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은퇴 번복, 평가는 大衆의 몫"

유독 한국사회에서만 '정계은퇴의 복귀'를 도덕적, 현실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광적 신드롬이 있다. 72세의 이회창 한나라당 전총재가 11월7일 세 번째 대통령 출마 선언을 했다. 만약 그가 선거에서 이기면 2008년 73세에 대통령으로 취임하는데 공교롭게도 김대중 前대통령이 정계은퇴 번복과 3수를 통해서 ‘73세’에 대통령이 되는 과정과 비슷해진다.

‘昌의 출마’를 두고 ‘정치적 지각변동’이라고 한다. 지각변동이 클수록 화산 폭발이 일어날 수 밖에 없고, 세차게 분출하는 용암은 기존의 지형을 가차없이 바꾸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든다. 역사는 자연계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변화무쌍하게 변화되어 가고 있다.

이 前총재의 출마선언에 대한 반대와 비방의 근거로 삼는 것이 ‘정계은퇴의 번복’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한 시민으로서 이런 반대론자에게 공개적으로 ‘정계은퇴의 번복’이 무조건 안 되는 법적, 도덕적 근거가 어디 있느냐’고 묻고 싶다.

연예인이 은막의 장막에서 은퇴했다 다시 복귀하는 경우, 스포츠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은퇴했다 다시 나서는 경우, 문인이 절필을 선언했다 다시 창작행위를 하는 경우, 예술가가 고별무대 후 다시 서는 경우 등 역사적으로 많은 경우가 있었지만 이를 법적 잣대나 도덕적으로 매도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모든 평가는 결국 대중의 몫이다. 복귀한 당사자가 여러 계층의 팬들에게 여전히 만족을 주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대중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그를 지지하고 박수를 보내곤 했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동일하게 민족과 나라를 떠나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이런 보편적 현상은 사실 정치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은 유독 한국사회에서만 '정계은퇴의 복귀'를 도덕적, 현실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광적 신드롬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드롬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듯이 은퇴 번복에 대한 비난도 현실의 당위성과 유효성 앞에서 사라졌다. 결국 그 당시의 대중의 합리적 심판, 즉 선거를 통해서 복귀한 정치인은 정치적으로 평가됐다. 그 대표적 예가 김대중 前대통령이다.

김대중씨가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3수를 통해서 대통령이 되었다. 73세의 나이로 1998년에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자신의 정권교체를 ‘50년 만의 정권교체’라고 평가했다.

만약 김 前대통령이 정계은퇴를 번복하지 않고 3수를 하지 않았으면 과연 호남을 주 기반으로 한 지금의 민주당이나 통합신당이 정권을 잡았을까? 당시 많은 비난이 있었지만 대중은 선거를 통해서 김대중씨를 심판한 것이다. 그 결과에 국민은 승복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즉 자유민주주의는 다수의 도덕적 비난이 있더라도 선거법상의 법적 하자가 없으면 누구나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게끔 보장하는 것이다.

각개의 정치인 개인과 집단에 대한 도덕적 평가는 결국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선거결과로 입증하는 것이 선동적 인민 재판을 통해서 심판하는 인민민주주의의 독재사회와 다른 ‘개인의 의사’를 최우선시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 즉 21세기 현재 한국사회의 자랑스러운 모습이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사건이 다름아닌 김대중씨의 1995년 정계은퇴 번복선언과 1998년 제15대 대통령 취임이다. 지금 이회창 前총재의 출마를 비난하는 작금의 통합신당이나 민주당 모습은 자기들이 모신 김 前대통령을 도덕적으로 생매장하겠다는 행위와 다름없다. 특히 김 前 대통령을 선택하고 그의 영도를 받은 국민들을 모독하는 몽니다.

DJ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보수층과 한나라당이 눈여겨 봐야 할 역사적 교훈이 하나 있다. ‘보수층의 관대함과 현실적 균형감각’이다. 정통보수라고 자부한 김종필씨를 중심으로 한 보수층이 김대중씨의 정계은퇴 번복을 끝까지 문제삼아 일명 ‘DJP연합’을 실행하지 않았다면 호남을 기반 한 김대중씨를 중심으로 한 중도좌파의 새정치국민회의가 정권을 잡았을까?

1995년 당시 김대중씨의 은퇴 번복시 당시 좌파들은 지금처럼 그렇게 비난하지 않았고 비판적 지지를 대부분 보냈다. 오히려 당시의 보수세력에서 지금의 한나라당처럼 대거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충청지역을 기반으로 한 보수층은 최상위 가치이자 잣대인 자유민주주의와 정계은퇴 번복이 전혀 상관 없음을 냉정히 판단하였고, 은퇴번복보다 ‘권력구조의 개편’을 더 시대적 과제로서 설정하고 이를 위한 정권교체를 선택하였다.

내각제라는 명분으로 JP로 대변되는 충청권의 보수층이 DJ와 연합하여 정권이 교체되었지만 내각제가 이루어지지 않아 결론적으로 좌파정권만 탄생시킨 꼴이 되었다고 다른 보수층이 지금까지 비난하고 있다. 냉정하게 보면 내각제 약속을 어긴 DJ가 문제이지 내각제 약속을 믿고 지지한 보수층이 비난 받을 일은 아니다.

역사는 결과지만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 과정은 이미 미래의 정해진 틀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유 선택의 의지’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그때 그때의 정황에 따라서 결단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찰하는 행위들의 충돌의 연속으로 구성된다. 그 결과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고 그 순간마다의 정황에 의하여 결단하는 주체에 의해서 굴러갈 뿐이다.

어떤 형태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법적 도덕적 평가 등 모든 평가는 오직 선거의 결과로 나타날 뿐이다. 자유민주주의가 그 어떤 정치체제보다 최고의 가치인 ‘인권’과 ‘복리’를 가장 잘 보장하는 장치는 바로 ‘선거’로 통한 판단과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선거를 통한 심판을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행위는 광역의 의미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는 ‘쿠데타적 범주’로 속한다.

DJ의 번복과 3수는 ‘국민의 정부’라는 정권교체로서 평가되었다. 이런 역사적 전례가 있는데 이 전총재의 정계은퇴 번복에 대한 비난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발전에 하등의 도움이 안 된다고 본다. 앞으로 40일 남은 선거를 통해서 우리 국민들은 ‘昌’을 평가할 것이다.

대부분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나오는 정치인에 대한 비난은 그를 가장 두려워하는 정치적 경쟁자나 집단에서 상궤를 벗어나는 비방에서 촉발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진정 국민복리를 위한 대의에만 충실하고자 하는 정치인, 정치집단이라면 선거에 앞서 국민의 판단을 혼미하게 하는 비방보다는 정책공약을 잘 만들어 선거를 통해 인정 받겠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昌’의 출마로 보수층이 분열되어 한나라당의 정권탈환이 어려워졌다고 비난하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의 한나라당이 보수층 전체를 대변하는 근거가 있느냐고. 확고한 정강과 그 실현의지가 없는 당은 국민에게 외면당하는 이합집산에 불과한 정치집단에 불과하다. 선거가 불과 40일 밖에 안 남은 마당에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MB의 대표적 공약들이 당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추인된 공약인지 아닌지도 불투명하다. 한나라당 의총에서 반대론자들로부터 동의를 받지 못한 공약이 대북정책을 비롯하여 여러 있는 것으로 안다.

현 기존 정당은 이제는 당의 이념이나 정책을 보고 정치집단을 투표하는 성숙한 구매자인 국민을 앞에 놓고도 자신들의 판매상품이 어느 것인지 제대로 내놓고 설명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은 이런 정당과 정치인에 짜증만 날 뿐이다.

직업적 예술인이 무대에서 평가 받듯이 직업적 정치인은 선거에서 평가 받을 뿐이다.


한병훈(순례자, 在비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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