. 이기적 다수가 지배하던 평화 시대가 길면 긴 만큼 창조적 소수와 파괴적 소수가 버성기는 시기도 길어지는데, 이 혼란과 격동의 시기에 새로운 사상과 기술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최후 승자가 창조적 소수자냐, 파괴적 소수자냐에 따라 이 새로운 사상과 기술을 종합하여 위대한 새 문명이 태어나느냐, 새로운 사상과 기술을 모조리 악의 원천으로 여겨 한 가지 사상만을 강요하고 기술은 최소한의 것만 남기고 모조리 폐기하여 암흑의 시기로 되돌아가느냐가 결정된다. 최소한 100년 대개 200년 내지 300년 지속되는 강력한 국가가 등장하면 왕조 초기에 창조적 소수가 국가를 이끈다. 그러다가 각종 모순이 쌓일 무렵 중흥군주가 나타나면 그 나라는 다시 일신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국제 관계에 의해 나라가 연명하더라도 그 사회는 썩을 대로 썩는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신라의 법흥왕과 진흥왕, 백제의 근초고왕 등이 대표적인 중흥군주이다. 최후의 승자는 신라였는데, 창조적 소수의 집단이었던 화랑을 중심으로 김유신과 태종무열왕, 문무왕이란 걸출한 영웅들이 역사의 대전환기에 잇따라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당시 중국에서 후한(後漢) 이후 400년 혼란의 시기를 종식한 통일왕조가 나타났는데, 거기서 가장 걸출한 인물이 당태종 이세민이었고 이 이세민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인물이 바로 불세출의 영웅 김유신과 김춘추였던 것이다.
중흥군주가 나오지 못한 조선은 범상한 군주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왔다. 율곡 이이는 선조가 당 현종을 능가하는 중흥군주가 되기를 바라며 각종 중흥정책과 쇄신정책을 건의했지만, 왕을 포함한 이기적 다수는 마이동풍이었다. 그들이 어즈버 지배층을 형성하고서 대대손손 기득권을 누리려 들었던 것이다. 붓을 숭상하고 칼을 천시하는 나라에서 한 손에는 칼을 들고 한 손에는 붓을 든 이순신이 거의 혼자 힘으로 범상한 이기적 다수가 이끄는 조정과 이중의 싸움을 하면서 어쩌면 당시 세계최강이었을지도 모르는 왜군을 물리쳤지만,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구국의 외로운 길을 걸어갔지만, 이기적 다수에서 나온 범상한 무리들이 권력을 틀어쥔 조선은 은혜도 모르고 뜻도 모르고 점점 쇠락해 갔다. 창조적 소수가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창조적 소수가 사회 지도층을 형성하여 수백 년간 연이어 뛰어난 지도자가 나오는 수가 있다. 그러면 이런 국가나 대륙의 범상한 다수도 나날이 발전하여 한 세대만 지나면 이전 세대의 창조적 소수의 수준으로 올라선다. 이렇게 몇 세대만 지나면, 그들은 다른 국가나 대륙에 비하면 외계인 내지 초인이 된다.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로 이어지는 산업화 시대의 유럽이 바로 그러했다. 중심은 영국이었다. 독일과 거의 같은 시기에 신흥강국 미국이 내전을 계기로 파괴적 소수를 궤멸시킨 후 씩씩하게 그 뒤를 따랐다. 이 때 서구와 미국은 창조적 소수의 지도자들이 자신들보다 앞선 창조적 소수를 적극 후원했는데, 그들이 바로 과학기술자와 경제인이었다. 오늘날도 과학기술자와 경제인 중에 창조적 소수가 제일 많다. 마침내 이들이 그들 이전에 약 2천 년 동안 인류사를 주도했던 동양에 나타났을 때, 자국에서는 이기적 다수로서 범상한 무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동양의 최고 현자보다 한 차원 위에 있었다. 약 2세기 동안 창조적 소수가 국가 지도층을 형성하면서 유럽은 아무리 범상한 인물이라도 나머지 세계의 천재보다 뛰어났다. 놀라운 일은 동양의 변방국 일본이 이들을 곧바로 알아보았다는 것이다. 일본은 격동의 세월을 거치면서 이들에게 게걸스럽게 배운 창조적 소수가 불과 한 세대 만에 나라를 일신시켰다. 갑작스러운 발전에는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이기적 다수가 미처 이해 못하고 새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허점을 뱀의 혀처럼 파고드는 것이 파괴적 소수의 달콤한 유토피아 유혹이다. 유럽의 후진국가였던 독일이 압축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파괴적 소수가 국가 권력을 잡게 이르렀다. 이들이 일으킨 재앙이 바로 양차 세계대전이다. 이 어둠의 세력에 독일보다 더한 압축성장의 길을 달리던 일본도 끼이게 되었고, 아시아는 특히 한국이 그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다. 파괴적 소수는 2차대전 후에 세계의 약 절반을 장악했다. 소련과 중공과 동구와 몽골과 북한이 바로 유토피아를 내건 파괴적 소수에게 약 반세기 동안 생지옥을 경험한 당사국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와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은 그와 정반대였다. 여기서는 창조적 소수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푸른 하늘 아래 손에 손잡고 국가 지배층을 형성하여 폭발적으로 발달했다. 뒤늦게 등소평의 중국도 이 대열에 참여했다. 공산권이 창조적 소수에게 넘어간 후에도 파괴적 소수가 그대로 온존한 사회가 바로 북한이다. 파괴적 소수가 두껍고 어려운 경전을 가리키며 유일무이한 진리라고 이기적 다수를 세뇌시키는 한편 지상낙원을 속삭이며 생지옥을 강요하자 굶어 죽는 사람, 맞아 죽는 사람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자들은 지상낙원을 건설하기 위해 희생된 인간쓰레기에 지나지 않았다. 감상적 동정이 끼어 들 틈이 없었다. 다들 제 목숨 살리기에 급급했다. 이기적 다수는 이처럼 늘 대세를 따라간다. 그것이 주어진 환경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너무도 황당한 일이 기적의 나라 한국에 벌어지기 시작했다. 창조적 소수가 앞장서고 이기적 다수가 신바람을 내서 불과 한 세대 만에 이룩한 세계적 성취를 막상 최대의 수혜자인 이기적 다수가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입에 꿀을 바른 파괴적 소수가 그들에게 유토피아를 속삭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학술계와 문화계에서 교두보를 마련한 후 전위대인 전대협과 한총련을 앞세우고 본대인 노조가 뒤따르면서 각종 사회단체를 접수하고 급기야 정계를 장악하여 반세기 이상 극악한 파괴적 소수에게 시달린 북한 주민들은 ‘흡수통일 결사반대’라는 괴이한 논리로 외면하고 북한의 파괴적 소수와는 굳게 손을 잡았다. 어느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의 이기적 다수가 남북의 파괴적 소수에게 쏠렸다. 사이렌의 달콤한 목소리를 듣고 암초가 지천으로 깔린 급류 속으로 정신없이 배를 저어하는 것처럼 한국은 지난 15년 사이에 광란의 현대사 짓밟기 푸닥거리 축제를 열면서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암초에 걸리기 직전이다. 남북의 파괴적 소수가 손을 맞잡고 감격의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끼리’를 외친다. 한국의 이기적 다수는 아직도 깊은 잠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2차 평양회담으로 북방한계선이 사라진 바다로 부라퀴가 언제 뛰쳐나올 줄 모르는데, '설마, 설마'하면서 이기적 다수는 정권교체의 달콤한 꿈에 부풀어 있다. 이미 창조적 소수와 파괴적 소수를 가릴 줄 모르게 된 이기적 다수인지라 4지선다든 5지선다든 정답이 없을지 모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파괴적 소수가 여당만이 아니라 야당에도 얼마나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는 줄 모르고 손가락을 꼽으며 정권교체의 화려한 환상에 젖어 있다. (2007. 10. 14.)
남북의 파괴적 소수가 손을 맞잡고 감격의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끼리’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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