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昌의 7일’과 나폴레옹을 몰락시킨 ‘하루’

昌의 선택, 선명성에 순교하느냐 ‘단일화 눈치’냐 ‘너의 황제, 나를 쏘라 ! ’ - 나폴레옹의 무혈 파리입성

1815년 2월26일 오후 7시, 나폴레옹은 어둠을 뚫고 7척의 배에 불과 1000여명의 호위대만 싣고 ‘유배지 엘바섬’을 극적으로 탈출한다. 병사들은 아직도 행선지가 어디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일단 장군을 따라 나섰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망망한 대해에 이르자 묻는다. “어디로 갑니까?”라고.

“파리까지 총 한 방 안쏘고 간다!”고 대답한 나폴레옹은 3월1일 쥬앙 만에 도착한다. 상륙하자마자 그는 국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것은 ‘유배지 이탈’이 아니라 ‘개선’이었다. 이에 당시 왕당파에 장악된 정부군대에서는 ‘반역자 나폴레옹’에 가까이 접근하는 자는 무조건 발포하라는 명령이 전군에 내려진 상태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자신의 병사를 이끌고 지체 없이 정부군에 접근했다. 정부군 장교가 ‘사격 개시’를 명령했다.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총소리 한 방도 들리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하고 혼자서 앞으로 나가서 외쳤다.

“병사들이여! 나는 그대들의 황제다. 알고 있겠지? 그대들 중에 자신의 황제를 죽이려는 자가 있으면 쏴도 좋다. 나는 이렇게 여기 있다.”

그 순간 정부군의 대열 속에서 “황제 만세”가 울려 퍼졌다. 모두 나폴레옹 측에 가담하였다. 그의 병력은 그런 식으로 증강되어 파리로 진군했다.

나폴레옹에 열광하는 국민을 본 루이 18세는 궁정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를 격퇴할 수 있는 인물은 ‘네이 장군’ 밖에 없었다. 그에게 간절히 나폴레옹을 진압해 달라는 명령을 하였다. 황제의 명령에 따라 네이 장군은 군대를 인솔하여 나폴레옹을 진압하기 위해 출발하였으나 마음이 대단히 착잡해졌다. 나폴레옹은 황제이기 이전에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루며 생사고락을 함께 한 ‘전우’였다. 게다가 자신은 나폴레옹을 배반하여 그를 황제에서 퇴위시키는 데 일조했고, 지금은 그를 죽이러 가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병사 대부분이 나폴레옹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 때 네이 장군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나폴레옹의 우정 넘친 편지였다. 이 편지를 읽은 네이의 얼굴에서 감격과 후회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이는 바로 병사를 집합시켜 칼을 빼어 들고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나폴레옹과 함께 승리로 나아가자!” 그러자 병사들 사이에서 “황제 만세”가 터져 나왔다.

네이의 항복 소식을 들은 루이 18세는 3월19일 서둘러 파리를 탈출한다. 다음 날 나폴레옹은 대중의 환호에 휩싸인 채 그들에게 모자를 벗어 답례하면서 튈레리엔 궁전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훗날 프랑스의 대문호 발자크는 그 때의 광경을 “일찍이 나폴레옹 이전의 어느 누구도 단순히 모자를 벗음으로써 제국을 얻지는 못했다”고 묘사했다.

나폴레옹의 예언대로 ‘총 한 방 쏘지 않고’ 이루어진 ‘한 개인에 의한 한 나라의 정복’이었다.

나폴레옹을 유배보낸 뒤 ‘비인 회의’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와 술에 빠진 채 ‘땅 나누기’로 허구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나폴레옹의 come back으로 20년간 싸워 이긴 것이 허사가 된 비인 회의 연합국은 삽시간에 공포와 혼돈으로 빠져 들어갔다. 영국, 프랑스 왕당파 군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군대가 긴급히 소집되었다. 그 이전 이렇게 일제히 유럽의 군대가 수시 간에 하나로 뭉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초전에 나폴레옹을 박살내기 위해 중무장하여 파리로 진군했다.


연합대군에 맞선 나폴레옹의 신속한 전격전

나폴레옹은 敵이 모이기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것을 즉각 판단했다. 적이 뭉쳐 하나의 군대가 되기 전에 그들을 갈라놓아야 하며, 그들을 개별적으로 공격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부의 공화파와 왕당파 등 정파들이 전쟁을 반대하고 협상을 요구하기 전에 오로지 국민들의 열광 속에서, 군대의 도취적인 열광을 이용하여 적들을 향해 돌진해야만 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손실이 늘고, 시간이 흐를수록 위험해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 차렸다. 그는 가장 유혈적인 戰場이었던 벨기에를 향해서 주사위를 던졌다.

1815년 6월15일 새벽 3시 나폴레옹은 대군-물론 단 하나뿐인 군대–을 이끌고 국경을 넘는다. 16일 리그니 근교에서 블뤼혀(Bluecher) 장군의 프로이센 군대를 만나 격퇴시킨다. 프로이센 군대는 대타격을 당하지만 전멸하지 않고 브뤼셀로 퇴각한다. 17일 그는 퇴각하는 블뤼혀 군대가 가장 강한 적수인 영국의 웰링턴(Wellington) 군대와 연합하지 모르기에 사전에 이를 차단하기 위해서 자신의 일부 군대를 분할하여 충직한 부하 장군인 그루쉬(Grouchy)에게 블뤼혀를 추격하는 독자적인 지휘권을 넘겨주었다. 그뤼쉬는 성실, 용감, 믿을 만한 기병대장으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기병대장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나폴레옹의 몰락은 바로 이 고지식하고 충직한 융통성이 전혀 없어 상황판단을 제때에 하지 못한 그루쉬의 신중한 머뭇거림에서 비롯되었다.

나폴레옹 자신이 직접 웰링턴을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 그루쉬는 군대의 1/3 병력을 가지고 프로이센 군대를 추격하여 영군군과의 연합을 차단하는 것이 임무였다. 그루쉬는 추격과 동시에 본대와 지속적으로 연락관계를 유지하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그루쉬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나폴레옹과 작별을 하고 프로이센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불투명한 視界 속에서 추격에 나선다.


운명이 경멸한, 충직하지만 소심한 그루쉬

6월18일 아침 5시 워털루의 비는 그쳤지만 나폴레옹에게 그루쉬에게서 온 보고는 프로이센의 퇴각이 불분명하여 계속 추격하겠다는 소식뿐이었다. 바닥이 온통 진흙이라 공격이 예정보다 2시간 늦은 11시에 시작되었다. 불과 11시부터 1시까지 프랑스군과 영국군은 서로 쫓고 쫓기기를 반복하면서 1만 여명의 시체가 대지를 덮었다. 양측은 웰링턴은 블뤼혀에 의해, 나폴레옹은 그루쉬에 의해 누가 먼저 전력을 보강 받는 편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그루쉬가 適時에 와 주길 초조하게 기다리며 망원경을 움켜쥐었다.

자신도 모르게 나폴레옹의 운명을 손에 쥐게 된 그루쉬는 묵묵히 명령에 따라 적을 추격하고 있었다. 비는 그쳤다. 그러나 프로이센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밤새 지친 몸을 가누며 일단 아침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땅이 가볍게 흔들리는 것을 병사들은 느꼈다. 계속되는 울림은 바로 대포소리였다. 불과 3시간 거리에 있는 포병부대의 것이다. 워털루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징조였다.

그루쉬는 즉시 참모회의를 열었다. 대부분의 장교들이 황제가 영국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였기에 즉시 대포가 있는 방향으로 돌진해 가야 된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그런데 그루쉬만 미심쩍어 했다. 복종에 익숙한 그는 퇴각하는 프로이센을 추격하라는 황제의 명령이 담긴 종이 쪽지에 불안하게 집착하고 있었다. 20여명의 장교들이 즉시 출동하자고 그루쉬를 다그쳤다. 그러나 그는 황제로부터 다른 지령이 내려오지 않은 한 자신의 추격 의무에서 이탈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선언했다. 장교들은 실망에 빠지고, 분노하는 대포의 포격 소리만 점점 요란하게 울렸다.

고지식하게 충직한 그루쉬는 발하임의 한 농가에서 조용히 앉아 대포소리를 들으며 어떻게 할까 잠시 숙고하고 있었다. 바로 이 순간이 그 자신의 운명과 나폴레옹의 운명 그리고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였다. 이 불멸의 순간이 너무도 주체성이 없는 충직한 인간에 좌우되었다. 만일 그루쉬가 가시적인 상황의 변동에 스스로의 믿음으로 위임 받은 독자지휘권을 융통성 있게 행사하였다면 프랑스를 구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1815년 6월 18일 워털루의 패전 - 나폴레옹의 몰락

중과부족으로 나폴레옹은 네 번의 공격을 감행하고 퇴각했지만 웰링턴군의 핵심부를 상당히 무력화시켰다. 이제 마지막 총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숲속 한 군데에서 갑자기 한 무리가 물밀 듯 몰려오고 있었다. 마침내 그루쉬가 대포 소리를 듣고 공격 진영으로 합류하구나 생각하면서 망원경을 보니 그루쉬가 아닌 프로이센의 전위대였다. 나폴레옹은 즉시 그루쉬에게 보내어 프로이센의 후미를 공격하라고 전령을 보낸다. 도대체 “그루쉬는 어디 있는 것이야?” .

조금 있으니 영국군과 프로이센군이 하노버 부대원까지 합류하여 나폴레옹에게 총 반격을 해왔다. 자신의 군대 1/3을 가진 그루쉬의 빈 공간이 너무도 컸다. 나폴레옹의 용맹한 군대는 사력을 다해 맞섰지만 서서히 전멸해갔다. 어둠이 몰려든 밤이 간신히 나폴레옹의 목숨만은 구해주었다. 자정 무렵 만신창이 되어 거의 실신상태에서 초라한 여관의 의자에 않은 나폴레옹은 더 이상 황제가 아니었다. 그의 명예, 그의 프랑스는 끝이 났다. 단 한 사람만이 그 운명의 장소 워털루에 대해서 다음 날 아침까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불과 3시간 거리에 있으면서도.

그날 밤 늦게 그루쉬는 나폴레옹의 합류 지령서를 받는다. 너무나 늦게. 이미 어둠이 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명령지역으로 이동하던 그루쉬는 오전 10시 지휘부의 한 장교를 도중에서 만나 묻는다. “황제가 어디에 있느냐?”고. 그루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더 이상 황제도, 더 이상 프랑스도 없다, 망했다”는 말에.

조심성, 복종, 신중함 등 모든 시민적 덕성들은 위대한 운명적 순간의 화염 속에서는 무력하게 녹아 내린다. 운명적 순간은 소심한 자를 경멸하고 배척한다. 오직 용감한 자만을 열렬하게 두 팔로 안아 영웅의 하늘 속으로 들어 올린다. 운명은 이해할 수 없는 본성을 지닌 자신을 닮은 강력한 인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것은 단 한 순간 동안만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몸을 바친다. 기회를 놓치는 자에게 기회는 결코 두 번째 것을 베풀어주지 않는다.


昌의 선택 – 선명성에 순교하느냐 ‘단일화 눈치’냐

‘昌’은 ‘정도가 아니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조국의 부름’을 받고 나왔다고 선언했다. 그것에 ‘진정성’이 있느냐 아니면 ‘기회주의적 처신’이냐는 누구보다도 운명의 여신이 더 잘 안다. 운명은 그 시대의 정신을 결코 조롱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신을 구현할 ‘용사’를 원한다. 숭고한 시대정신에 ‘살신성인’하는 전사만이 ‘영웅’이란 칭호를 부여받게 된다. ‘대중’은 영웅을 갈망한다. 작금의 시대정신은 ‘경제만능주의’가 아니라 ‘좌파정권종식’이다.

모든 대선후보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대중의 지지율이다. 정통선명보수당의 출현 가능성 역시 ‘昌’의 지지율에 달려있다. ‘昌’이 박근혜 前 대표가 넘지 못한 마의 28%를 김경준의 귀국 前에 넘지 못하면 새로운 선명보수당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본다. ‘昌’에게는 7일의 시간 밖에 없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은 두려움이 없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자신이 평소 가장 잘하는 ‘물매돌’을 날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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