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입과 김정일의 주먹

노무현은 입으로 통치하고, 김정일은 주먹으로 통치한다.

 노무현 대통령(이하 노무현)은 입으로 일어서서 입으로 날고 입으로 날다가 입으로 추락하고 입으로 추락하다가 입으로 기사회생하는 등, 입으로! 입으로! 5년 내내 국민을 두셋으로  갈라 찬사의 꽃다발과 비난의 화살과 저주의 비수를 함께 받는다. 하여간 며칠만 헤드라인 뉴스에 오르지 못하면 안절부절, 그 때마다 불사조의 존재감을 과시하며 지지자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선물하고 나머지 국민들에겐 스트레스를 안겨 주는 말을 속사포같이 쏘아댄다. 

 김정일은 정반대다. 공개석상에서 일년에 세 마디 하면 많이 한다. 그럼에도 북한 주민들은 부들부들 떤다. 아니, 세계가 떤다. 세계최강국의 지도자 부시도 떤다. 김정일은 약속 어김을 좌우명으로 삼아 아랫것을 시켜 공동선언을 남발하고 역시 아랫것을 시켜 불리한 것은 온갖 토를 달면서 절대 지키지 않고 입을 바위처럼 굳게 닫고 있다가, 사방에서 볼멘소리 시끄러운 소리가 나면 가만히 지켜보다가 불쑥 주먹을 내지른다.
'남자는 역시 주먹이야!'
 서해로는 수시로 어선과 군함을 내려 보내다가 대포로 정조준하여 동족을 살해하고, 동해로는 잠수정을 내려 보내거나 미사일을 날리고 핵실험의 물증을 공중으로 흩날린다. 휴전선으론 이따금 영점 사격의 탄알을 남쪽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날려 보낸다.   

 노무현의 입은 도무지 거침이 없지만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해서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꾀꼬리 소리처럼 맑고 아침햇살처럼 화사하고 젓가락장단처럼 신난다. 당장 퍼주기를 그만두라고 한줌밖에 안 남은 반공 세력이 외치면, 온 몸으로 휴전선을 가로막으며 '그럼 전쟁할 거냐! 시대착오적인 인간들이여!'라며 도리어 왕짜증낸다. 아무리 퍼주어도 남는 장사라고 셈법까지 가르쳐 준다. 율사로서의 법률 지식을 자랑하며 남북관계의 NLL 관습법은 영토선이 아니라고 무 자르듯 딱 '판결' 내리고, 남침과 테러에 대한 '선 사죄 후 용서'의 국민정서법은 실정법이 아니라서 법률적 효력이 없다고 친절하게 '변호'해 주기도 한다.

 노무현의 입은 '내 식구와 내 편' 챙기는 데도 병아리 품는 암탉처럼 한없이 너그럽다. 
 '깜도 안 된다.'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이 왜 순진한 사람에게 ...'
 '대화해 보니 참 느낌이 좋다. 언제까지 국민들이 이런 (애국심에 불타는) 젊은이들에 대해 (오해할지) 안타깝다.'
 '알아 보니, 아무 것도 아니더라.' 

 대한민국과 북한의 최대 라이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하 박정희)과 김일성이었다. 이들의 입과 주먹은 어땠을까.

 김일성은 노무현 못지않게 말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 말이 참 많았다. 김일성 어록은 '이빨을 잘 닦으면 이빨이 튼튼해집니다. 결혼식에는 20명 이하가 참여해야 합니다. 학생은 항상 책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북한에선 그래서 지금도 학생들이 헐레벌떡 달려가다가 교문에 가까이 가면 책을 꺼내어 읽는 척하며 등교한다고 함).'에서 '500미터 이하의 산은 전부 개간하여 식량 자급을 이룩해야 합니다.'를 거쳐, '남북은 평화적으로 자주적으로 민족이 대단결하여 통일해야 합니다.'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그가 남긴 말은 예수와 석가와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말씀을 다 합친 것보다 많다.
 그의 말은 유치한 것도 있고 화려한 것도 있고 알쏭달쏭한 것도 있고 앞뒤가 안 맞는 것도 있고 달콤한 것도 있고 섬뜩한 것도 있다. 하여간 그의 말은 일일이 기록되어 지금도 학습되고 암송되는데, 그 말 그대로 실천했건만 북한은 하루 세 끼 끼니 해결도 못하고 부모 자식간에도 속말의 속말은 못한다.    

 김일성은 주먹도 잘 휘둘렀다. 그의 주먹 자랑은 1950년 6월 25일에서 그 해 7월 31일까지 절정을 이루었다. 그 후에도 그는 북한 주민에게 쇠주먹을 하루도 빠짐없이 휘둘렀고(김정일은 어릴 때부터 맏아들이자 수제자로서 남김없이 보고 배워 자신도 청년시절부터 돌주먹으로 실전감각을 익혔음), 한국을 향해서도 수시로 살인 잽을 내뻗었다.

 박정희는 말이 딱딱했지만 간결하고 알찼다. 김일성과 정반대로 그의 말에는 반드시 실천이 뒤따랐다. 박정희는 꼭 국민학교 선생님처럼 싫은 소리도 국민(학생)에게 서슴없이 했다. 싫은 소리를 노무현보다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것을 고깝게 듣지 않았다. 그는 노무현이나 김일성과 달리 반드시 대안을 제시했고, 국민들은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 외에는 그 대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빈둥거리기 대신 부지런히 공부하고 일하기, 남한테 기대기 대신 스스로 일어서기, 마을 사람끼리 치고 받고 욕하고 싸우기 대신 서로 돕기, 하늘을 쳐다보기 대신 스스로를 돕기 등, 그는 불과 18년 만에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국민성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도록 싹 바꿔 버렸다. 이중에 '싸우기'는 다시 되살아난 듯하다. 

 박정희는 주먹도 셌다. 그는 어지간해서는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지만, 그가 한 번 휘두르면 천하장사도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특히 김일성이 까불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김일성이 무장간첩을 한 100명 내려보내자 단숨에 일망타진하고 100만 예비군을 창설해 버렸다. 휴전선에서 감히 우리 장병의 목을 따 가면 우리도 가서 북괴군의 목을 따왔다. 휴전선에서 총을 쏘면 우리도 바로 쐈다. 대포를 쏘면 우리도 바로 쐈다. 박정희는 월남에서도 만만찮은 주먹을 자랑했다. 파이트 머니도 두둑이 챙겼다. 처음에는 미국의 주먹을 이용하여 먹고사는 데 힘을 집중시키다가, 이윽고 정권(正拳) 단련에도 매진했다. 미국의 대통령이 한 주먹을 빼려고 하자, 그를 불러서 국민학생 다루듯이 정신 교육을 단단히 시켜서 반의 반 주먹만 빼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본격적인 한국식 주먹 단련(자주국방)에 들어갔다. 우람한 몸(중화학공업)도 같이 만들었다. 김일성과 일대일로 붙어도 능히 이길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마침내 김일성이 꼬리를 살살 내리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호언장담을 눈에 띄게 줄였고 휴전선 너머로 내뻗던 살인 잽도 급격히 줄였다.  

 김일성의 횡설수설하는 말에는 간단명료한 말로, 김일성의 툭툭치는 잽에는 묵직한 카운터 펀치로 대응한 박정희는 그 때마다 국민의 믿음직한 방패가 되었다. 그 시절에는 다들 김일성을 미워했을 뿐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1990년대 초 통일의 호기가 왔을 때, 박정희 같은 지도자가 있었다면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바로 자유통일을 이룩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 북한은 적어도 1인당 국민소득이 5천 달러는 돌파했을 것이다.

      (2007.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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