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변증법(dialectic)은 논리의 단순함과 적용 가능성의 광범위함 때문에 지금도 아무 입에나 오르내린다. 자연과학에서 제일 유명한 공식이 뉴턴의 F=ma와 아인슈타인의 E=mc²이라면, 사회과학에서 그와 쌍벽을 이루는 공식이 '정(正)-반(反)-합(合)'으로 표현되는 헤겔의 변증법이 아닐까 한다. 변증법은 원래 상대방의 말에서 모순을 찾아내는 대화법(dialektike)의 의미로 그리스의 제논이 시작했는데, 약 2천 년 후 칸트는 이를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진리'에서 모순을 가려내는 논리의 틀[論法]로 발전시켰다. 헤겔은 다시 제논과 칸트가 문제삼은 인식만이 아니라 존재까지 아울러, 자기모순을 포함한 일체의 것이 '정(正)-반(反)-합(合)'의 단계로 발전하여 궁극적으로 절대지(絶對知) 또는 세계정신에 이른다고 공식화했다. 그는 자신의 조국을 침략한 나폴레옹을 세계정신의 구현이라고 반겼다. 아마 나폴레옹이 오늘날의 EU 같은 유럽 통합체를 만들 수 있다고 착각했던 듯하다.
후에 마르크스는 포이엘바흐의 유물론과 헤겔의 변증법을 결합하여 헤겔의 세계정신 곧 마지막 '합'의 단계가 노동자와 농민이 생산수단을 장악한 공산사회라고 결론지었다. 마르크스의 사유체계에 따르면 공산사회는 소외가 원천적으로 사라진 절대평등의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모든 인식과 존재에 내재된 자기모순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발전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그는 공산사회가 도래한 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더 상상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 식으로 말하면, '철학의 빈곤'이 아니라 '상상력의 절대빈곤'이다. 그는 좋게 말하면 순진무구한 자였고, 사실대로 말하면 자신의 말과 이론은 일체가 무오류라고 강변하는 사교 또는 마교의 교주와 같은 자였다. 마르크스가 공산사회의 무대 등장과 더불어 황급히 막을 내린 것은 옛날에 할머니가 눈이 말똥말똥한 손자와 손녀에게 들려주는 전설이나 동화의 천편일률적인 해피엔딩과 유사하다.
'그래서 왕자와 공주는 결혼해서 잘 살았단다. 얘들아, 이제 우리도 꼭 안고 그만 자자.'
현대문학은 오히려 결혼 이후에 발생하는 갈등을 주제로 삼는 편이다. 결혼도 또 다른 시작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끝없이 욕망하게 마련이고, 우여곡절 끝에 욕망을 채우더라도 곧 새로운 욕망(불교의 해탈이나 도교의 불로장생, 기독교의 구원도 일종의 욕망)에 불탄다.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인간은 영원히 만족을 모르는 존재다. 따라서 설령 공산사회가 지상낙원이라 할지라도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뛰쳐나왔듯이 또는 쫓겨났듯이, 인간은 그 인위적 지상낙원에도 절대 만족할 리가 없다. 만족하는 자는 새로이 기득권을 획득한 극소수 지배권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자들도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을 뿐, 그것 외에 또 다른 새로운 욕망에 불타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바치고 자기만 따르면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게 해 주겠다는 사탄 숭배자의 거짓처럼, 마르크스는 자신의 과학적 예언은 역사의 필연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백만 년 후라면 모를까, 현재까지는 하나도 실현된 것이 없다. 다만, 과학적 공산주의를 내세워 폭력으로 국가 권력을 장악한 새로운 폭군이 땅 한 뙈기, 구멍가게 하나, 철공소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착취와 약탈과 공포로 권력을 유지하는 극악한 새 지배계급을 구축한 일은 있다.
대한민국의 자본주의와 북한의 공산주의,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와 북한의 전체주의, 대한민국의 시장경제와 북한의 전시통제경제가 변증법의 역사적 법칙에 따라 하나로 합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이런 자들이 지난 15년 동안 한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어린애들이 하얗게 까맣게 또는 파랗게 빨갛게 또는 노랗게 잿빛으로 칠한 나무토막을 갖고 놀다가 하얀 것과 검은 것을 한 데 모으고 파란 것과 빨간 것을 한 데 포개고 노란 것과 잿빛의 것을 한 데 쌓는 것처럼, 물과 기름을 또는 나무와 불을 또는 지구와 블랙홀을 한데 담거나 모으거나 만나게만 하면 둘이 절로 합하여 서로의 장점을 살린 새로운 하나가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거나, 속셈은 전혀 다르면서 시간을 벌고 순진한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 연막을 치는 자들이다.
헤겔의 변증법처럼 '정-반-합'만 있는 게 아니다. '정-반-역(逆)'도 있고, '정-정-정'도 있고, '반-반-반'도 있다. '정-정-반'도 있고, '반-반-역'도 있다.
동서독은 '정(서독)-반(동독)-정합(正合 자유평화통일)'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저승에서 헤겔이 누구보다 기뻐했을 것이다. 남북한도 그런 쾌거를 이룰 절호를 기회를 맞았다. 오히려 독일보다 더 유리했다. 그러나 독일의 자유평화통일을 흡수통일이라며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반대한 무리가 다름 아닌 한국에서 나왔다. 그로써 한국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
대한민국은 크게 미군정 3년, 이승만 정부 12년, 박정희와 전두환과 노태우 정부 32년, 김영삼과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15년으로 나눌 수 있다. 앞의 셋은 모두 '정(正)'의 시대였다. 그 중심은 자유민주와 시장경제였다. 반면에 이 시대에 북한은 한국과 대비하여 '반(反)'의 시대였다. 김영삼 정부부터 한국은 '정(正)'의 시대 또는 북한의 '반(反)'을 청산하고 '정합(正合)'의 시대로 가야 했다. 그것이 공산권이 몰락한 후 전세계가 강요한 시대정신이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시대정신에 감히 반기를 들고 '반(反)'의 시대를 열었다. 반세기 동안 '반(스탈린과 김일성과 김정일의 북한)'의 흐름에 맞서 도도한 '정'의 흐름을 유지한 한국의 찬란한 과거를 깡그리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한편 한국의 '정'이 없어지면서 그 대자(對自)인 북한의 '반'도 자연히 소멸되었다. 이론상으로는 중국이나 러시아를 따랐다면, 북한이 '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절대권력을 가진 자가 스스로 그렇게 할 리가 없다. 그는 김일성의 음덕과 한국과 중국의 도움으로 '역'으로 치달았고 지금까지 4800만을 상대로 판판이 이겼다.
이제 한국의 '반(反)'과 북한의 '역(逆)'이 합하여, '반역(反逆)'으로 급격히 합해지고 있다. 역사의 대반역(大反逆)이 서해의 NLL을 중심으로 무르익고 있다. 반역이 부정(否定)이라면 '부정의 부정'에 의해 비로소 한국은 정합(正合 자유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007. 1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