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교육 인기영합, 좌파정부 뺨친다

이명박은 무엇보다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진일보한 교육 정책을 내놓는가 싶더니, 뒤돌아서기 무섭게 정통우파의 뒤통수를 치고 있다. 현재 전국에 6개교밖에 없는 자립형 사립고 100개를 만들겠다고 하여 정통우파의 가슴을 설레게 하더니, 자립고 정원의 30%를 가난한 학생들로 우선 선발하게 강제하고 그들 중 15%에게는 정부 예산으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어 주고, 나머지 15%에게는 등록금을 대어 주겠다고 한다. 각각 현재 수준으로 한 학생에 1000만원과 600만 원이 돌아갈 것으로 보아 소요 예산은 1440억 원으로 추계한다. 다 합해 봐야 몇 푼 안 된다는 의기양양 변명으로 들린다.


 또한 필답고사는 아예 불허하고 내신과 면접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게 하겠다고 한다. 범여 후보에 선수 친 느낌이다. 노무현 식으로 표현하면, 가난한 80%의 표를 뭉텅 잠식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51% 지지율이 아니라 99% 지지율이 나올까 걱정스럽다.


 자립형 사립고가 뭔지도 내신이 뭔지도 필답고사가 뭔지도 이명박과 그의 교육 보좌관은 전혀 모르는 듯하다.


 1994년 김영삼 정부는 평준화 지역의 고입 연합고사를 폐지했다. 중졸 학생이 고등학교 신입생 정원과 거의 비슷하여 실질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고, 학생들에게 입시 부담을 확 줄여 준다는 명분이었다. 이어서 김영삼 정부는 부활된 대학 본고사도 폐지했다. 노태우 정부에 의해 잠시 주어졌던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다시 박탈한 것이다.


 연합고사는 폐지할 게 아니라 더 강화해야 했다. 신입생 숫자가 아니라 성적에 따라 선발해야 했다. 중학교 3학년은커녕 중1 실력도 안 되는 학생들이 그 후로 물밀 듯이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사실상 유급제가 없는 우리나라는 최소한 연합고사로 한 번 걸러야 한다. 200점 만점에 120점이 안 되는 학생은 인문계에, 110점이 안 되는 학생은 실업계에 받아들이지 말아야 했다. 학생이 적으면 학급 당 인원을 줄여 선진국 형으로 만들면 되었다.


 공부는 단계가 있어서 한 번 놓치면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도 따라가기 힘들다. 실지로 아인슈타인은 재수해서 대학에 들어갔지만, 기초가 부족해서 대학에서 곤욕을 치렀다. 그래서 나중에 첫 번째 부인이 된 여학생한테 ‘사랑을 미끼로’ 개인 과외를 많이 받았다. 초등학교 3학년이면 벌써 기초가 탄탄하여 공부할 수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으로 딱 갈라지는데, 그런 상태로 다시 6년을 더 가방과 실내화만 들고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수십만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학생들 중 가난한 집안의 학생이 다수를 차지한다. 시간도 없고 돈도 없는 부모가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에는 학교에서 열심히 가르쳐 주어 그것만 따라가면 가난한 집안 학생들도 얼마든지 명문대에 갈 수 있었지만, 김대중 정부에서는 학교 수업 정상화란 미명으로 보충과 자율학습, 심지어 모의고사까지 못 보게 한 결과, 학교 공부만으로는 도저히 가난한 집안 학생은 따라가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서울이 제일 심하다. 그래서 강남의 8학군이 더욱 각광받게 된 것이다.


 유급제도 없고 알량한 연합고사도 없으니까, 한 번 뒤떨어진 학생은 마냥 논다. 노는 것이 지겨울 정도로 논다. 이들이 만 날 천 날 생각하는 것은 ‘뭐, 재미있는 것 없나?’ 수업일수만 채우면 자동적으로 학년이 올라가고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으니까! 어찌 보면 이런 학생들이야말로 머리가 제일 좋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니까! 이젠 대학의 문이 더 이상 넓혀질 수 없는 데까지 넓혀지니까,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들이 대학에 버젓이 들어간다. 한 번 떨어진 공부는 초등학교 4학년만 되어도 따라가기 힘든데, 그런 상태로 대학까지 갔으니, 까만 건 글씨고 하얀 건 종이일 수밖에 없다. 대학생이 분모만 다르면 분수의 더하기 빼기도 못하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그게 바로 일본식으로 말하면 ‘유토리’ 교육의 실상이다.


 내신이 화려한 학생들이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죽을 쑤는 경우가 많다. 알고 보면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연합고사를 보면 3학년 전 교과과정을 반복 학습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화려한 점수는 절대 못 얻는다. 당연히 학교서도 거기에 맞춰 공부 시키고 학생도 그런 식으로 공부한다. 그런데 연합고사가 없어지면서 학생들은 이제 몇 페이지 되지 않는 범위만 달달 외우면 된다. 문제도 참 쉽게 낸다. 그렇게 본 시험은 돌아서면 잊어 버린다. 심지어 중학 과정을 다 못 배우는 경우도 있다.


 그와 정반대로 내신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은데, 고등학교에 들어오면 펄펄 나는 학생들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특수목적고나 자립형 사립고 시험에서 낙방한 학생들이다. 이들은 비록 시험에는 떨어졌지만, 제대로 공부한 학생들이다. 비록 실패했지만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해 본 ‘인생 선배’학생이다. 이들의 기초 실력은 탄탄하다.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내신은 거의 믿을 것이 못 된다. 거기엔 ‘인정’ 점수가 너무 후하다. 더군다나 지역에 따라 학생들의 학력 차이가 말 그대로 하늘과 땅이다. 같은 서울에서도 강남이나 목동의 학생들은 중간 정도가 이른바 강북 지역의 1등 2등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전국 연합고사를 보아 그걸 잣대로 삼으면 오히려 내신 문제도 제대로 낸다. 평가원에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표본 조사로 1~2% 정도 보기만 하고 공개도 않고 활용도 않는 학업성취도 시험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그러면 전국 어디서나 어떡하든 그 시험을 잘 보게 만들려고 학교서 공부시키게 되어 있다. 가난한 집안의 학생도 물론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면 시험 문제도 제대로 낸다.  


 가난한 학생일수록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더 노력하게 만들어야 하고 더 실력을 쌓도록 다그쳐야 한다. 절대 봐 주지 말아야 한다. 잘사는 집안의 학생이야 실력이 좀 못해도 사회에 나가서 부모 음덕에 잘살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의 학생은 오로지 믿을 것은 실력밖에 없다. 그들은 월등한 실력으로 ‘운 좋은’ 동료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야 한다. 가난하게 자랐다는 이명박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독하게 공부하고 독하게 일했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집안의 학생일수록 의지로 실력을 쌓고, 실력으로 행운을 만들어야 한다.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실력이 형편없이 뒤떨어지는 학생들을 30%나 공립도 아닌 사립에 선발하도록 국가 권력이 강제하고 돈으로 입막음하려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자존심과 미래를 짓밟는 폭력이다.

 사립은 시험을 보든 말든 등록금을 얼마나 받든 말든 일체 간섭하지 말고, 돈도 주지 말고, 정부는 공립 명문고를 전국에 100개 이상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겐 과학고처럼 모든 걸 무료로 해야 한다. 그러면 야간 상고의 가난한 학생이 풀빵을 팔면서도 독을 피우며 공부하여 명문대에 합격했듯이 입지전적인 학생이 나오게 되어 있다. 학비가 사립의 반밖에 안 된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는 교육이 제대로 섰던 예전에는 가난한 학생들이 주를 이루었다. 연세대나 고려대는 돈 없는 학생은 아예 가지도 못했다. 이명박이 진짜 가난했다면 고려대에 장학금 받고 갔을 것이다. 또한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유급제를 도입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중학교 들어갈 때와 고등학교 들어갈 때 입학시험을 봐서 일정 수준이 안 되는 학생은 진학시키지 말아야 한다.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1년, 2년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더 다니게 해야 한다. 정부는 그런 학생을 위한 예산 즉 그들 때문에 학생이 많아진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예산을 더 확보해야 한다.


 선심성 예산은 농업예산이든 중소기업예산이든 남북경협자금이든 교육예산이든 인기 끌고 표 모으는 데는 잠시 잠깐 좋을지 몰라도, 국가나 국민(혜택을 받든 안 받든)에게나 장기적으로는 눈물과 피와 저주의 씨앗이 된다. 모름지기 후보는 51%의 표를 얻을 생각을 해야지 99% 표를 얻을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민주국가에서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는 도리어 31% 표를 얻거나 49% 표를 얻는다. 이명박은 무엇보다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

          (2007.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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