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대통령 딸 이름이 ' 근혜' 라는 사실을 알고 ' 영애'란 이름이 너무 평범하여 改名을 한 것으로 생각했다.
조약돌이 이 세상에 나왔을 때는 제주도에서 무장 공비들의 준동이 극에 달한 시점이었다.
나는 몰랐겠지만 정부 수립 후 취약기의 초대 대통령은 우남 이승만 박사였을 것이다.
초등학교의 교실에는 국부(國父) 이승만 박사가 한복을 입은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나는 이승만 박사는 하늘이 내린 분으로 알았고 죽을 때까지(종신) 대통령인 줄 알았다.
1959년 말이나 1960년 초가 아니었나 싶다.
까만 고무신과 무명 저고리를 입은 까까 머리들은 단체로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 이란 영화를 관람했던 기억이 또렸하다.
그 영화에서 이승만 할아버지는 정말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3.15 부정 선거를 위하여 정치 깡패 임화수가 이승만 박사 내외와 자유당에 아부하기 위하여 곽영주의 사주로 만든 영화 임을 알게된 것은 그 후로도 한참을 지나고서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이런 노래가 유행하여 어린 나이에도 열심히 불렀던 기억이 난다.
음악 시간에 선생님이 성악 시험을 보는 데 나는 자유곡으로 그 노래를 불렀다가 한시간 동안 복도에서 무릎을 꿇고 벌을 선 기억때문에 그 후로 학교에서는 절대로 부르지 않았다.
'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 선생 뒤를 따라, 장면 박사 홀로 두고 조박사는 떠나 간다.
세상을 원망하랴, 자유당을 원망하랴 만고 역적 이기붕은 ...............'
이 노래 역시 반야월 선생이 작사한 유정천리란 노래를 개사(改詞)한 오늘날로 치면 정치 패러디 곡이며, 왜 당시 선생님이 당황해 하셨는지 알게 된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의 일이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서 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이승만 박사가 하야를 하셨다는 것이었다.
하야가 대통령을 그만 두고 야인이 된다는 뜻이란 설명을 듣고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그래서 조약돌은 그 때 결심을 했단다.
이 담에 크면 이승만 박사를 대신하여 대통령직을 내가 물려 받아서 이승만 박사의 원수를 갚아드리겠다고........'
어느 날 아침, 학교 조회 시간에 교장 선생님은 훈화를 안 하시고 대신 전 교생이 운동장에서 KBS 특별 뉴스를 듣도록 했던 기억이 난다.
교장 선생님은 하느님께서 대한민국을 구하시도록 구국의 영웅 장도영 장군님이란 분을 내려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그 날 들은 것은 박종세 아나운서의 낭낭한 목소리로 들려준 혁명 공약이 아니었나 싶다.
그 다음 주 월요일 조회시간에는 교장 선생님이 장도영 장군님의 초상화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구해다가 교실에 걸어 놓으라고 말씀하셨다.
그 분의 사진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은 무슨 일도 해낼 수 있다던 당시 제주 경찰 서장의 아들 종철이도 못 하는 것을 보면 대단한 장군님이란 생각이 들었다.
종철이는 그 당시에도 초록색의 군용 짚차를 타고 매일 학교에 왔는데 수업을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칼빈 소총을 맨 순경 두 사람이 종철이를 졸졸 따라 다녔다.
경찰관인 우리 아버지에게 물어봤더니 경찰 최고위 간부 아들을 공비에게 납치당하거나 피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경호차원이란 말을 듣고 높은 사람의 자식보다는 졸병의 자식이 더 나은 점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처음 가져 보았다.
종철이를 ' 도련님'이라고 부르던 경찰관들이 장도영 장군님의 초상화를 가져왔다. 그런데 그 초상화는 야시카나 미놀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아닌 것 같았다. 사진을 못 구한 경찰관들이 동아일보에 난 사진을 보고 그림을 잘 그리는 경찰관에게 지시하여 모사를 해온 것이었다.
우리는 수업 시작전에 반장이 혁명 공약을 1항에서 부터 6항까지 선창하면 급우들은 후창을 한 후에 수업에 임했다.
어느 날 수업중인 교실에 교장선생님이 뛰어와 가꼬부치에 든 장도영 장군의 사진을 황급하게 떼어 가셨다.
그 자리에는 까만 색안경을 낀 또 다른 장군님 사진을 붙였다.
종철이에게 물어보니 안경잽이 장군님에게 안 안경쟁이 장군님이 쫓겨났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물어봤다. 별이 3 개가 더 높은 데 어떻게 별이 두 개가 셋을 쫓아낼 수 있느냐고 ............'
즉답을 못한 종철이는 아버지에게 알아보고 와서 알려주겠다고 했는데 그 답은 아직까지도 듣지 못하고 있다.
경찰 서장인 아버지에게 물었다가 뒤지게 맞았다는 것이었다. 그 것을 물어본 것이 그렇게 큰 죄인지는 당시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하여간 그런 질문을 한 조약돌은 위험 인물이니 친구를 삼지 말라고 했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경찰관이라고 말했다가는 아버지 신상에 해로울 것 같아서 종철이에게 우리 아버지가 경찰관이란 사실은 너희 아버지에게 제발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종철이가 묻지도 않았는데 왜 순경밖에 안 되는 우리 아버지가 경찰관이라고 괜히 언급을 했지하고 약간 후회를 했지만 나는 종철이를 믿었기 때문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부터인가, ' 우리는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완수되면 군문으로 돌아가............' 운운하는 혁명 공약 조항은 낭독하지 말라고 그래서 장님 안경을 쓴 장군님이 변덕이 심하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는 데 어느 날 보니까 그 분이 구국의 영웅 박정희 장군이라고 했다. 공약(公約)은 국민들에게 한 약속이라고 하는 데 왜 장군님이 군대로 안 돌아가고 경무대(후에 청와대)로 가시려는지 의아하기는 했다.
장군님이 대통령(권한대행)이라는 데 대통령이란 직책을 왜 '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이란 긴 이름으로 불리는지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화폐 속에서는 여전히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이셨는데 어느 날 화폐 개혁을 한다고 했다. 박정희 장군님이 최고 지도자인데 국민들이 이승만 박사를 여전히 대통령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질투가 나서 돈을 바꾸는 것으로 조약돌은 한 눈에 알아봤다.
구국의 영웅은 대통령이 되셔도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테레비는 없어도 우리는 극장에 가면 그 분을 자주 뵐 수가 있어서 친숙해지게 되었다.
어느 날은 박정희 대통령이 예쁜 여자 애 손목을 잡고 나타나셨다. 대통령 딸이냐고 선생님께 여쭈어 봤더니 우리 영어 선생님이 ' 영애' 라고 하셨다.
나는 이 담에 커서 대통령 딸 영애와 결혼했으면 하는 생각을 마음 속으로만 품어봤다. 그렇지만 아무에게도 말은 못 했다.
어느 날 대통령 딸 이름이 ' 근혜' 라는 사실을 알고 ' 영애'란 이름이 너무 평범하여 개명을 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 후로 대한 뉘우스를 열심히 봤지만 박 대통령은 영애를 데리고 나오는 경우가 드믈어서 더욱 사모하는 마음만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지만 오를 수 없는 나무란 것을 알지 못하고 영애를 만나러 서울로 한번 올라가볼 엉뚱한 생각을 한 적도 없지 않다. 그래서 제주 항에 나가서 서울까지 배삯이 얼마인지 알아보기도 했다. 목포나 부산까지만 배가 가고 그 다음에는 기차를 또 탄다고 하니 돈 걱정때문에 슬그머니 단념을 하고 말았다.
하여간 꿈만은 야무진 어린 시절이 왜 갑자기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그 때가 그리워진다. -끝-
추억속의 대통령
- 조약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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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1-16, 03: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