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바라는 척 계략을 일삼는 자

우리는 겉으로만 평화를 바라는 척 계략을 일삼는 자와는 협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톨스토이

 우리는 겉으로만 평화를 바라는 척 계략을 일삼는 자와는 협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카스트로가 스스로 걸어다닐 힘도 없어지면서 반세기에서 고작 1년을 못 채우고 황금 권력을 동생에게 물려줌에 따라, 이제 전설적인 독재자 중에 살아남은 자는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밖에 없다. 전설적인 독재자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좌우명이 평화요, 반전(反戰)이요, 반제국주의다. 처칠이 히틀러와 스탈린의 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차지하려고 바다건너에서 루즈벨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어물거리는 사이, 스탈린은 붉은 탱크 위에 평화의 하얀 깃발을 달고 숨도 한 번 안 쉬고 동유럽을 집어삼켰다. 노회(老獪)한 스탈린은 지구의 보안관 루즈벨트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대서양과 태평양을 동시에 벌겋게 물들이는 사이, 서쪽에서는 얼음 진지를 구축하여 히틀러의 양손과 양발에 시베리아 동상을 선물했지만 동쪽에서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바다건너 불구경만 했다.

 스탈린은 아무르강을 사이에 두고 유인(히로히토)과 버성기기만 하다가, 유인이 신의 보좌에서 내려와 인간의 소리를 내는 순간, 유럽에서처럼 평화의 깃발을 흔들며 단숨에 러일전쟁 패전으로 아깝게 놓쳤던 한반도의 38선 이북을 거대한 입의 반만 벌리고 탁 털어 넣었다. 4선의 루즈벨트가 임기의 반도 못 채우고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지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얼떨결에 백악관에 들어간 트루먼이 루즈벨트의 관을 앞에 두고 지구의 보안관 대신 유럽 승리의 날(VE Day)을 선포한 후(1945/5/8), 유인이 여전히 주제도 모르고 1억 옥쇄(玉碎)를 다짐하며 바락바락 덤비는 걸 보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커다란 불의 선물을 두 개 내려보내어, 신인 척하던 유인으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고 크게 기침했다. 그  순간, 그는 평화의 깃발을 앞세우고 스탈린이 도둑고양이처럼 재빠르게 졸개를 두만강으로 내려보내는 것을 보고 화달짝 놀라, 스탈린을 향해 '얼음!'하고 외쳤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38선 이남은 건졌다.

 스탈린이 누군가. 겉으로만 평화를 외치고 자나깨나 침략의 계략만 일삼던 자가 아닌가. 애송이 트루먼을 시험도 해 볼 겸 중원을 통일하여 대러시아의 만주 삼키기 작전에 쓰라린 타격을 가한 모택동을 살살 구슬려 거지 군대를 배후 세력으로 삼고, 시키면 시키는 것 이상을 수행하는 김일성을 앞세워 날마다 평화를 외치고 밤마다 히틀러 군대보다 강한 군대를 양성시켜 두었다가, 자신은 뒤로 싹 빠지고 트루먼도 주춤주춤 물러서게 한 다음 어느 일요일 새벽 미제국주의에 신음하는 민족을 해방시켜 영원한 조국의 평화통일을 건설한다는 거룩한 사명을 김일성에게 불어넣어 그 꼭두각시의 꼭두각시들이 10만 대군도 두렵지 않는 소련제 탱크를 몰고 무인지경의 38선 이남으로 시속 40km로 달리게 했다.

 음흉한 스탈린의 2차 계략은 한반도 전체에 이어 트루먼과 모택동의 이전투구를 이용하여 기어코 만주를 삼키려는 것이었다. 그의 3차 계략은 만주를 삼키지 못하더라도 트루먼과 모택동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자신이 세계 최고의 권력자로 군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만만찮은 트루먼이 맥아더를 인천에 상륙시키자, 원래 약속대로 모택동을 끌어들여 그들이 한반도의 진창에서 미친개처럼 싸우게 만들었다. 휴전은 절대 허가할 수 없었다. 두 바보가 지쳐 쓰러지게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스탈린 제 놈이 먼저 쓰러졌고, 모택동과 트루먼은 즉각 각자 원 위치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소련군 대위 김일성이야말로 스탈린의 간택을 받는 순간에서 죽는 날까지 겉으로만 평화를 바라는 척하면서 밤낮으로 전쟁의 계략을 일삼던 자였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전쟁은 미제국주의자가 일으킨 것이고 이에 맞서 승리한 평화의 사도는 김일성이었다. 미제국주의의 군홧발 아래 신음하는 남조선을 해방시켜 조국의 평화통일을 이룩하는 것, 그것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명이었다. 이를 위해 나라 전체를 거대한 병영으로 만드는 것, 전 인민의 총력을 기울여 북침을 호시탐탐 노리는 주한 미군보다 강한 군대를 양성하는 것--그것이 평화의 유일무이한 길이었다. 우리는 평화 너희는 전쟁, 우리는 평화 너희는 전쟁!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하여 거짓말을 스스로 믿고 이제 참말로 변한 거짓말을 실현시키기 위해 전쟁의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 자들이 떼로 굶어 죽어도 오로지 평화를 지키고 평화를 확보할 전쟁 준비에 광분하는 것-- 김정일은 김일성의 유훈을 그대로 이어받아 선군(先軍)정치(군사독재)로 강성대국을 이룩하기 위해, 한국도 속이고 미국도 속여서 군량미와 대량살상무기와 에너지를 확보하여 최후의 그 날을 위해, 나진선봉도 여는 척, 금강산도 여는 척, 개성도 여는 척, 뱃길도 여는 척, 뭍의 길도 여는 척, 하늘의 길도 여는 척, 스포츠의 길도 여는 척, 음악의 길도 여는 척 평화의 푸른 한반도 깃발을 곳곳에서 펄럭이며, 유유히 휘파람을 불면서 전쟁의 대문을 열게 만들고 전쟁의 땅굴을 파고 전쟁의 고속도로를 닦고 있다.

 제일 웃기고 한심한 자들이 김일성과 스탈린과 모택동의 남침으로 전국이 초토화된 지 두 세대도 지나지 않은 한국에 있다. 이런 자들이 대한민국 곳곳에 널려 있다. 평화의 깃발을 들고 대로에 버젓이 활개를 치며 돌아다닌다. 이들은 평화를 바라는 척 계략을 일삼아, 국군과 주한미군의 힘은 날로 약화시키고 북한의 인민군은 날로 강화시킨다. 두 번째로 웃기고 한심한 자들이 미국에 있다. 링컨의 후예로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들도 평화를 바라는 척 계략을 일삼아, 식량도 퍼 주고 중유도 퍼 주어 절로 무너지던 북한의 인민군을 파릇파릇 되살리고 어쩔 수 없이 문닫았던 군수공장을 쌩쌩 돌려 줘 주한미군이 나가거나 수수방관하기만 하면, 평화의 노래를 부르며 대한민국을 고함 한 번에 삼킬 수 있는 미사일과 핵폭탄을 개발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6자회담한다며 전쟁광에게 한없이 질질 끌려 다니며, 인권 문제는 입안에서 웅얼거리기만 하고 장군님의 비자금이 오가는 길을 다시 열어 주었다. 이제 다 늙어 정신이 해롱거리는 늙은 지휘자를 보내, 나라 전체가 강제수용소인 곳에 보내어 강제수용소의 자장가로 악명 높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무한선율을 연주하게 하고 스스로 감격하여 노예들이 부르는 평화의 노래를 소리 높여 합창한다. 

 한국에 있거나 미국에 있거나 이런 자들은 바보 아니면 무의식적 전쟁광이다. 이런 자들은 자기들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도 책임은 전혀 지지 않고 도리어 평화세력을 전쟁의 원흉으로 몰고 다짜고짜 어쨌거나 전쟁을 당장 끝내라고 날마다 데모한다. 이런 자들에게 평화는 그저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빛처럼 공짜 선물이자 누구나 누릴 권리가 있는 천부인권으로서 그냥 절대선(絶對善)이고, 전쟁은 마른하늘에서 떨어지는 날벼락이자 선한 얼굴을 한 강대국과 전쟁으로 먹고사는 군수업자가 일으키는 음모로서 그냥 절대악(絶對惡)이다. 이런 자들일수록 전쟁의 원인 제공자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죽어도 깨닫지 못한다. 

     (2008.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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