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좌익의 민주 참칭(僭稱)

옛 공산권의 신민주주의 타령이나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선전선동이나 한국 친북좌익의 민주 참칭이나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한때 신민주주의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옛 공산권에서 두루 쓴 용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로 차례로 발전하는 것이 역사의 필연인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자본주의에서 스스로의 결정으로 공산주의로 체제를 바꾼 나라는 한 나라도 없고, 오히려 유럽과 아시아에서 가장 낙후된 소련과 중국이 봉건제에서 바로 공산주의로 '퀀텀 도약'해 버린 것이다. 순진한 공산주의자들은 공산 집권 후에 자본주의를 먼저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게 이르렀다. 권력의 생리를 모른 그들은 하나하나 이승을 떠나거나 입에 재갈이 물려졌다. 

 지식인은 대체로 비겁하다. 그들은 찔러서 상대가 움찔하면 기세등등 소신을 내세워 바락바락 덤비지만, 압도적인 권력이 바로 폭력으로 응답하면 곡학아세의 혀로 한 자리 차지하거나 중용의 이론을 내놓아 생명을 보장받거나 아예 침묵 모드로 들어간다. 죽음으로 맞서는 지식인은 백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다. 하여간에 신민주주의가 바로 그런 중용의 이론이다. '공산주의의 현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았다. 자본주의를 거치긴 거쳐야 하는데, 이를 강력히 주장하진 못한다. 그래서 현실의 공산주의는 노동자와 농민이 주축을 이루었다고 인정한다. 신민주주의란 말로 집권 공산당이 주장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민주적이라는 것은 인정하되, 아직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았으니까 그것을 언젠가는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이론에 없는 불완전한 공산주의에 멋진 이름을 붙여 준 것이다.' 한 마디로 새 주인을 향해 눈치껏 꼬리 흔들며 짖어댄 개의 소리였다.

 출신이 프롤레타리아든 부르주아든 공산혁명에 참여하여 당 서열이 높아져 벼락 출세한 자들 외에는 모조리 노예나 소작농이나 저임 노동자 곧 또 다른 피착취 계급으로 편입되었음에도, 공산권의 중도적 지식인은 이를 못 본 척하고 신민주주의라는 아름다운 말을 만들었던 것이다. 공산권은 사실 노예제와 전체주의와 제국주의를 합친 체제였다. 노동력만 제공할 뿐 최소한의 의식주 외에는 모든 것을 주인 곧 공산당에 빼앗기고 이에 반항하면 언제든지 감옥에 갇히거나 살해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노예제였다. 말할 자유, 나아가 생각할 자유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전체주의였다. 항상 전세계 또는 만만한 나라의 적화를 꿈꾸며 전쟁 준비에 광분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제국주의였다. 이것은 공산권이 몰락하거나 개과천선한 후에도 옛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북한에 오늘날도 그대로 적용된다.

 고구려의 옛 땅을 찾는다며 중국의 만주와 러시아의 연해주로는 빈말로도 쳐들어가지 못하고, 비겁하게 만만한 남조선의 산더미 재산을 강탈하려고 전쟁 준비에만 광분하는 북한은 공산 제국주의의 표본이다. 그러나 김씨공산왕조는 이를 거꾸로 적용하여 남조선이 미 제국주의의 압제에 시달린다며 미군이 물러나야 자주평화통일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떼를 쓴다. 

 제일 가당찮은 자들은 한국의 친북좌익이다. 이들은 민주를 참칭하고 독점한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자유는 오로지 자신들의 피와 땀으로 쟁취한 것으로 선전한다. 이들이 제일 자주 써 먹는 말: '세월 좋아졌다. 옛날 같으면 그 따위 소리하다가 다 잡혀갔을 건데, 세상 좋아졌다고 입에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구나.'

 이들은 소련의 붉은 군대가 점령한 동구와 몽골과 북한에는 왜 공개투표밖에 없었는지, 주한미군이 주둔한 3대 국가 즉 독일과 일본과 한국에는 왜 처음부터 자유가 넘쳐 났는지 알 리가 없다. 또 미군의 안보 우산에 들어간 국가라도 자유와 풍요를 동시에 누린 나라는 2차대전 후의 신생국가에서 한국과 대만 정도밖에 없다는 것도 이들이 알 리 없다. 한국이 비슷한 발전과정에 있던 국가에 비하면 그 어떤 나라보다 비상계엄 상태에서조차 언론자유를 많이 누렸다는 것을 이들이 인정할 리 없다. 대만이나 싱가포르에 비하면 한국은 야당과 언론의 천국이었다는 것을 이들이 인정할 리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들이 자유민주와 시장경제에 기여한 바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들은 혀와 이빨만 고도로 발달했을 따름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교두보를 확보하고 위장하기 위해 자유민주를 내세웠지만, 광주사태를 계기로 노골적으로 친북좌익으로 돌아섰다. 차우세스코가 다스리던 나라보다도 훨씬 못한 땅을 조국으로 생각하고 이론상 선전상으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체제를 앙망하는, 위선과 독선과 무지의 인간들이다.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는 이들이 통일전선 차원에서 눈속임용으로 지지할 따름이다. 이들에게 한국은 친일파와 대미(對美) 사대주의자와 군부독재 잔당의 나라로 정통성이 없는 천민자본주의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북한은 독립투사와 노동자와 농민의 나라로 정통성 있는 주체의 국가, UN도 인정한 주권 국가이다. 이들에게 미국은 악의 근원이다. 주한 미군은 자주평화통일의 최대 걸림돌이다. 이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해서는 빈말로도 듣기 싫은 소리를 못한다. 무조건 도와 주어야 하고, 무조건 용서하여야 하고, 무조건 이해해야 하고, 무조건 거기 투자하면 곧 대박 터진다고 이 황금의 기회를 미국과 일본과 중국에 빼앗겨서야 되겠느냐고, 천하의 돌대가리 김용옥(머리가 나쁜 인간은 공부를 많이 할수록 바보가 되나 봄)처럼 목에 핏대를 세운다.

 친북좌파는 80년대 이후 대학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다. 이들이 문화권력을 거의 대부분 장악했다. 친북좌파는 민주를 찬양하고 독재를 저주하는 시 몇 줄 쓰면 국립대 총장도 될 수 있고 노벨 문학상에 해마다 거론될 수도 있다. 서점에 가서 한국의 현대사에 관한 서적을 찾아보면 100에 99가 친북좌익의 입장에서 쓴 것이다. 권력의 나팔수인 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인터넷의 관문인 포털도 사실상 이들이 거의 다 장악했다. 더군다나 좌파정권이 연이어 집권하면서 이제 우익마저 그것이 좌익의 소리인 줄도 모르고 좌익의 소리를 내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특허품인 민족대단결과 민족공조를 입에 달고 산다. 국가의 운명이 달린 NLL이나 자유민주의 기둥을 뿌리째 뒤흔드는 북한인권 문제가 나오면, 정권교체를 외치는 야당마저 아득히 먼 미래의 산을 쳐다보며 자아도취의 황홀한 표정을 짓거나 사오정처럼 멀뚱멀뚱 작은 눈을 끔벅이며 실용주의와 경제성장을 소리 높여 외치며 재래시장과 달동네로 케냐의 마라톤 선수처럼 씩씩하게 달려간다.  

 옛 공산권의 신민주주의 타령이나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선전선동이나 한국 친북좌익의 민주 참칭이나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신민주주의가 어떻게 되었나를 살펴보면, 조선민주주의와 한국의 친북좌익 식 민주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답은 너무도 빤히 보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를까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2007. 10. 25.)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