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22)공교육, 사교육에 들러리서기 17년

초중고만이 아니라 대학까지 한국의 교육은 총체적 위기에 처했다. 지난 17년간 사교육 마녀사냥에 전력을 기울인 업보다.

 전두환 장군이 과외를 전면 금지한 7·30 교육개혁 조치를 단행한 지 17년이 지났다. 그 후로 교육개혁을 들먹일 때마다 사교육에는 땅을 엉금엉금 기도록 철퇴를 가하고 공교육에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깔아 준다고 했지만, 도리어 매번 공교육은 바닥을 기고 사교육 시장은 철퇴를 여유 있게 피하고 재빨리 하늘을 나는 슈퍼 보드를 타고 기화요초가 만발한 무지개 동산으로 도망갔다. 이제는 사교육비가 가계소득의 약 20%를 차지하게 이르렀다. 교육부 전체 예산(2007년 30조 5천억 원)을 능가한다(33조 5천억 원-현대경제연구원). 어떤 회사는 코스닥에 상장하여 벼락부자가 되기도 했다. 절대액이 아니라 소득에 대한 비율을  보면, 상위 20%는 85년 이후 약 4배 늘어났지만, 하위 20%와 중위 60%는 약 7배 늘어났다. 상대적으로 중하위 계층에게 사교육비 부담이 가중되었지만, 교육의 빈부 격차는 한층 커졌다. 이제는 못 사는 집의 학생이 공부 잘하는 것은 돌연변이처럼 이상하게 보인다. 

 GDP에 대비한 공교육비와 사교육비를 비교해 보면, 1997년에 공교육비는 GDP의 5.5%이던 것이 2005년에는 6.2%로 늘어났다. 그 사이에 사교육비는 각각 3.2%에서 4.4%로 늘어났다. 사교육비를 줄인다고 그렇게 난리를 피웠지만, 공교육비가 0.7% 늘어나는 사이에 사교육비는 1.2% 늘어났다. 공교육비라고 해서 모두 세금으로 충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 가계가 부담하는 공교육비는 1997년 2.9%, 2005년 2.7%였다. 학부모로선 지출이란 면에서 공교육비나 사교육비나 마찬가지다.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학생이 없는 가계는 낼 필요가 없으니까, 등록금과 학교운영비 등 학부모가 실지로 내는 것은 사교육비에 근접할 것이다. 하여간 가계 부담의 공교육과 사교육을 합하면, 1997년 GDP의 6.2%에서 2005년 7.1%로 0.9% 늘어났다. 정부는 고작 1997년 GDP의 2.6%에서 2005년 3.5%로 늘렸을 따름이다. 그리고는 학부모와 학생과 교사의 허파 뒤집는 소리를 천둥처럼 내뱉는다. 공교육비와 사교육비 합해서 정부보다 두 배 이상 지출하는 학부모는 사교육비보다 공교육의 가계부담 몫이 더 아깝다. 조금 과장하면 이제 학부모는 공교육에는 한 푼도 내고 싶지 않다. 졸업장을 미끼로 강제로 뜯기는 기분이 든다. 투입 비율 산출이 사교육보다 훨씬 못하기 때문이다.  

 여야의 두 유력한 대선주자가 교육 정책을 두고 탐색전을 벌였다. 여당 후보는 이제까지의 교육정책을 이어받겠다고 하고, 야당 후보는 크게 뜯어 고치겠다고 한다. 잘못하고도 뭘 잘못한 줄도 모르고, 명명백백한 결과를 보고도 이를 절대 인정하지 않고, 오래 전부터 아무도 안 믿는 '달콤한 엿' 약속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채찍으로 학생의 미래를 어둠 속으로 몰아 넣는 잘못을 계속 저지르겠다고 눈을 부라리는 자는 아예 볼 것도 없다. 야당 후보가 상대적으로 약간 낫기는 하다. 그러나 그도 헤매기는 마찬가지다. 교육의 핵심을  '사교육비 반으로 줄이기 5단계'로 잡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전 정부들의 화려한 교육 호언장담과 진 배 없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방법은 이제 더 쓸 것이 없을 정도로 다 썼다. 전국에 일류 고등학교를 마구 세우고, 취업을 목표로 하는 특성화 고등학교를 대거 만들고, 입시과목을 대폭 줄이면(이미 과목은 더 줄일 수 없을 정도로 줄여 놓아서 이공계 진학하는 학생들이 문과 수학만 공부하고도 얼마든지 대학생 행세를 함), 사교육비가 줄지 않는다.

 문제를 쉽게 낸다, 내신을 강화한다, 수능을 등급제로 만든다, 입시교육에서 탈피한다, 봉사활동을 입시에 반영한다, 학력을 묻는 본고사형이 아닌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 통합 논술 시험을 장려한다, 등등 극약 처방 일색의 기절초풍 교육 코미디는 봉숭아 학당의 '무지무지 진지한' 교장의 무차별 지시처럼 나올 대로 다 나왔다. 마침내 일개 사기업에 지나지 않는 교육방송의 교재를 수능시험의 바이블로 삼는 또 다른 극약처방까지 썼다. 그것 역시 사교육에 지나지 않는데 그것을 정부가 밀어붙인다는 이유만으로 공교육이라 강변하며, 국정 교과서와 수십 종 검인정 교과서와 수백 종 참고서를 산 채로 고려장에 묻게 만들고 전국의 40만 교사를 스타 강사 몇 명의 조교로 전락시키려 갖은 애를 다 쓴다. 공정거래위와 국세청을 내세워 걸핏하면 시장지배 사업자의 독과점에 철퇴를 가한다며 쓴 소리하는 언론사와, 눈물겹게 해외 공룡 다국적 기업과 경쟁하는 국내 도마뱀 대기업에 괘씸죄 벌금과 마녀사냥 세금을 물리는 정부가 EBS에는 갖은 특혜를 베풀며 교육 독과점을 적극 장려한다. 그러면 사교육비가 획기적으로 준다고 장담하면서! 그렇게 해서 사교육비가 줄어들었나 하면 정반대다. 해마다 더 늘어난다. 이제는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 대학생의 사교육비도 당당 세계 1등이라고 한다(바바라 이싱거 OECD 교육국장).

 초중고만이 아니라 대학까지 한국의 교육은 총체적 위기에 처했다. 지난 17년간 사교육 마녀사냥에 전력을 기울인 업보다. (노태우 정부의 정원식 교육부 장관은 과학고 설립, 외고 활성화, 대학본고사 일부 부활, 전교조 불허 등 사교육 대책이 아닌 교육 제자리 찾기와 교육의 국제경쟁력 제고에 몰두했지만, 도리어 달걀 세례를 받았다.)

 정치권과 교육부와 전교조가 교육을 다 망쳐 놓았다. 이들은 스스로를 전지전능한 위대한 스승이라 맹신하고 무엇이든 중앙에서 정해서 밀어붙이거나 한 줌밖에 안 되는 중앙집행위원회의 강성 발언을 앵무새처럼 외면서 일치단결하여 삭발 투쟁과 단식 투쟁에 들어가 기어코 자신들의 생각으로 정치권을 세뇌시킨 다음, 이를 전국에 무차별로 강요했다.

 아득한 옛날 어떤 부족 집단의 인구가 2만 명이 넘으면 자연적으로 국가가 성립되었다고 한다. 그 정도의 규모이면, 이해관계가 너무나 복잡해져서 몇 개의 잣대로 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버려두면 여기저기서 폭력이 난무한다. 말로 안 되면 폭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정중립의 국가가 세워져 누구나 지켜야 할 기본법을 제정하고 나머지 부분은 여러 집단에게 맡긴다. 공통의 법만 어기지 않으면, 나머지는 자유다. 그러면 개인이든 집단이든 가장 좋은 방법을 찾게 마련이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그 집단이 망하는 대신, 경쟁력 있는 집단이 살아나고 번영한다.

 한국은 인구가 무려 4천8백만이다. 2만 명의 2천4백 배다. 그만큼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다양하다. 이를 하나의 법으로, 예를 들어 교육을 평준화로 다스릴 수 있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한 마디로 미친 짓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인간은 있을 수 없다. 마르크스,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김정일이 바로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자들이다. 교육에 관한 한, 한국의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들의 연인은 국가가 아니라 권력이다. 공산국가의 독재자는 모든 권력을 독점했고, 한국의 네 대통령은 제일 만만한 교육 권력을 우선적으로 독점했다. 그것은 한국의 교육부와 전교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어수룩한 대통령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고 사실상 교육 권력을 독과점했다. 그래서 이들은 다양성, 곧 자기들에게 반대하거나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눈뜨고 못 봐 준다. 날마다 천국을 약속하면서 밤마다 학생들을 지옥으로 부지런히 끌고 다녔다.   

 이들이 한국의 교육을 말아먹을 때, 사교육이 간신히 한국의 교육을 살려 놓았다. 사교육이 없었으면, 한국 교육은 문화혁명 시기의 중국 교육처럼 처참하게 무너졌을 것이다. 사교육은 지난 17년간 한국 교육의 흑(黑)기사였다. 검은 옷을 걸쳤지만, 흰 옷 입은 기사가 양의 탈을 쓰고 주민을 못 살게 굴 때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선량한 주민들의 목숨을 무수히 구한 흑기사였다. 사교육을 때려잡으려 하지 말고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실수요자인 학부모는 공교육에 눈살을 찌푸리고 사교육에 박수를 보낼 줄 안다. 흑기사의 도움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흑기사는 자식의 교육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기 때문이다.  

  사교육은 아예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교육의 정도를 걸으면 된다. 무엇보다 자율권을 주어야 한다. 민사고를 보고 자립형 사립고를 보라. 포스텍(포항공대)과 카이스트를 보라. 영진전문대와 웅진세무대를 보라. 이들은 약간의 자율권만으로도 지방대의 불리함을 능히 극복하고 서울의 명문고와 명문대를 능가한다. 그들만이 아니라 먼저 사립부터 우선적으로 자율권을 대폭 허용해야 한다. 정부가 사립재단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할 권리가 없다. 그들에게 자율권을 대폭 허용하는 것은 권리를 되돌려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바로 자유민주주의다. 교육 민주화의 첫걸음이다. 그리고는 망하든지 흥하든지 내버려 두라. 절대 안 망한다. 대신 정부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세계적 명문학교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구경하는 감격을 맛볼 것이다. 교육열이 유별난 나라라서 선진국 수준의 자율권만 주면,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개성이 찬란한 명문(대)학교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게 되어 있다. 사립학교가 잘 되는 것을 보면 공립학교도 절대 가만있지 않는다. 그러면 그들에게도 자율권을 대폭 허용하고 재정적 지원을 아낌없이 하라. 사립(대)학교 못지않은 세계적 명문(대)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솟아날 것이다.

 공교육이 국제경쟁력을 갖춰도 한국의 위대한 사교육은 여전히 틈새시장에서 만만찮은 경쟁력을 갖출 것이다. 이 때도 감사해야 한다. 표창장을 주고 훈장을 주어야 한다. 공교육이 못하는 것을 이들이 대신해 주니까, 얼마나 고마운가. 엎드려 절하고 그들에게 한 수 배워야 한다. 이어서 함께 손잡고 세계의 황금 교육시장으로 물밀 듯이 진출해야 한다. 너도나도 외국에 분교와 분원(分院)을 세워 외국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세계의 학생들이 교육 최선진국 한국의 (대)학교와 학원으로 다투어 공부하러 오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대한민국은 미국과 일본도 두려워하는 중국과 인도를 전혀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2007.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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