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싸울 때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자주 보인다. A와 B가 싸우기 전에, A가 B의 화를 있는 대로 돋운다. B가 참을수록 A의 야비한 짓은 점점 더 도를 더해 간다. 참다 못한 B가 마침내 불끈 쥔 주먹을 치켜들고 부들부들 떨거나 부엌칼을 들고 와서 눈을 뒤집는다. 그러면 갑자기 상황이 역전된다. 못된 A가 머리를 들이밀거나 배를 쑥 내밀며 큰소리친다.
'때려? 그래 때려 봐라. 찔러? 그래 찔러 봐라. 네가 그렇게 돈이 많냐?'
착한 B는 갑자기 주춤한다.
'병신, 때리지도 못하면서! 등신, 찌르지도 못하면서!'
그 순간 B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대로 한 방 날려 버리거나 칼로 푹 찔러 버린다. 그 순간 물증을 확보한 A는 의기양양하게 울부짖는다.
'이게, 진짜 사람 치네. 이 화상이 진짜 사람 죽이네. 오냐, 죽여라! 죽여라!'
옛날 동네 어른들의 판결에서나 현대 법정의 심판에서나 A는 피해자가 되고 B는 가해자가 된다. 순간적으로 감정을 이기지 못한 B는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원인 제공자인 A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생을 밝음 속에서 야비한 짓을 일삼으며 잘먹고 잘산다.
교육이 흐트러지면서 학생들이 충격적인 동영상을 자주 인터넷에 올린다. 그러면 전후 사정은 따져보지도 않고 야만적인 교사에 대한 여론재판이 시작된다. 학생들이 아무리 떠들고 졸아도 아무리 무단 결석하고 무단 조퇴해도 표정과 말투로 천 마디 말보다 더한 모욕감을 꾸짖는 스승에게 안겨 주어도 마음 위에 칼을 올리고(忍) 못 본 척하거나 페스탈로치의 어투로 비굴하게 달래는 교사가 점점 늘어난다. 교활한 학생들은 건성으로 잠시 감동 받은 척할 뿐 수업 분위기는 갈수록 엉망이 되어 가는데, 하늘처럼 높은 곳에서는 번쩍번쩍 평가의 칼을 휘두르며 협박의 도를 점점 높인다. 방송과 언론도 덩달아 무능하고 나태한 교사에 대한 질책의 채찍을 귀가 따갑게 공중에 딱딱 후려친다.
지엄하신 분들이 민주와 인권과 교육 정상화를 외치는 소리가 높아질수록, 교사의 약점을 잡은, 공부와 전기 철조망을 친 학생들의 지능적인 가학 취미는 점점 늘어난다. 친절한 교육부는 학생기록부의 종합의견란에 가능한 한 긍정적인 말을 쓰라고 예시문까지 알려 주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한다며 학생들에게 학생기록부를 사전에 반드시 두 번 세 번 확인점검하게 한다. 담임이 1년간 자신을 좋아했는지 미워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미워했다면 그 날로 원수지간이 된다. 사실을 상당히 완곡하게 표현하여 미움의 한 자락을 보인 담임은 제자에 대한 사랑이 없는 쓰레기 교사라고, 온갖 잘못은 자신이 저질러놓고도 시침 뚝 떼고 쪼르륵 부모에게 일러바치면 이젠 그 부모까지 합해서 치를 떤다. 뒷골목의 언어가 난무한다. 동네와 인터넷에는 온갖 괴이한 소문이 떠돈다. 꿈자리가 사나울 것을 예상한 담임은 열에 아홉이 아니라 이제 열에 열 '좋은 게 좋은 말'을 골라 쓴다. 저간의 사정을 잘 아는 대학은 장황하게 칭찬을 늘어놓은 종합의견란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자 사회의 거울이다. 사회는 더하다. 아무리 잘했더라도 주먹 한 번 휘두르면 '행복 끝'이다. 무고와 위증과 거짓이 난무한다. 한국에선 법원 업무의 70%가 거짓을 가리는 것이다. 아름다운 말로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해도 권력의 비호로 들키지만 않으면, 본인은 오색구름을 타고 가문은 별처럼 빛난다. 들켜도 늦게 들키면, 착한 국민들이 무덤덤 넘어간다. 털끝 만한 피해라도 입은 사실이 있으면, 30년 40년에 걸쳐 보태고 더하고 색칠하고 고아 먹고 우려먹는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방송과 언론과 소설과 드라마와 영화는 현재의 권력자에게로 수시로 꽃가마를 들고 달려간다.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불법폭력시위를 막다가 불이 나서 타 죽은 경찰이 갑자기 거룩한 민주 운동을 탄압한 독재자의 하수인이 되고, 불법폭력시위를 주도하고 방화를 저지른 자는 민주열사로 둔갑한다. 물증에 입각한 재판으로 간첩으로 판명된 자들이 민주열사, 통일선구자로 화려하게 각광받고, 법과 양심에 따라 작은 방망이를 휘두른 재판관은 부관참시된다.
이건 애교 수준이다. 김정일 집단은 아직도 남침을 북침이라고 박박 우긴다. 그러면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는 어느 쪽에서 시작했든 그게 무엇이 중요하냐고 두둔해 준다. 그들은 자유대한의 자유를 최대한 이용하여 제국주의의 음모설을 내세우거나 한민족 공히 강대국의 피해자라고 한탄하며, 우르르 평택으로 달려가 이 땅에서 전쟁을 획책하는 무리는 영원히 물러가라고, 만악의 근원은 영원히 백의민족이 사는 금수강산에서 사라지라고, 의병이 죽창을 휘두르듯 의분에 넘쳐 힘차게 죽봉을 휘두른다. 경찰이고 군인이고 이들에게 걸리면 미친 개 맞듯 맞을 뿐 신음 소리도 못 낸다. 그러다가 어찌 찰과상이라도 입으면, 민중의 지팡이가 평화 시위하는 민주 시민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다.
이건 서막에 불과하다. 북한이 못 사는 건 한국과 미국과 일본 탓이라고 성토한다. '남측'의 독재자들이 북한의 동족을 머리에 뿔이 달린 도깨비라고 가르치지 않았느냐고, 그런 슬픈 희극을 수십 년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너무도 진지하게 연출하지 않았느냐고, 한쪽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분개하고 개탄한다. 세계 만민이 손에 손잡고 한데 어울려 사는 21세기에 아직도 빨갱이 타령하며 냉전시대를 그리워하는 자들이 곳곳에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며 그런 자들을 모조리 소탕해야 된다며, 권력의 독한 술에 취하여 충혈된 눈을 부릅뜬다.
A가 B의 원인이 되고 B가 C의 원인이 될 때, A를 슬그머니 빼고 A의 결과인 B를 유일한 원인으로 몰아붙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5년 권력자들은 이제 A를 당당히 무대의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시키며 B는 C의 원인일 뿐 아니라 A의 원인이기도 하다고 강변한다. 남북분단과 북한의 빈곤과 북한의 중무장은 모조리 미국과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과 노태우 때문이라고 아무리 털어도 안 나는 먼지를 털고 또 털어 보이지도 않는 그 먼지를 보라, 이 사막의 모래폭풍처럼 거대한 먼지를 보라, 이렇게 날마다 외치고 있다.
미국과 역대 반공 정부는 모조리 악의 근원으로 영원히 낙인찍으려고, 세무조사를 남발하고 과거사법과 '선진'언론법을 제정하고 기자실에 대못질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고 들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아예 무력화시킨다.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2007.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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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과 결과 뒤바꾸기(1)
[그들의 민주 남용과 인권 악용과 평화 오용이 심히 걱정된다.]
궤변론자들의 고전적 수법 중에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는 것이 있다. A가 B의 원인이 되고 B가 C의 원인이 될 때, B는 A의 결과이고 C는 B의 결과이다. 또한 A는 B뿐만 아니라 C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 때 A를 쏙 빼면 B는 C의 원인일 뿐 A의 결과라는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A를 의도적으로 제외하더라도 C가 좋은 일일 때는 크게 문제가 안 될 수 있지만, C가 나쁜 일일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A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은 C의 나쁜 결과에 대해 오로지 B만 헐뜯게 된다. 특히 A가 B와 C를 압도하는 힘을 가졌을 경우, 다시 말해 B는 단지 A의 미끼로 이용되었을 뿐이지만 A에 대한 증거를 감쪽같이 인멸했을 때, 후에 B는 희생양으로 바쳐지고 진실은 은폐되고 왜곡된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A는 사회적으로 대단한 지위를 가졌지만 사실은 조직폭력의 두목이고 B와 C는 절친한 친구 사이이자 선량한 시민이다. A가 B의 아들을 인질로 잡고 C에게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는 B로 하여금 C로부터 억대의 다이아몬드를 훔쳐서 A한테 바치게 하고 '임무 완수' 후에 B의 아들을 풀어준다. 단, B가 A와 한 통속인 경찰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경찰은 A가 B의 집에 은밀히 숨겨 둔, A에 의해 매수된 감정가가 진짜라고 감정하기로 약속된 가짜 다이아몬드를 찾아내서 B를 바로 무고죄로 감옥에 집어넣을 수 있고, A는 언제든지 조직을 동원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B의 아들을 죽일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B는 영원히 도둑의 누명을 벗을 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아는 다음 사건도 바로 그런 예이다. 2004년 대광고의 강의석 학생(이하 강의석)은 학교에서 강제로 기독교 예배를 보게 하는 것에 대해 종교의 자유를 내세워 거부했고, 대광고는 전학을 종용하다가 강의석이 거부하자 퇴학 조치를 내렸다. 강의석은 40여 일간 단식투쟁했고 이 문제를 법원으로 가져갔다. `퇴학처분 무효확인 청구사건의 판결 확정시까지 퇴학처분 효력을 정지한다`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2개월 후 그는 복적되어 2005학년도 수시모집에 응시하여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판결은 강의석이 서울대에 재학 중인 2007년에 내려졌다. 법원은 원고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일부 승소였다. 사람들은 강의석과 그를 옹호한 개인 또는 단체 모두에게 박수를 보냈다. 대광고에겐 손가락질했다. 대광고는 가해자인 A, 강의석 학생은 피해자인 B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다. 대광고는 B, 강의석은 C였다. A는 교육부다.
만약 교육부가 사립고인 대광고의 자율권을 원천 무시한 채 평준화를 강행하지 않았더라면, 대광고는 결코 가해자가 될 수 없다. 기독교 계통의 학교로서 정정당당한 권리를 행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대광고가 설립 목적에 맞는 학생을 선발할 권리를 갖고 있다면, 기독교인이 아니거나 기독교가 싫은 학생은 아예 지원을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사립도 공립과 같이 평준화해 버린 한국의 교육 체제에서는 대광고도 피해자이고 강의석도 피해자이다. 사람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런 사실에는 눈을 감고 강의석 학생을 영웅으로 만들고 대광고를, 심지어 어떤 이들은 기독교를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 집단으로 매도했다.
그 무렵을 전후해 벌어진 일은 사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친여 시민단체와 여당과 정부가 사립학교 재단을 숨도 못 쉬게 옥죄는 쪽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학법 파동이었다. 30여 년 동안 자율권을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일부 사립학교의 비리를 문제 삼아 이제 중등학교만이 아니라 대학까지 사학 재단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다행히 한나라당의 시베리아 추위 속 외로운 투쟁으로 사립학교의 명맥은 살렸다.
역대 반공정부에 대한 매도도 위와 맥락을 같이 한다. 반공으로 억울하게 인권이 침해된 경우가 없을 리 없다. 문제는 그 일부 부작용을 핑계로 역대 반공정부를 과거사 정리라는 미명하에 밑도 끝도 없이 매도하는 것이다. 왜 반공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가, 반공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 이런 근원적인 문제는 아예 언급도 않는다.
역대 반공정부는 A가 아니고 B다. 그리고 일부 인권 침해 받은 사람들은 B가 아닌 C다. A가 없으면 B는 있을 수 없고 C도 자연히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잘못을 B에 뒤집어씌우고 반공의 원인도 어디서 궁예의 독심술을 배웠는지 엉뚱하게 정권강화 또는 독재권력 유지에서 찾는다.
A는 바로 김일성과 스탈린과 모택동이다. 육이오 사변이다. 한국인은 막연하게 알았던 공산당의 실체와 반공의 절박함을 김일성이 외세를 빌어 일으킨 육이오를 통해서, 무수한 무장공비를 통해서, 영원히 잊지 못할 동족학살과 엄청난 재산피해를 통해서 스스로 체득했다. 여기에 정부가 국가의 주권과 국민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을 따름이다. 공산권의 몰락과 더불어 역대 반공정부가 시대적 사명을 훌륭히 담당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A는 여전히 김정일에 의해 답습되고 있다. 그런데 A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지금도 자행되는 A의 인권유린에는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B가 A에 당당히 맞서서 국가의 주권 그리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실행한 정정당당한 정책 때문에 일부 발생한 인권침해(C)에 대해서만, 정부와 여당과 친여 시민단체 등이 집요하게 방송과 신문과 인터넷을 동원하여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고 있다. 악의 원천인 A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퍼 주고 또 퍼 주고 전세계가 규탄하는 A의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얼굴에 철 가면을 쓰고 몸에 철갑을 두르는 것으로 미루어, 80년대 이후에 노골화된 A에 대한 찬양 세력이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을 잡은 것으로 미루어, 대한민국의 선량한 국민 대다수는 그들의 의도적인 '원인과 결과 뒤바꾸기'에 대해서 심히 걱정하고 있다. 그들의 민주 남용과 인권 악용과 평화 오용에 대해 심히 걱정하고 있다. 정권교체를 부르짖는 야당에서도 A에 대해서 선문답을 일삼고 A에게 아첨하고 A의 인권유린에 대해서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자들이 대세를 장악하고 있는 것 같아 더욱 걱정이다.
(2007. 11.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