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4번의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장면 정부,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이들은 조선동아의 역작이다. 조선동아는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 전두환 정부, 노태우 정부는 꿈에도 지지한 적이 없다. 힘에 굴복했을 뿐 직유와 은유와 환유와 영탄(詠嘆)으로 영원한 사춘기 소년소녀 조선동아는 한국의 정통우익은 늘 조롱하고 걸핏하면 빈정대었을 뿐이다. 민주와 민족, 정통성의 잣대로! 이해의 밑바탕은 그들의 원수 한겨레와 이처럼 동일하다. 스스로 깨닫지 못할 따름이다.
조선동아가 북극성처럼 빛났을 때는 일제시대였다. 조선동아는 단 한 번도 조선총독부를 지지한 적이 없다. 조선동아는 조선총독부의 권력에 굴복하는 척하면서 독립운동의 총본산으로서 한겨울의 솔처럼 푸르러, 지리멸렬 권총 한 자루 살 여력이 없던 상해임시정부의 누리끼리 단풍을 능가했다. 조선동아는 폐간되어도 우정 변절해도 조선인 3천만의 가슴 속 북극성으로 더욱 빛났다. 일제로부터 받는 고난의 어둠이 짙어질수록 북극성은 더욱 빛났다.
조선동아가 우군도 없는 굴욕을 강요당한 것은 2000년 6월 15일 이후였다. 처음에는 조선동아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장밋빛 환상으로 목욕했다. 동아는 심지어 보천보 전투에 대한 기사를 황금으로 새겨 김정일에게 바치기도 했다. 보천보의 대장이 전설의 독립운동가 김일성인지 처음에는 중공 해방군의 주구였다가 후에는 소련 붉은 군대의 앞잡이였던, 영주의 형 성주인지도 확실하지 않고, 주인공이라고 한들 국내 갑산파의 도움으로 기습적으로 일본 순사 한두 명 죽인 것에 지나지 않은 걸 갖고, 그것이 마치 살수대첩에 버금가는 조선을 해방시킨 일대 역사적 사건이라도 되는 양, 동아일보는 김정일에게 은근한 최상급 아첨으로 정통성을 헌납했다.
글자 사이의 글자를 통해 절대 빨갱이가 아니라고 키우고 받든 DJ에게 조선동아가 버림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6·15 공동선언의 환상에서 조선동아는 이내 깨어났다. 같잖은 통일대통령 김정일을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부터 김대중 정부의 탄압이 무차별로 가해졌다. 2001년 2월 8일부터 2001년 6월 29일까지 국세청이 총동원된 표적 세무조사에 들어간 것이다. 1994년, 김영삼 정부도 언론사를 상대로 세무조사에 들어간 적이 있지만, 그것은 상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었다. 2001년의 그것은 차원이 달랐다. 전두환 정부의 언론통폐합이 낭만적으로 느껴질 만큼 집요하고 악랄하고 치사했다.
조선동아는 30여 년 동안 키워 준 민주인사에게 그처럼 처절하게 배신당하여 굴욕의 가시밭에서 이를 갈았다. 굴욕의 가시면류관은 원군이 거의 없었다는 데 있다. 일제시대든 해방 후든 붓이 꺾이고 윤전기에 모래가 뿌려질 때도 전국 어디나 조선동아의 이심전심 응원군이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합법을 가장하여 사상 최악의 언론탄압을 가하자, 사방에서 자발적인 응원단장을 앞세운 응원부대가 꽹과리와 북과 징과 피리를 울리기 시작했다. 조선동아 죽이기가 삼바 축제처럼 벌어진 것이다. 그 사이 조선동아의 이심전심 응원군은 각개격파되어 흔적도 찾기 힘들었다. 일제시대부터 전두환 정부에 이르기까지 조선동아의 붉은 심장인 비유는 쏙 빼고 직설화법의 가면은 속속 찾아내 무차별로 짓이겼다. 민족반역과 독재주구의 물증은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위기의 조선동아는 YS와 DJ 이후의 새 인물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회창은 이 때 비로소 조선동아의 망극한 성은을 받기 시작했다. 1997년 대선 때는 조선동아가 중립을 가장하여 김대중을 지지했지, 이회창을 지지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2003년에는 한겨레가 목숨을 걸고 민 386 오빠가 DJ의 5년 살림집으로 들어갔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보다 한 걸음 두 걸음 열 걸음 앞서갔다. 한 성깔 하는 노무현 오빠는 대놓고 수구보수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도 제정하여 합법적으로 조선동아의 길어서 슬픈 모가지를 꽉 조르며 2006년 10월 30일부터 2007년 1월까지 세무조사에 들어가(동아는 빠짐) 조선의 비실비실 손발도 꽁꽁 묶었다. 만신창이 조선동아는 사면초가였다. 살기 위해서 새 인물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 그들의 눈에 번쩍 띈 인물이 바로 MB다.
한일국교정상화 반대 민주화 투쟁--와, 멋쟁이 민주투사!
현대건설사장--와, 글로벌 스탠더드 경제전문가!
서울특별시장--와, 불도저 환경지도자!
조선동아에게 청계천복구는 기가 막힌 소재였다. 동상이몽인지, 이상동몽(異床同夢)인지, 한겨레의 여의도 지국 KBS도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전두환의 한강살리기에 비하면, 물을 강제로 퍼 올려 자연을 흉내내는 청계천의 어중간 복구는 새 발의 피지만, 자연을 완벽하게 되살린 양재천과 안양천에도 감히 비교될 수 없지만, 조선동아가 띄우고 KBS가 배경음악과 춤사위를 넣어 주자, 이명박의 인기는 수직상승하기 시작했다. 이회창의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는 수류탄 한 방에 박살났지만, 붕대손이 주섬주섬 파편을 주워 모아 천막당으로 거듭나게 하고 조선동아의 존립 기반인 국가보안법도 사수했지만, 조선동아는 의도적 침묵과 사실적 한 줄 보도로 환골탈태당의 옛 대표는 무시하고, 박정희의 산업화를 무지막지한 환경오염으로 은유하며 환경서울의 한복판에 청계천 노동자의 분신자살을 기린 CEO를 인기절정당의 새 왕으로 옹립했다. 유신공주는 죽어도 아니었다. 왜? 독재자의 딸이니까! 그 점에서 조선동아는 원수 한겨레와 한 통속이었다. 조선동아는 철이 좀 들고 나서도 여전히 박정희는 개발독재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절대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애증의 인물이다.
조선동아는 잘 알았다. 한국인은 조선동아 편 아니면 한겨레 편임을! MB의 각종 의혹에 조선동아가 침묵하거나 마지못해 인용보도하면, 한겨레가 아무리 떠들어도 10년간 좌파정부에 시달린 보수우익과 중도와 위장보수는 조선동아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스승이 한겨레인 것처럼 이명박 정부의 스승은 조선동아다. 조선동아가 노골적으로 반대하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는 컴퓨터는 깔아뭉개고 불도저를 몰고 전력 질주한다. 한반도대운하, 비핵개방3000, 영어공교육(공무원 2만3천 명 증원),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 폐지(공무원 3천 명 감축) 등은 조선동아가 적극 지지하거나 꼭 집어 반대하지 않으면, 반대는 친북좌파의 반대를 위한 반대가 되어 선진화의 위대한 정책으로 각광을 받으며 아연 탄력을 받는다. 좌파정부의 성공과 실패가 한겨레에 달려 있었듯이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실패는 조선동아에 달려 있다.
(2008. 2. 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