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히 500명은 될 것 같은 지지자들은 기자회견 시작 한참 전부터 빌딩 앞에 모여들었다. 입구 쪽 설치된 대형화면에 李 前총재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큰 북을 치며 『이회창』을 연호했다.
李 前총재가 『한나라당의 평화비전』, 『후보의 애매한 대북관』 등을 지적하며, 『이것이 제가 출마를 결심하게 된 근본 이유』라고 발언하자, 환호소리는 더욱 커졌다.
《...시도 때도 없이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도심의 도로를 점령하여 교통마비를 가져오는 일은 저 이회창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 군인들을 공격하거나, 젊은 전경들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자들은 「공공의 적」으로 법에 따라 엄단하겠습니다...》
친북좌익을 엄단하겠다는 李 前총재의 질타에 분위기는 열광(熱狂)의 도가니로 변했다. 환호하고, 박수치며 『이회창!』, 『이회창!』, 『이회창!』을 소리쳤다.
단암빌딩 앞에는 익숙한 얼굴이 한 둘이 아니었다. 지난 5년 친북좌익과 「처절한」 싸움을 벌여 온 저들은 저마다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함박웃음을 짓거나 환호하고, 서로 아는 체 하며 손을 잡았다.
맥아더동상을 지키기 위해, 미군기지 파괴를 막기 위해, 빨치산 위령탑 철거를 위해...인천과 평택과 고창, 전국을 누벼온 이들이다. 한 여름 뙤약볕, 초겨울 장대비 맞으며 구호를 외쳤다. 험한 길 달려온 저들은 이제 정치적 대변인(代辯人)을 찾은 것 같았다. 『소비자로서 정치적 선택의 자유를 갖게 됐다』는 사실만으로 흐뭇해했다.
『나라 지키자』는 일념 하나로 버텨 온 사람들이다. 공중파는 물론 조·중·동 그리고 정치권으로부터 철저히 외면(外面)당했다. 역적(逆賊)들, 빨갱이는 안 된다는 주장을 신(新)우파조차 부관참시하기 일수였다. 언론홍보에 능한 「국물族」들은 저들을 『올드라이트』, 『극우세력』, 『수구집단』으로 비방해댔다.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나라사랑 하나로 버텨온 5년이었다. 애국집회라면 빠지지 않던 저들 「아스팔트 전사」들은 누구도 예상 못한 시기(時期), 예상 못한 방법(方法)으로 정치세력화 돼 있었다. 이회창은 그 뇌관(雷管)이 됐다.
저들은 세련되지 못하다. 과격하기도 하다. 다혈질이다. 그러나 반공적이고, 보수적이고 누구보다 대한민국을 뜨겁게 사랑했다. 「아스팔트 전사」들은 친북좌익과의 애매한 「중도적 타협」 대신 「완전한 척결」을 선택했다. 선택의 절차는 비난받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을 것 같았다.
11월7일 남대문 단암빌딩 앞 거리는 「아스팔트 우파(右派)들」의 축제의 장이 돼 있었다.
역사의 신(神)은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12월19일 좌파정권 종식(終熄) 그리고 친북좌파 척결(剔抉). 「열매」는 그 「씨앗」을 평가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