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에 이어 북한연구의 1인자를 자처하는 전 통일부 장관 이종석이 지난 10년간 아무런 트집도 잡지 않다가, 노무현 정부가 물러나자마자 한국은행의 북한 통계치에 대해 딴지를 걸었다. 북한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2005년 기준 1180불이 아니라 최소 194달러, 최대 605달러, 평균 368~389달러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것도 엄청 높여 잡은 것이지만, 비교적 사실에 가깝다. 나는 10년 전부터 그것은 100불 많아야 300불이라고 밝혔다. 일개 백면서생이 북한학 박사보다 10년 앞선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다.
왜 이종석은 10년간 모른 척하다가 이제 와서야 볼멘 소리를 하는가. 지난 10년간은 햇볕정책에 흠을 내지 않기 위해서이고, 지금은 비핵개방3000을 비난하기 위해서이다. 사실상 둘 다 같은 정책인데도 왜 이제 와서 딴소리할까. 그것은 이명박 정부가 명시적으로 햇볕정책을 계승한다고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지상의 태양신 파라오가 필히 언짢아할 '비핵개방'이란 말조차 꺼내지 말라고 압박하기 위해서이다.
지난 30년간 세계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중국과 늘 비슷하게 추계된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햇볕정책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엉터리 추계에 의한 북한의 GNP에 비하면, 김대중이 직접 건넨 4억5천 달러 현금은 별로 커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시중환율로 북한의 1년 총예산의 2배가 넘었다는 게 알려졌으면, 국민이 경악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300달러 정도라고 밝혀 놓으면, 10년 만에 고작 400억불을 투자하여 물경 3000달러로 올려준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걸 강조하여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개발시대의 환상적인 수치에 타는 목마름을 느끼는 '노가다'들이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천둥벌거숭이 대북정책이라는 것을 여지없이 까발리고, 백화궁에서 나비넥타이 매는 영광을 누린 북한 전문가들이 일치단결하여 피워 올린 지혜의 총화인 6·15공동선언을 잠자코 계승하라고 압박할 수 있다. 북한주민이 지금도 당장 굶어 죽게 생겼으니, 상호주의니 뭐니 강부자 내각은 배부른 소리 내뱉지 말고 무조건 민족공조하라고 민족의 양심을 담은 경고장을 보낸다.
북한의 개혁개방을 가로막은 원흉이 햇볕정책이다. 노태우의 북방정책은 더 이상 반공제일주의가 아니었다. 속은 반공(자유민주), 겉은 교류와 협력(개혁개방)이었다. 시대의 조류에 발맞춰 남북이 함께 사는 길이었다. 처음에는 북한에 중국식 시장경제를 가르쳐 주고 나중에는 공산당 일당 독재의 중국을 까마득히 내려다볼 수 있는 자유민주를 공짜로 선물하겠다는 것이 북방정책의 핵심이다.
이것을 사실대로 얘기하면 친북좌파로선 아예 설 자리가 없어지니까, 뜬금없이 30년 군사정부의 반공정책은 시대착오적이었고 공산권이 붕괴된 지금은 더욱 더 시대착오적이라고 일방적으로 국민을 상대로 의식화 교육을 시킨 다음, 교류와 협력 부분만 쏙 빼어 그것을 탕탕 권력의 의사봉을 내리치며 햇볕정책이라고 선언했다.
교류와 협력도 상호주의를 강조하면, 북한의 2세 황제가 노발대발하기 때문에, 동해처럼 넓고 깊고 맑은 마음으로 그냥 퍼 주고 또 퍼 주겠사오니, 다만 금강산이고 개성이고 이산가족상봉이고 모조리 북한 식으로 북한의 거대한 금강석 공산왕조체제는 장난감 바늘 끝일망정 아니 겨냥할 테니 그냥 하는 척만 하십시오, 그러면 한국과 미국의 어리석은 자들이 폭삭 속아 줄 겁니다, 헤헤, 이렇게 북한의 방대한 선전선동물을 조선의 선비들이 주자집주(朱子集注)사서오경을 달달 외웠듯이 달달 외는 이종석 무리는 김정일에게 한쪽 눈을 살짝 감아 보였던 것이다. 안타깝게 2세 황제가 윙크가 뭔지 몰라 보자 아예 한쪽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도 시큰둥하자 이번에는 한쪽 눈을 궁예의 안대로 동여맸다.
--보시와요, 장군님, 우리는 외눈박이예요. 남조선의 밝음은 절대 못 보고 남조선의 어둠만 보는 외눈박이예요. 공화국의 어둠은 절대 못 보고 공화국의 밝음만 볼 줄 아는 외눈박이예요.
200불에서 220불, 220불에서 250불, 250불에서 280불--평균 10%로 고도성장해도 북한이 배고픔을 그런 대로 면하는 500불이 되는 데만도 최소한 10년이 걸린다. 정확히는 100불 정도니까, 북한의 국경선을 몽땅 열어제치고 천리마 타고 새벽 별 보기로 죽자 사자 뛰어도 500불이 되는 데만 무려 20년이 걸린다! 그 사이 중국은 5천불이 넘어설 것이고 한국은 3만불이 넘어설 것이다.
이미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다, 북한의 체제는 걱정 마시라, 등의 말로 본색을 드러내는지, 아니면 친북좌파의 압박에 무릎을 꿇는지, 아니면 남북관계에 대해서 까막눈인지(설마 외눈박이야 아니겠지), 친절하게 각주(footnotes)를 달아 비핵개방3000은 사실상 햇볕정책의 계승임을 내외에 천명했다. 그들은 3000이란 숫자의 꿀단지에 스스로 빠져서 이에서 헤어날 생각은 전혀 못하고 냄비 국민도 이 꿀단지에서 풍기는 향기에 확 취하길 바란다. 그런데 이것은, 허락도 없이 내 글을 거의 그대로 베껴 쓴 이종석의 주장처럼 처음부터 말이 안 된다. 매년 10%의 10배인 100% 성장해야 가능한 숫자니까! 실용주의는 현실에 두 발을 굳게 딛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이렇게 현실과 지구에서 달만큼 아득히 동떨어진 숫자를 대문에 크게 내거니,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실용주의가 아니라 몽상주의다. 상호주의가 아니라 짝사랑이다.
한편 정작 유혹의 당사자인 김정일에게는 3000이란 숫자는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김정일의 공식직함은 국방위원장이고 그 호칭은 장군님이다. 장군은 전쟁하는 사람이지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선군정치하는 사람이지 개혁개방 10개년계획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다. 전쟁은 '모 아니면 또'(all or nothing)다. 대량살상무기로! 열전(熱戰)이든 냉전(冷戰)이든 '저 웬수' 미국만 한반도의 괴상망측 민족공조에 질릴 대로 질려서 에라 모른 척해 주면, 10년 20년 30년 50년이 아니라 길어야 1주일 안에 1년 총생산 1조 달러를 7천만으로 나누어 단숨에 100달러를 13000달러(14000달러면 더 좋고)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장군이 할 일이다. 미국과 한국을 15년간 농락한 그의 전략은 오로지 여기에 맞춰져 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황금빛 향로에서 모락모락 피워 올리는 향기는 김정일 태양신의 콧구멍도 간질이지 못한다. 이명박 정부의 실눈에만 백두산처럼 거대한 제안으로 보일 따름이다. 이명박 정부만 스스로 피워 올린 향기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참기름 냄새로, 장미 향기로, 섹시 페르몬으로 느낌이 팍 와서 고소영 강부자 강금실이 다 함께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연신 코를 벌름거릴 따름이다.
(2008. 3.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