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세 취임론’과 ‘昌’의 스페어론

73세의 昌, 정권교체냐 정권변종이냐 이회창 前 총재의 정계은퇴 번복의 동기 중 하나로 ‘스페어론’이 거론 되고 있다.

현 선거법상 “12월 3일부터 19일 사이에 한나라당 후보가 유고되면 한나라당은 대체 후보를 내놓을 수 없다”라는 현실에서 “이런 경우에 대비해이 전 총재를 대체용 후보로 내놓는것”이라고 한다. 과연 타당한 주장일까?


62세 신익희 민주당 후보 유세 과로사

신익희 선생은 1919년 3월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헌법을 기초하고 내무차관·법무총장·문교부장·외무부장 등을 지냈다. 1956년 민주당 공천으로 대통령에 입후보, 자유당의 이승만(李承晩)과 맞서 호남지방으로 유세를 가던 중 기차안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 향년 62세였다.


66세 조병옥 민주당 후보 – 귀국 중 병사

‘미스터 쓴소리’로 알려진 민주당 조순형 의원의 부친이신 조병옥 박사는 광복 후 송진우(宋鎭禹)·장덕수(張德秀) 등과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을 창당, 총무가 되었으며, 이어 미군정청 경무부장으로 혼란기의 치안을 담당, 공산당을 색출하는 데 힘썼다. 1948년 정부수립 후 대통령특사·유엔한국대표를 역임하였고, 1950년 6·25 때는 내무부장관으로 대구(大邱) 사수를 위해 진두지휘하였다.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하였으나, 신병으로 미국에서 가료 중 별세하였다. 향년 66세였다.

현 선거법상 12월3일부터 19일 사이에 한나라당 후보가 사퇴나 여타의 이유로 유고되면 한나라당은 대체 후보를 내놓을 수 없다. 이명박 후보는 올해 66세이다. 내년 대통령이 되면 67세가 된다.


62세 박정희 유고 – 광주사태

향년 62세에 돌아가신 박정희 前대통령은 군정실시 2년 후 민정이양을 하겠다는 1963년 ‘2·27선언’을 약속했으나 지키지 못하고 군에서 예편한 뒤 민간인 신분으로 그해 10월 제5대 대통령선거 출마하여 야당 후보인 윤보선씨와 선거전에서 15만여 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어 12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한국의 좌파 세력뿐 아니라 한나라당 일부 당원조차도 여전히 한나라당의 뿌리를 민정이양을 번복하고 1963년 창당된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1979년 10·26사태로 박대통령의 유고 상황이 되어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다. 그 해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대통령선거에 당선되어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하지만 1980년 광주사태를 계기로 8월16일 8개월 만에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게 된다. 그의 나이 61세이다.


73세 이승만 초대 대통령 취임 - 정계은퇴 번복 제3대 대선출마

73세 이승만은 1948년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1956년 3월5일 자유당은 전당대회를 열어 이승만을 대통령후보로 지명하였다. 하지만 그날 오후 즉시 이승만은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다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승만의 정계은퇴 선언이 방송으로 발표되자 그날 저녁부터 자유당 지도부가 경무대를 찾아와 은퇴 철회를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다음 날부터 여러 시민단체 특히 청년 단체들이 은퇴 철회 시위를 하였다. 심지어 혈서로 쓴 철회 편지가 전국 각지에서 올라왔다. 결국 지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선거전에 나섰지만 야당 후보였던 신익희 후보의 과로사로 자동적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선거법상 대통령후보를 새로 낼 수 없어 부통령후보로 나선 장면후보만 부통령으로 당선되고 자유당의 부통령 후보였던 이기붕씨는 낙마하게 되었다.


73세 김대중 제15대 대통령 취임 - 정계은퇴 번복, 3수 당선

73세의 김대중씨는 1998년에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DJ는 1995년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단하여 공화당 창당의 주역인 정통보수를 대표하는 김종필과 ‘DJP연합’을 통해서 ‘정권교체’를 달성했다.


73세의 초대 서독 수상 아데나워 – 독일통일의 초석

73세의 아데나워는 서독 초대 수상으로 1949년에 취임한다. 1933년 나치정권이 들어서자, 1919부터 재직한 쾰른시장직과 모든 관직을 박탈당했고 1944년에는 히틀러 암살미수사건(7월20일 사건)과 관련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1945년 미군의 쾰른 점령 시에 쾰른시장으로 복귀하고 1946년 그리스도교민주동맹(CDU) 총재로 선출되었다. 1948년 미국·영국·프랑스 점령지구의 의회적 협의회(제헌의회) 발족과 동시에 그 의장을 지냈으며,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옛 서독) 초대 총리에 취임한다. 그의 나이 73세였다.


73세의 昌 – 정권교체냐 정권변종이냐

이회창 前총재는 11월 7일 ‘정계복귀선언’ 했다. 만약 그가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한다면 그의 나이 73세가 된다.

작금의 ‘후보 스페어론’과 ‘73세 취임론’이 과연 우연의 일치인지 아닌지는 오직 운명의 여신 모이라(Moira)만이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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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 사수 국민대회’에 참석하신 애국시민 여러분!

오늘 「유엔의 날」에 저는 6·25를 회상하게 됩니다.

당시 북한 공산군이 쳐들어오자 우리는 모두 자유를 위해 분연히 나섰습니다. 수십만의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과 우리 국군 장병이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장렬하게 산화하거나 부상했습니다. 또 수백만의 우리 국민은 모진 삭풍과 눈보라 속에서 굶주리고 얼어 죽으면서도 공산주의를 거부하고 피난을 갔습니다.

피난 못간 사람들은 굶주리면서도, 공산주의자들의 모진 감시와 핍박 속에서도 자유를 찾아 필사적으로 숨고 피해 다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끝내 피하지 못하고 북에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가난한 나라였지만 우리에게 자유는 이토록 소중했고, 마침내 자유를 지켰습니다. 그 자유로 우리는 폐허 위에서 다시 일어섰고 세계 10위권대의 경제강국으로, 아시아의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우뚝 도약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자유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위협받고, 자유민주주의체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북의 김정일과 남의 친김정일 세력이 또다시 한반도의 주도권을 장악하느냐, 아니면 대한민국 수호세력이 장악하느냐의 선택의 기로에 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자유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저는 현실정치에서 떠나 있었지만, 여러분과 함께 이 몸을 던져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지난 10·4.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동선언 이후 ‘거짓 평화공세’가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심지어 노 대통령은 이번에 북에 가서 ‘인민주권의 전당’이라고 그들의 체제를 미화했습니다.

‘NLL은 영토선이 아니다’라고 말해 국민의 가슴에, 서해교전 용사와 그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물론 노대통령도 최근까지 말로는 ‘햇볕정책’의 목적이 북의 개혁·개방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북한의 개혁·개방 촉구는 적절치 않다’고 말합니다. 무조건 북에 아첨하고 굴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한반도의 평화를 얻기 위하여 국민의 세금으로 북에 계속 퍼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진정한 평화공존도 상호협력도 아닙니다. 이것은 핵을 가진 북을 달래자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굴종과 조공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남과 북의 진정한 ‘평화시대’ ‘평화공존’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북핵폐기와 북의 폐쇄적인 수령독재체제의 개혁·개방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퍼주기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고 한반도 평화시대를 열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기만이자 환상입니다.

우리가 북핵폐기를 말하고 개혁·개방을 주장하면 저들은 바로 전쟁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평화’냐 ‘전쟁’이냐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남한을 직접 위협하는 북의 핵이 있는 한, 자유와 인권을 탄압하는 북의 수령독재체제가 유지되는 한 한반도에 어떻게 진정한 평화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대통령은 북핵폐기와 북의 개혁․개방은 제대로 논의도 못했습니다. 그러고도 대규모의 경협선물 보따리를 풀어놓고 왔습니다.

이번 회담이 노대통령 말대로 한반도의 평화시대를 열기 위한 것이라면 평화의 전제조건은 제대로 말도 못한 이번 회담은 실패한 것입니다.
뒷날의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고 준열하게 그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대중 일부는 벌써 저들의 위장평화 전략과 선전에 현혹되고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직후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간 것은 이를 말합니다.

정치권에서도 대선에서의 표를 의식하여 소위 ‘수구꼴통’으로 몰릴까봐 몸조심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평화로 가는 길은 장밋빛 환상이 아니라 가시밭길임을 국민에게 알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애국시민 여러분!
앉아서 사느니 서서 죽겠다는 각오로 일어섭시다.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존속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각오로 외칩시다.

‘김정일은 핵을 완전 포기하라고 우리 국민의 이름으로 강력하게 촉구합시다!’

‘북한주민의 생존권과 인권의 말살을 즉각 중단하고 납북인사, 국군포로를 즉각 송환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합시다!’

‘북핵폐기 없는 경협, 북의 개혁∙개방과 연계되지 않는 경협은 일체 반대합시다!’

‘NLL을 무력화시키는 어떠한 시도도 강력하게 반대합시다!’

‘대한민국 수호세력은 모두 함께 단결하여 자유민주주의 정체성과 나라의 기반을 바로 잡는데 앞장섭시다!’

‘그리하여 신뢰받는 강력한 리더십과 국민의 통합으로 새 시대를 열어갑시다!’



2007. 10. 24
서울시청 광장

이 회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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