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비장한 생애와 빨갱이들의 저주스러운 삶.
28년 전 그날 저녁과 오늘 저녁
그날 나는 처음으로
회사에 그냥 가지 않았다.
무단결근이었다.
부마사태 이후
긴박해져 가는 긴장 속에
점심시간에
남대문교회 뜰에 서서
서울역 광장을 내려다 보면서
데모군중으로 뒤덮일 날을 상상해 보곤 했던 시절.
그 당시 장안평에
신혼살림을 막 차려놓고 있었는데
그 얼마 전 이사하던 날 오후였던가
갑자기 돌풍이 일면서
황진(黃塵)이 날리자
누군가가
서울에서 황색먼지가 날리면
난리가 나는데 걱정하던 게 생각났다.
저녁밥을 일찍 먹고
웬지 집안에 있기가 갑갑해서
혼자 중량천 둑길로 나가서
간단하게 산보를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이틑날 아침
현관에 떨어진 신문을 드니
朴대통령 有故라고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더 절박한
기사가 있었으니
바로 수습기자 1차발표 명단이었다.
253번.
내 수험번호가 있었다.
이럴 수가
하필 박정희가 죽는 날에...
독재자가 죽었으니
민주주의가 꽃피고
살맛나게 됐다고 생각되어
싱글벙글 웃고 출근한 내게
직장 선배는 뭐가 좋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지금
박정희의 무덤 앞에 서서
한강변을 머얼리 내려다 보며
그가 이룩한 기적을 곰씹으며
그의 비장한 삶을 되돌아 보는 나.
오늘날의 빨갱이 세상이 오는데
그의 독재정치가 한 몫 단단히 하기는 했어도
그때 그가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었을까
곰곰히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1961년에서 1979년까지
동서냉전이 팽팽한 가운데
우수한 과학기술 전통을 가졌던
동독을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과
세계최대의 노동력을 가진
중공 등 오늘날 우리의 경쟁자들이
공산주의 이념의 암흑에 묶여 있던 그 때
녹슨 채 부두에 묶여 있던 대한민국호를
가공무역의 블루오션으로 몰고 나가
성공적인 항해를 마친 선장이
바로 박정희였다고 생각한다.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그 결정적인 20년을
허송하지 않고 번영으로
이끌 수 있었을까
전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박정희의 일생에 비추어
그를 욕하고 폄하해 온
민주투사의 탈을 쓴
반역도당들의 죄가 더욱 가증스러움은
10년이란 귀중한 시간을
허송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대한민국을 망치는데
열중해 온 사실이다.
28년 전의 저녁과 오늘의 저녁
- coreano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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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0-26, 2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