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없는 실용은 몽환적 기회주의

냉전이 날로 격화되고 있는 한반도에서 이념 없는 실용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실용 정부를 자처한다. 실용은 실용이되 이념을 지양(止揚)한 실용을 지향(指向)한다. 좌도 우도 하나같이 시대착오적이므로 좌고우면(左雇右眄)하지 않고 하늘같은 대통령부터 솔선수범 머슴 같은 9급 공무원까지 일사불란하게 하루 서너 시간만 자고 내일 당장 죽더라도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소처럼 일만 하는 실용을 지향한다.

 

 강부자가 앞장서고 고소영이 뒤따르며 힘차게 실용의 깃발을 흔들며 실용의 고성능 스피커를 꽝꽝 울리기 불과 100일 만에 좌도 떠나고 우도 떠나자, 알짜 지지자는 20%도 남아 있지 않다. 그들조차 구름 같고 안개 같은 실용을 따르는지는 불분명하다. 모르긴 해도 그들은 나라님 걱정이 아니라 나라 걱정에 차마 떨치고 이별의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지 못하는 애국 우파일 가능성이 높다.

 

 역사는 준엄하고 현실은 냉엄하다. 죽을 둥 살 둥 공부한 옆집 업둥이가 서울대에 합격했다고 하여 죽을 둥 살 둥 놀아댄 우리 집 귀염둥이도 서울대에 합격하는 건 아니다. 준엄한 역사는 20년 전에 마르크스를 지구촌 박물관에 보냈지만, 냉엄한 현실은 남북 공히 극좌 핵폭탄 김정일한테 벌벌 떤다. 전세계의 흐름과는 동떨어지게 한반도의 좌우 대결은 냉전시대보다 더욱 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남북의 좌가 남(南)의 우를 포위하여 섬멸작전에 들어간 지 오래다. 위기일발 순간에 청와대에서 [임의 행진곡]을 제창하던 무리들이 잇따라 헛발질하는 바람에 민심이 40대 O으로 돌아서자, 어쩔 수 없이 푸른 집에 새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포위를 약간 풀었을 따름이다. 남북합작의 외곽 포위는 여전히 난공불락이다.    

 

 판단은 어렵고 행동은 쉽다. 어려운 판단은 피하고 쉬운 행동을 취한 이명박 정부는 사면초가다. 모기 목소리에 모래알 조직이되, 한국의 약 80%는 우파다. 자신과 가족의 파리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우렁차게 극좌의 목소리를 내지만, 북한 주민의 99%는 공포와 기아 대신 자유와 풍요를 바란다. 북한에서는 잠재적 우파가 99%란 말이다. 대한민국의 20%와 북한의 1%를 제외한 대한민국의 80%와 북한의 99%는 우파다. 그 중간은 강부자와 고소영 외에는 거의 없다. 반올림해도 1%가 안 될 것이다. 현실은 이렇게 냉엄한데, 이명박 정부는 좌우를 싸잡아 낡은 집단으로 몰아세운다. 양비론(兩非論)으로 양쪽의 환심을 다 사서 인기를 독점하려다가 양쪽 모두로부터 버림받고 있다. 좌우를 빼면 남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각기 호랑이 이빨과 이리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현실에 하얀 비닐을 덮어씌우고 그 위에 초고층 빌딩을 지으려고 한다. 초고층 빌딩은커녕 비닐 하우스 기초 위에는 애완용 개집 하나 짓기 어려울 것이다.

 

 실용은 전쟁의 산물이다. 매순간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전쟁터에서 최고의 가치는 살아남는 것이다. 적군을 물리치고 아군이 이기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은 사치다. 이기려면 살아남으려면, 얼음같이 차가운 판단으로 무엇보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적군의 약점을 찾아 아군의 강점으로 맞서야 한다. 관념의 유희가 있을 수 없고 만화 속의 희망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좌우의 치열한 대결장인 한반도의 현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파악하려고도 하지 않고 바다 건너 이상사회의 규칙을 한반도에 강요하고 있다. 거기도 실은 우파가 좌파에 우세할 뿐 좌우를 동시에 버림이 아닌데, 마치 거기는 이념 없는 실용만 있다고 착각한다.  

 

 이념 없는 실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적 기회주의다. 대한민국의 80% 우파와 북한의 잠재적 99% 우파를 위한 실용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면 촛불은 절로 꺼진다. 우파와 잠재적 우파가 위임한 최고 권력으로 좌우 막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신뢰를 강요하면, 원래 떠난 자들은 축제를 벌이고 멈칫멈칫 다가왔던 자들마저 썰물같이 떠난다.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국민이 진심을 몰라 주어 야속하다)...  

 

 잘못된 현실 판단으로 죽어라 배를 저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 머리 쓰는 선장이 그래서 중요하다. 선장이 부지런할 필요는 없다. 말이 많아서도 안 된다. 그러면 도리어 헷갈린다. 대한민국호, 과연 이념의 바다를 무사히 항해하여 실용의 뭍에 닿을 수 있을까. 
                  (2008.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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