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논리 유형: 게르만형, 아랍형, 동아시아형

게르만과 아랍과 동아시아의 논리는 각각 일직선과 지그재그와 소용돌이다.

 19세기가 영국의 시대였다면, 20세기는 미국의 시대였다. 그 영향으로 게르만형 논리가 세계 유일의 논리처럼 5대양 6대주를 풍미하고 있다. 천만에! 그렇지 않다. 자세히 보면, 유럽의 논리도 게르만형 외에 라틴형과 슬라브형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차이가 없다. 참고로 인도는 동아시아형보다 오히려 게르만형에 가깝다. 인도의 여러 언어가 게르만어처럼 대부분 인도유럽어족(語族)에 속하기 때문에 그러한 듯하다. 

 게르만의 논리는 일직선이다. 주제와 관련 없는 것은 모조리 가지를 치고 서론에서 본론을 거쳐 결론으로 곧장 치고 나아간다. 다음 문장에서 주제와 관련이 없는 문장을 고르시오, 라는 수능형 문제도 바로 게르만형 논리를 알고 있는지 묻는 것이다. 오늘날 전세계의 과학은 이런 논리를 따른다. 이렇게 오로지 주제를 향해 곧장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을 흔히 논리적이라고 말하거나 합리적이라고 일컫는다. 과연 그것만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일까. 그렇다면 동양사상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아랍의 논리는 지그재그다. 출발점에서 어느 정도 나아가다가 갑자기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이유는? 없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거나 원점 근방에서 지난번에 나아갔던 것보다 더 전진한다. 그러다가 다시 지금까지의 논의를 없던 일로 하거나 전혀 동떨어진 엉뚱한 말을 꺼내어 사람의 속을 뒤집는다. 이렇게 몇 번 되풀이하다 보면, 희한하게 드디어 목표 지점에 도착한다. 이런 논리를 모르고 아랍인을 상대로 서둘거나 짜증내거나 서류를 집어던지면? 그걸로 끝이다. 아랍인들은 자기들끼리도 그렇게 한다. 단 그들끼리는 서로가 서로의 논리를 잘 알기 때문에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싶거나 거래를 꼭 트고 싶으면 뿔도 안 내고 서둘지도 않고 판도 안 깬다. 때로 아랍인들은 전광석화처럼 엄청난 일을 저지르는 수가 있는데, 그것은 서로의 논리를 이심전심으로 정확히 이해하는 바탕에 이해관계가 일치하거나 알라신 앞에 엎드려 부끄러움이 전혀 없을 때 다시 말해서 알라신의 자손으로서 자존심이 충분히 세워지거나 알라신을 향한 신앙심이 불타 올라 가차없이 몸을 던질 때이다. 자살 폭탄이 잦은 것이 아랍인들에겐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늘날 두바이 개발도 마찬가지다. 겉보기에는 하늘과 땅이지만, 둘 다 논리는 같다.   

 동아시아의 논리는 소용돌이다.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런데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이 이른바 논리인데, 동양에서는 게르만족처럼 다짜고짜 일직선으로 가는 것은 영 싸가지없는 짓이다. 동아시아에서는 뜬금없이 변죽을 한 번 둥 울린다. 상대방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면 다시 한 번 그와 비슷한 소리를 둥 울린다.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상대방이 좋아할 뿔피리 소리를 삐리릭 들려준다. 그렇게 하여 약간 상대방의 마음이 풀어지면, 적당한 순간에 둥 이전에 울렸던 변죽을 또 울린다. 약간 반응이 온다. 옳거니, 변죽을 둥둥 연이어 울리며 서서히 큰 원을 그린다. 이게 어느 정도 통하면 그보다 조금 작은 원을 그리며 중심을 향해 서서히 다가간다.

 옛날에 고향의 부모님에게 향토장학금과 포도청유지비를 부쳐 달라고 편지 쓸 때를 생각해 보자. 계절 이야기가 제일 먼저 들어간다. 계절이 바뀌었으니, 돈도 떨어졌음을 암시한다. 이런 식으로 엄청 큰 원을 그린다. 그 다음!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시작하여 부모님을 거쳐 코흘리개 동생과 기저귀 찬 조카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옆집 아저씨 아주머니와 나아가 마구간의 소와 마루 밑의 강아지에 이르기까지 안부 묻기가 줄줄이 이어진다. 가족의 건강을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변함없이 최씨 가문의 일원임을 새삼 일깨워 자신이 쓰는 돈이 가문의 영광과 가문의 부귀영화를 위한 확실한 투자임을 암시한다. 자신의 건강은 아주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독감으로 방장 죽어 가면서도 이제 다 나았다고 약 한 번 안 먹었지만, 부모님의 염려지덕분에 거의 다 나았다고 걱정을 안 끼쳐 드리는 척 부모의 애간장을 녹이고 눈물샘을 말린다. 막상 할 말은 제일 마지막에 가서, 때로는 추신에서, 지나가는 말투로 가볍게 액수도 밝히지 않은 채 슬쩍 언급하고 서둘러 '이만 총총' 줄인다. 

 사업가들이 거래를 하나 틀 때 온갖 인맥을 있는 대로 동원하고, 막상 당사자끼리 만나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서 취미, 특기, 혈액형, 가족관계, 고향, 출신교 등 별의별 시시콜콜 이야기를 끝없이 이어가다가, 기어코 술집으로 데리고 가서 코가 삐뚤어지도록 원 샷 투 샷 술을 강권한다. 이 과정이 너무 힘드니까, 단숨에 쇼부(효과) 보려고 한국인이 개발한 칵테일이 바로 폭탄주다.  

 같은 동아시아의 소용돌이 논리형이지만, 한국과 중국과 일본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중국은 바깥에서 큰북을 둥둥 울리면서 이내 그보다 작은 원을 그리며 성큼성큼 중심을 향해 다가가고, 일본은 원을 여러 개 그리면서 꾸준히 중심으로 다가간다. 일본은 잠시만 지켜보면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소용돌이형 논리 중에 일본이 게르만의 직선형 논리에 가장 가깝다. 한국인은 큰 원을 그리다가 서로가 중심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팍 오면, 하루저녁에 만리장성을 쌓는다. 당장 원 그리기를 때려치우고 중심을 향해 빛의 속도로 날아간다. 

 딱 보니까, 서로의 중심이 너무 다르다 싶으면 한국인은 계속 커다란 원을 그린다. 그러다 영 안되겠다 싶으면 그냥 그걸로 끝낸다. 그러면 서로가 마음 상할 일이 없다. 문제는 중심은 전혀 안 맞지만, 상대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다. 이 경우는 정말 끈질기게 큰 원을 그린다. 강자를 이용해야 하는 약자는 그보다 지름이 1밀리미터 작은 원을 그리는 데도 수천 억 개의 뇌세포를 동시에 활성화시킨다. 이 때 쓰는 말이 '머리에 쥐난다!'는 표현이다.

 가장 전형적인 예가 친북좌파의 권력 빼앗기다. 그들은 공산주의에서 '공'자도 안 꺼낸다. 손에 장을 지지라며 펄쩍 뛴다. 당장 매카시즘을 걷어치우라고 노발대발한다. 여차하면 고소하겠다고 숙부 앞의 조만(조조의 아명)처럼 입에 거품을 문다. 사회주의란 말조차 안 꺼낸다. 죽으나 사나 민주요, 죽으나 사나 통일이요, 죽으나 사나 민족이요, 죽으나 사나 평화다. 물론 머리가 말랑말랑한 대학생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는 주체종교에 감격하여 바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만세,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 만세! 외치며 화염병을 집어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해방 이후 35년이 지난 다음에야 나온 소리다. 큰 원 중간 원이 충분히 그려졌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보다 작은 원을 그리기 위해 수렴청정씨가 내락(內諾)한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 핵 협상의 테이블에 마주앉은 이후 약 10년 동안 북한이 쓰는 기름의 거의 100%를 대어 주고 덤으로 식량 200만 톤(한국이 제공한 275만 톤은 '쩨쩨하게' 분배의 투명성을 따지지 않는 사실상 공짜지만, 중국이 준 약 100만 톤은 대부분 북한의 지하자원과 맞바꾼 것임)을 운송비 포함하여 완전 무료로 주었지만, 그 후 다시 6년이 지났지만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뒷걸음만 치다가 한국인의 가슴만 툭툭 걷어찬 것은 한민족의 소용돌이형 논리를 이해 못한 탓이 제일 크다. 그들의 직선형 논리는 아무리 논리적이라고 해도 북한과 한국의 친북좌익에게는 전혀 소용없다. 변죽 한 번 못 울린다. 도리어 미국 발 경천동지 음모론만 난무할 따름이다. 한국 사회에 유독 음모론이 난무하는 것은 상대방도 자신들처럼 똑같은 소용돌이형 논리를 갖고 있다고 믿고, 그 중심에는 자신의 단심(丹心)과 정반대되는 어마어마한 흑심이 보나마나 똬리 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눈에 흙이 들어가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고 귀에 구더기가 들어가도 개혁개방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국은 아직껏 모르고 있다. 이건 친북좌파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그렇다고 천기를 누설하면 절대 안 되니까, 둥둥 민족공조의 큰북과 세계평화의 큰북을 두드리며 큰 원 주위를 빙빙 돈다. 그 큰 원이 바로 금강산 관광 쇼와 개성공단 조성 쇼와 이산가족 상봉 쇼다. 그런데 이 큰 원은 그들이 원하는 중심이 아니라 한 하늘을 함께 일 수 없고 한 땅을 함께 디딜 수 없는 원수(한국과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자)가 원하는 중심을 바라보며 멀리 안개로 둘러싸인 큰 원을 못 이기는 척 그려 준 것이다. 그 사이 그들은 키득키득 실속을 챙기고 째깍째깍 시간을 번다.  

 지난 20년에 걸쳐 친북좌파는 대한민국 전체에 큰 원을 그리고 중간 원을 그리며 5천만의 눈을 속이다가 이제는 이 원의 중심을 자신들의 블랙홀 원 중심으로 급격히 끌어당기고 있다. 아직도 자신들의 원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곧 죽어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오로지 거기에는 애국심과 평화공존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통우익의 보루인 조선과 동아마저 아니라고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면서 그들의 중심을 향해 비뚤비뚤한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김정일과 친북좌파가 도사리고 있는 블랙홀의 중력이 이미 대한민국과 정통우익이 빙빙 도는 태양태음(태극기)의 중력을 압도하고 있다는 증거다. 정권교체했다고 희희낙락하지만, 권력의 핵심인 정부와 여당마저 친북좌파가 서서히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과거 발걸음과 현재 애창곡 '임을 향한 행진곡'을 조금만 추적하고 분석하면, 그들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김정일과 친북좌익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한민국과는 중심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압도적인 물리력 확보와 엄정한 법 집행 그리고 약속 불이행에 따른 칼 같은 제재다. 이들은 거짓과 협박을 가장 큰 무기로 사용하는데, 이에는 진실과 침묵과 행동이라는 이지스(Aegis) 방패가 있다. 전쟁이냐 평화냐, 라는 그들의 상투적인 위협에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여 주며, 때로 그들이 서해교전처럼 먼저 불장난을 저지르면 이전처럼 부들부들 떨게 아니라 바로 되[升]에는 말[斗]로, 말에는 섬[石]으로 갚아주면 된다. 그러면 그들은 바글바글 끓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조건 항복한다.
                   (2008.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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