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기본합의서의 전제는 북방정책

한미동맹을 회복하고 중국을 정치외교 면에서 다시 우리편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한, 기본합의서는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를 남북관계의 방향타로 제시했다. 반가운 일이다. 2000년 남북공동선언문이 통일장전으로 떠오른 이래, 나는 지속적으로 그것을 버리고  남북기본합의서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황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번의 거론 자체는 바람직하다.

 김대중 정부는 왜 남북 공생의 기본합의서를 금고 깊숙이 집어넣고 남남 갈등의 공동선언문을 거리마다 현수막에 내걸었을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 때 왜 한국의 보수언론도 장단을 맞추고, 노벨상의 나라 스웨덴을 비롯하여 세계의 언론도 박수를 보냈을까. 김대중 정부 단독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김대중의 노벨상 욕심으로 그랬다? 얼마나 안이한 생각인가. 기본합의서의 배경은 무엇이며, 공동선언문의 배경은 무엇인가.

 남북기본합의서는 완성된 게 아니었다. 그것이 남북간의 잠정적인 헌법이라면, 구체적인 법률에 해당하는 것이 부속합의서인데, 이를 위해서 남북 고위급회담이 1990년 9월 4일 1차 회담을 필두로 8차에 걸쳐서 정말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열렸다. 그러다가 1992년 12월 18일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마자, 북한이 1992년 12월 21일로 예정된 9차 회담을 일방적으로 중단해 버렸다. 이어서 1993년 2월 25일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김정일(이미 김일성은 그 당시 허수아비)은 1993년 3월 12일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다고 힘차게 선언했다. 사족을 달자면, 남북 9차 회담부터는 이산가족교환사업(상봉 쇼가 아님)과 상호핵사찰 문제를 다루기로 되어 있었다.

 노태우 정부는 어떻게 국제법 무시하기 세계챔피언 북한을 그렇게 고분고분하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북방정책의 큰 그물로 북한을 꼼짝 못하게 가두었기 때문이다. 1990년 9월 30일 한러수교와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로 북한은 비빌 언덕이 아예 사라져 버리는 것을 보고 독일식 흡수통일의 악몽에 시달렸던 것이다. 북한은 괴뢰정권 수립 후 처음으로 한국과 합리적인 합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평화통일의 악몽에 시달리기는 한국의 친북좌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 전까지의 통일지상주의 정책을 전면 수정하여, 분단 고착화에 흡수통일 결사반대에 목숨을 걸었다. 최상층의 노태우 정부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이미 그 아래 지식인과 여론 주도층은 친북좌파(간판은 민주세력)에 의해 거의 장악되었다. 1992년부터  YS가 이기든 DJ가 이기든 통일은 '김정일의 마음먹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우파라는 김영삼 정부도 흡수통일은 절대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후에 미국의 클린턴도 따돌린 한국의 조깅 선수는 스스로 무슨 소리를 하는 줄도 몰랐다. 그는 무쇠다리에 머리도 무쇠였다. 

 남북합의서는 남북관계를 현재 대만·중국과 같은 관계로 만드는 것이다. 대만해협을 마음대로 드나들고 마음대로 양안에 투자하고 마음대로 전화하고 마음대로 편지하고 마음대로 서로의 신문과 방송을 보고 듣듯이, 휴전선과 서해와 동해를 개방하여 국가가 아닌 민족은 사실상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단, 군사력은 그대로 유지한다. 대만은 지금도 고등학생이 교련이 아니라 군인으로부터 직접 군사훈련을 받는다. 중국이 아무리 핵을 수백 기 가졌다고 해도 세계 최대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대만은 감히 건들지 못한다. 미국이 뒤에 버티고 있기도 하지만, 대만의 군사력은 중국으로부터 스스로를 능히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듯이 욱일승천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공산독재 국가다. 자유중국은 그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중국이 자유민주 국가로 거듭나면, 두 나라는 이내 미사일 대신 통일의 축포를 쏠 것이다. 동독의 전 주민이 자유민주를 원함과 동시에 피는커녕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게르만족이 부서진 부란덴부르크 성문 위에서 '우리는 한 민족(Wir sind ein Volk)!'을 눈물로 합창했듯이! 

 역대 정통우익 정부의 반공(자유민주)에 아직도 새파란 도끼눈을 뜬 채 맥아더의 동상은 공격하고 모택동의 초상은 우러러보는 것은 한국의 정통설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반미국(反美國)하고 친중공(親中共)하여 세계10대 강국 대한민국을 오갈 데 없는 병든 사자로 만들어 북한 이리의 밥이 되도록 함이 목적이다.  

 비온 뒤에 땅이 굳듯이 더 단단해진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시장경제만이 아니라 자유민주와 인권도 가치를 공유하는 새 북방정책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우리편으로 다시 끌어들이지 않는 한, 김정일은 칼자루를 한국에 넘겨주는 바보짓을 마치 자신이 칼자루를 쥐는 장군 노릇이라도 되는 듯이 개성공단에서 나가라, 금강산에 오지 마라, 이산가족상봉은 없다, 큰 소리 뻥뻥 칠 것이다. 그러면 한국에선 여기저기 봇물 터지듯 화답하여 남북공동선언문을 기미독립선언문 낭독하듯이 목이 터지도록 낭독하며 이명박 정부를 거칠게 압박할 것이다.
 
 예상한 바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구성이나 한나라당의 공천을 볼 때,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대북한 선물--2200만을 대표한 22명 보트 피플 당일 돌려보내기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묵묵부답을 볼 때, 조선일보가 대서특필한 '중국의 탈북자에 대한 만행'을 아프리카 밀림의 약육강식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듯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것을 볼 때, 한국의 새로운 북방정책과 북한의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은 인왕산에 피어오르는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순진한 국민들에게 용머리의 희망만 불어넣고 뱀 꼬리처럼 슬그머니 사라질 것 같다.       
              (2008.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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