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바그너의 가극 <로엔그린> 3막 전주곡을 듣고 있다. 폭발하는 듯한 <환희의 동기(motive)>에 이어 저 유명한 트롬본의 웅장하면서도 감미로운 주제곡이 흐른다. 이 전주곡이 끝나면, 3막은 한국의 결혼식장에 반드시 울려 퍼지는 <결혼 합창곡> 곧 <결혼 행진곡>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로엔그린과 여주인공 엘자의 결혼을 축하하는 '딴 딴따딴(솔 도도도)'이 바로 그것이다. 둘의 결혼은 그러나, 비극으로 끝난다.
로엔그린은 하얀 비둘기가 이끄는 작은 배를 타고 영원히 자기 나라로 떠나고, 엘자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저승으로 떠난다. 왜? 엘자가 금지된 '묻지마'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백조가 끄는 작은 배를 타고 온 파르지팔 왕국의 왕자 로엔그린은 나쁜 놈 테르무란트 백작과의 칼 싸움에서 이기고 남동생 고트프리트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공주 엘자를 구해 주는데, 이 때 그는 절대 자신의 신분은 '묻지마'라고 부탁한다. 굳게 맹세한 엘자지만 로엔그린과의 결혼 생활이 너무 행복에 겨웠는가, 호기심의 이성이 행복의 감정을 이겼는가, 기어코 로엔그린에게, 그런데! 당신은 누구세요, 라고 눈을 반짝인다.
그 순간 로엔그린은 성배(聖杯)의 기사인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이제 자신은 떠나야 한다는 한 마디 말의 비수로 그녀의 심장을 깊숙이 찌른다. 운명은 거부할 수 없지만 엘자를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는 로엔그린은 떠나기 전 강가에서 기도한다. 그러자 즉시 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백조가 끄는 작은 배 위로 날아온다. 로엔그린은 엘자에게 마지막 선물을 준다. 그가 백조의 사슬을 끌러 주자, 백조는 엘자의 남동생 고트프리트로 변한다. 나쁜 놈 테르무란트 백작의 아내 오르트루트가 건 마법에서 마침내 풀려난 것이다. 그러나 엘자는 '묻지 마' 질문을 한 죄의 대가로 사랑하는 남동생 고트프리트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둔다.
로엔그린 3막 전주곡은 시끌벅적 넘치는 환희로 시작하지만, 끝 부분에서 끝날 듯하다가 음울하게 낮게 <묻지 마 동기(motive)>가 흘러나온다. 행복의 절정에서 헤어짐과 죽음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로린 마젤은 평양에서 <로엔그린>의 이 3막 전주곡만 연주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도 떠나도 레너드 번스타인도 떠나고 게오르그 솔티도 떠난 오늘날 77세의 로린 마젤은 전세계에서 첫손에 꼽히는 지휘의 대가(마에스트로) 반열에 올라섰다. 2008년 2월 26일 마에스트로는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평양에서 뉴욕 필의 하모니를 들려주었다. 북한의 인공기와 미국의 성조기 아래서 그는 북한의 '인공기 만세'와 미국의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연주하는 것으로, 국민의례를 대신했다. 호흡을 가다듬은 후 그의 지휘봉이 힘차게 올라가자 환희에 넘치는 바그너의 음악이 웅장하게 흘러나왔다.
그는 <파리의 미국인(An American in Paris)>과 <신세계로부터(From the New World)>도 연주했다. 주도면밀한 선곡(選曲)이다. 미국에는 제대로 된 작곡가가 없었다. 민요의 포스터는 세계음악에 명함도 못 내민다. 이런 미국에 음악 천재가 태어났다. 그가 바로 조지 거쉰(George Gershwin 1898~1937)이다.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러시아계 부모에게서 태어난 거쉰은 음악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었지만, 1924년 클래식에 재즈를 가미한 <랩소디 인 블루 Rhapsody in Blue>를 발표하여 문화 후진국 미국을 환희에 떨게 만들었다. 거쉰은 자신의 명성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심 불안했다. 그래서 1928년, 음악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대서양을 건넜다. 파리에서 촌뜨기 미국인은 어깨를 움츠리고 수줍게 웃으며 당대 최고의 작곡가 라벨과 스트라빈스키를 찾아간다. 러시아의 무소르그스키가 러시아 국민음악파 중에서 천재성은 가장 뛰어났지만, 음악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관혁악 부문(오케스트레이션)은 림스키 코르사코프에게 크게 의존한 걸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천재는 천재를 알아 본다.
"당신의 음악은 이미 최고입니다. 우리에게 배울 것이 없습니다. 자신의 음악을 한층 발전시키십시오."
프랑스인 라벨도 러시아인 스트라빈스키도 문화 후진국 미국의 촌뜨기 거쉰을 극찬한다. 거쉰은 환희에 넘쳐 가슴을 부둥켜안고 파리의 거리로 뛰쳐나간다. 파리의 거리는 기쁨과 행복과 낭만이 넘쳐 흐른다. 그러나 조금 더 나가 큰길로 들어서자 거기도 뉴욕처럼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요란스럽다. 미국인 청년은 고향에 온 듯이 반갑고 반가운 만큼 기쁨도 크다. 문화의 도시 파리는 소음과 피로에 지친 파리지앵들이 쉬는 낭만적인 카페가 있다. 여기서 우아한 춤곡이 흐른다. 기운을 차린 미국 청년은 다시 거리에 나온다. 미국의 무곡 폭스트로트(여우의 춤)가 흐르는 듯하고 어떻게 알고 미국 청년을 환영하는 행진곡이 흐르는 듯하다. 왠지 운명처럼 곧 예쁜 파리지엔이 자신을 향해 정열의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벌리고 다가올 듯하여 젊은 양키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때의 경험을 그대로 살린 것이 교향시 <파리의 아메리카인>이다.
보헤미아(체코)의 시골뜨기 안톤 드보르작이 정든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1892년, 뉴욕의 음악학교 교장으로 초빙되어 갔다. 거기서 그는 4년 동안 머무는데, 가는 첫날부터 향수병에 시달린다. 그의 유일한 위안은 뉴욕을 벗어나 듣는 기적(汽笛) 소리, 산골에서 기차가 지나가면 넋을 잃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어린 드보르작은 고향의 기차 시각만이 아니라 기차의 길이에 이어 나중에는 기관사 이름까지 완벽하게 기억했다. 1893년 드보로작은 가슴을 난도질하는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제9번 교향곡을 작곡한다. 흔히 <신세계 교향곡>이라고 하는 <신세계로부터 교향곡 Symphony NO.9 From the New World in E minor>은 이렇게 태어난 것이다. 그것은 신세계 곧 미국을 노래한 음악이 아니다. 풍요에 넘치는 신세계에서 못 살지만 인정이 넘치는 고향 보헤미아를 애타게 그리워 하는 '고향 생각'이요 '고향의 봄'이다.
나는 마젤 할아버지가 <신세계>를 연주했지, <신세계로부터>를 연주하진 않았다고 본다. 북한의 김정일이 미국을 동경하길 바랐지, 미국의 부시가 북한을 애타게 그리워하길 바라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2001년 7월 7일 예루살렘에서 유태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연주하자, 이스라엘 전역이 부글부글 끓었다. 바그너는 유태인을 무시하는 글을 쓴 적이 있고(게르만족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가 그런 풍조였음), 히틀러가 6백만 유태인을 강제수용소에서 가스로 질식시켜 죽일 때에 꼭 바그너의 '무한선율'이 흘러나왔기 때문에, 유태인에게 바그너는 악몽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며 바렌보임이 바그너를 이스라엘의 심장부에서 연주한 것이다. 유태인 아닌 사람들이 보았을 때 이렇게 '작은 일'이 일어나기까지 2차 세계대전 후 무려 66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야단이었다.
유태인 로린 마젤은 예루살렘에선 이제 모르겠지만 한때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던 평양에선 절대 바그너를 연주하면 안 되었다. 히틀러보다 나쁜 놈 김정일은 유태인 수용소를 능가하는 강제수용소에 이민족도 아닌 동족을 아직도 재판도 없이 20여만 명이나 가둬 놓고 있다. 마젤은 미국의 감옥과 북한의 강제수용소를 비슷한 것이라고 비교한 모양인데,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배부른 세계의 이상한 주목을 받자, 1984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자신의 오페라 <1984년>도 잊은 모양이다. <1984년>과 똑같은 아니, 그보다 몇 배나 악랄한 생지옥이 북한이다. 핵무기를 개발하여 평생 절대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동족을 3백만이나 굶겨 죽이고, 2천만 누구든 이웃으로 마음대로 놀러도 못 가게 하고 말할 자유도 생각할 자유도 주지 않는 빅 브라더의 지상낙원이 바로 북한이다. 66년 후면 모를까, 그런 곳에서 아무리 음악이 아름답더라도 유태인은 바그너를 연주하면 안 된다. 그건 유태인의 양심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마젤은 망상 속 밀월의 꿈이 깨질까 봐 '묻지마' 질문도 않았다.
김정일, 당신은 빅 브라더지(한국말로는 큰 형님, 한자말로는 독재자)? 핵무기를 절대 버리지 않을 거지? 2천만 명을 노예로 거느리고 있지?
게오르그 솔티(1912~1997), 이삭 스턴(1920~2001), 앙드레 프레빈(1929~), 로린 마젤(1930~), 다니엘 바렌보임(1942~), 아이작 펄먼(1945~), 핀커스 주커만(1948~)--이들의 공통점은 무얼까? 두말할 것도 없이 세계적인 유태인 음악가다. 이들 중 1930년 이전 태생은 스스로의 힘으로 큰 바가 많지만, 그 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유태인으로서 크게 덕을 보지 않았다고 못한다.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유태인이 밀어 주고 당겨 줌으로써 타고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게 되었다. 색안경 끼고 볼 필요가 없다. 유태인의 뒤를 이어 무섭게 발전하고 있는 한국인 음악가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단, 음악가도 인류 보편의 가치는 존중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인권이다. 600만이 죄 없이 학살당한 유태인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인권에는 유태인이 제일 앞장서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 유태인만 귀중한 게 아니다. 인권은 인류 65억이 똑같다. 여기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음악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궤변을 늘어놓는 자, 돌아서면 인권을 탄압할 자들이다. 단지 그런 위치에 있지 못할 따름이다. 게르만족이 모조리 악마의 자식이라서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에 동참하거나 침묵을 지켰던가. 그들은 자신의 목숨이 더 아까웠기 때문에 동참하거나 침묵했고 대부분 정말 몰랐기 때문에 침묵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통신의 사회다. 세계가 하나되어 있다. 마우스의 노를 저어 인터넷의 바다를 잠시만 항해해도 경악할 북한인권 상황은 쓰나미처럼 얻을 수 있다. 모른다는 것은 진실에 대해 눈을 감고 싶다는 본심을 숨기는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
공산주의 독재를 너무도 싫어하여 오페라 <1984년>을 작곡한 로린 마젤은 지금까지 훌륭한 음악가요 훌륭한 양심가였다. 그러나 2008년 2월 26일부터 그는 나쁜 놈 테르무란트 백작과 한 패가 되었다. 침몰하는 북한 갤리선에서 대를 이어 노를 젓는 2천만 백조의 마법을 풀어 주어야 할 때에, 음악의 마법사 마젤 할아버지는 나쁜 놈 테르무란트 백작에게 아첨했다. 못 살지만 인정에 넘치는 고향 사람을 그리워 하는 드보르작의 애틋한 마음은 아랑곳 않고, 어느 순간부터 철의 장막을 치고 고향 사람을 못 살게 구는 독재자에게, 감옥은 구세계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신세계에도 있어요, 걱정 마세요, 행복하게 사세요, 오래오래! 신세계의 재즈, 참 맛깔나지요, 당신은 신세계의 영화와 따뜻한 남쪽 나라의 영화와 유행가와 드라마를 남김없이 본다면서요, 계속 보고 들으세요! 여기 모인 특별한 평양 사람들은 직접 뉴욕 필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으니, 저도 행복하네요.-- 이렇게 마젤 음악 마법사는 감미로운 평화의 노래를 바쳤다. 스스로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2008. 2.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