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의 비극, 만주에는 날마다

우리의 어머니와 누나와 여동생이 성 노예로 팔려가고 우리의 아버지와 형과 남동생이 일 노예로 끌려 다니고 있다.

  
 1949년은 중국의 한족(漢族)에겐 영광의 해이지만, 55개 소수민족에겐 악몽의 해다. 그로부터 한 세대 전 소련에서 일어난 비극이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통일전선의 책략에 따라 공산당은 국가 권력을 장악하기 전에는 제민족(諸民族)의 평등을 속삭이지만, 일단 일당 독재체제를 구축한 후에는 서슴없이 야수의 발톱을 드러내어 독립국가에 대한 달콤한 약속을 짓밟아 버린다. 장개석과의 싸움에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모택동의 달콤한 약속에 속아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지만(조선족도 조국의 독립과 만주의 회복을 은근히 바라며 5만 이상이 참전), 통일하자마자 모택동은 어제의 동지에게 총을 겨누었다. 티베트(서장) 망명정부는 이 과정에서 120만(2006년 현재 인구 542만)이 죽었다고 주장한다(「사실에 근거한 티베트의 진상을 밝힌다」 1993). 모택동은, 인구는 10%에 조금 못 미치지만 국토는 60%를 상회하는 이들 소수민족으로부터 군사권과 외교권을 빼앗고, 이름뿐인 자치정부를 허용했다.

 1991년 소련의 강철 발톱이 빠지면서 15개의 독립국가가 고고의 성을 울렸다. 결과적으로 소수민족과의 약속이 70여년 후에 지켜진 셈이다. 그 얼마 전 고르바초프가 붉은 군대를 종이호랑이로 만들면서 러시아의 100여개 소수민족에게 자유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이를 본 등소평은 놀라서 1986년 변강공정(邊疆工程:변경지역 역사왜곡 음모)을 시작했다. 서남공정이니 서북공정이니 동북공정이니 하는 말이 대외에 알려진 것은 모두 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밀한 서남공정(운남성, 광서성, 귀주성, 사천성의 소수민족 동화정책)과 서북공정(서장, 감숙성, 청해성, 신강 대상)과 동북공정(내몽골과 만주 대상)은 이미 1949년에 시작하여 1950년대에 완성했다. 그런데 1986년의 서남공정에선 원래 서북공정의 대상이었던  서장만 지목했다. 귀주, 운남, 광서, 사천에는 독립운동의 싹이 말라 비틀어졌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이 2002년에 신강(위구르)을 대상으로 서북공정을 공표하고 북한을 겨냥하여 동북공정을 시작한 것은 색목인의 땅 신강에선 동투르키스탄 건국 운동이 만만찮게 일어나고 있었고, 북한이 핵개발로 최후의 발악을 하지만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따라 미군이 버티고 있는 한국으로 흡수통일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등소평의 노골적인 서남공정에 티베트인들은 경악했다. 1959년 인도에 망명정부를 수립한 달라이 라마는 해외에서 꾸준히 여론을 조성했다. 마침내 그는 1987년 9월 열흘간 미국에 머물면서 세계의 이목을 한 몸에 집중시켰다. 그는 '5개 평화계획'으로 일부 미국 국회의원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에 발맞추어 1987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기념일에 유태인 못지않게 독립심이 강한 정교일치 민족 티베트인은 설산사자기(雪山獅子旗)와 법륜(法輪)을 들고 라싸의 숨막힌 공기에 한 줄기 청량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1959년 이후 최대의 봉기였다. 1987년의 독립만세는 망명정부 수립 30주년이 되는 1989년까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중공도 속수무책이었다. 산발적인 기습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1988년 6월 서장성 당서기 오정화는 고산병을 핑계 대고 아예 북경의 병원에 드러누웠다.

 해결사는 그로부터 6개월 후에 나타났다. 현재 중국의 주석 호금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군대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아예 계엄령을 내리고 군복을 입고 라싸의 거리를 활보했다. 1989년 천안문 사태로 중국 공산당이 세계의 따가운 눈총을 독점하던 때, 호금도는 너무도 조용히 2년간 끌어오던 티베트 독립운동을 깨끗하게 평정했다. 무쇠팔과 강철군화와 꽃잎입술과 참기름혀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한 것이다. 큰 근심에 젖어 있던 등소평이 작은 근심을 덜어 준 호금도를 황태자로 점찍은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호금도는 중화족에겐 둘도 없는 애국자지만, 티베트인에겐 모택동에 이은 제2의 원수다.  

 2008년은 중국에 올림픽이 열리는 해이고 티베트 국권상실 60주년 1년 전이고 티베트 망명정부 수립 50주년 1년 전이다. 티베트인은 2009년에 달라이 라마가 설산사자기와 법륜을 들고 라싸로 금의환향하길 원한다. 1959년 3월 10일의 무장봉기 30주년을 앞두고 1987년부터 독립운동을 다시 시작했듯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2008년에 그들은 중국의 거짓과 인권탄압을 폭로하기 위해 일제히 일어났다. 이미 100여명이 죽었다는 소문까지 있다. 인민전쟁을 선포한 중국 공산당은 1989년처럼 계엄령을 발동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때와 지금은 정보의 전달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중국이 아무리 인터넷을 차단하고 언론을 통제하더라도 냉장고의  해골(skeleton in the cupboard)은 속속들이 드러날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동북공정이 북한을 노리고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 서남공정에는 티베트인이 일치단결하여 대응하지만, 동북공정에는 지리멸렬 대응이다. 민족반역자 김정일이 중국대사관에 연이어 직접 찾아가는 사대주의의 극치를 몸으로 보여 주며 입으로는 주체와 민족을 외치고 스스로 미친 친북좌파들이 무조건 반미 무조건 친중으로 닭 쫓는 개의 연기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모처럼 조선일보가 큰 일을 하고 있다. 탈북자의 가시밭길에 직접 뛰어들어 좌파정부의 정보차단으로 소문만 무성하던 인권유린의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어떤가! 맞서 피 흘릴 수 있는 티베트가 부럽지 않은가. 우리의 어머니와 누나와 여동생이 성 노예로 팔려가고 우리의 아버지와 형과 남동생이 일 노예로 끌려 다니지 않는가. 남북한의 싸늘한 외면에 콩알만해진 간으로 중국에서, 만주에서, 고구려 옛 땅에서! 지난 20년간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최악의 인권유린을 바야흐로 세계 패권을 다투는 중국이 자행했음이 명명백백한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침묵, 침묵, 침묵! 외면, 외면, 외면! 한국이 하는 일은 오로지 침묵과 외면뿐이다. 설날에 2200만 북한주민을 대표하여 22명이 얼음장같이 추운 서해의 거센 파도를 무릅쓰고 내려왔지만, 밥 한 끼 안 먹이고 그 날로 바로 올려보내는 나라다. 정권교체했다고 환호하면서 뜬금없이 실용을 내세우더니, 22명 탈북자를 걱정하는 공개서한을 접수하고도 한 마디도 않는 나라다. 영 실용적이지 못하나 보다. 조선일보를 읽고도 호금도와 김정일에게 한 마디도 않는 이명박 정부다. 정권 유지에 영 보탬이 안 되나 보다.

 한 나라의 자존과 독립은 피가 아니고는 지킬 수 없다. 한국이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난 것은 미군이 일본군에 맞서 태평양을 붉게 물들였기 때문이고, 김일성과 스탈린과 모택동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를 지킨 것은 미국을 비롯한 16개 국가와 한국이 푸른 옷과 흰옷을 붉게 물들였기 때문이다. 눈치와 굴종으로는 결코 자존과 독립을 지킬 수 없다. 미수복지구인 북한이 절로 우리 품에 안길 것이라고? 누구 맘대로! 자주국방의 소리가 우렁찬 한국이 단독으로 북한이 원래 저네 땅이라고 우기는 중국과 싸워 이길 수 있는가! 시위대에 매맞는 국군으로 핵무장한 북한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가! 5천만이 보트피플이 되고 싶은가!                        (2008.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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