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에게 소화불량을 유발하는 아세틸콜린 분비를 촉진하지 말라
나는 이상돈 교수를 잘 모른다.
아니 그의 말처럼, 보수의 책을 굳이 읽지않아도 될 정도의 나름의 의식이 있었기에, 그에 대한 정보수집의 필요성을 못느꼈다고 하는게 더욱 정확한 표현이리라.
그는 보수에 대한 위기감이 감지될때면, 언제나 나아갈 방향을 잊지않고 제시해주었고, 거기에 더해 가리키는 목적지의 도착방법까지 친절히 일러주는, 우파에게는 적지않은 자산이었음은 부정치 못하는 사실이었다.
그러던 그가 전원책 유석춘과 함께 보수논객 3인방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자유선진당에 무게를 더했을때, 비록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는 칠 수 없었지만, 그의 선택을 존중했고 또한 몸은 비록 어떤 당이라는 제한적 공간에 있을지라도, 그의 확고한 사고만큼은 우파가 있는 모든 곳에 깃들기를 바랬었다.
그러나 아니다 싶으면 바로 몸을 뒤로 물리는 현명한 민첩성을 지녔기때문일까, 아니면 단 하나의 실망도 용납못하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이상을 가졌기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십리도 못가 발병난다는 아리랑 가사의 협박(?)같은, '자유선진당은 총선 후 고사(해체)할 것이다'라는 저주성 멘트를 날리며, 자유선진당과의 극히 짧은 허니문을 접는다.
만약 그가 자유선진당의 열화와 같은 지원을 업고 정치권에 입성했다면, 과연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었을까의 의문.
또한 고심의 시간이 길었을 자유선진당으로의 발걸음을, 얼마 되지도 않아 후회막급으로 비난하는 모습에서, 그 스스로 자신의 판단능력이 떨어짐을 광고하는 것이었고.
총선에서 손학규가 당선될 것이라 호언했던 이상돈 교수였으니, 판단이란 영역에서 만큼은 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어진 며칠 전의 '한국의 보수는 마지막 패배를 앞두고 있나?'라는 글을 통해, 보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그러나 그건 이상돈 교수 본인의 생각이고, 대다수 보수들은 마치 예전 정동영의 품으로 쪼르르 달려가 지원유세한다며 설쳐대던, 지금은 뭐하며 사는지도 모를 이장춘 복제판을 보는 듯의, 황망함을 접한다.
물론 그의 글 군데군데에서는 머리 끄덕이는 공감의 향취도 맡을 수 있지만, 더불어 적지않은 활자에서 비릿한 악취도 코를 괴롭힘에, 이상돈 교수의 이번 글에 대해 나름의 반론을 드려본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보수단체가 주최하는 세미나, 강연회, 포럼 등에 초청되어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 때마다 서글프게 생각했던 것은 내가 가장 나이가 젊은 축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어르신은 '이제 당신 같은 젊은이들이 나서야 한다'고 하셨다. '50대 중반의 원로교수'인 내가 '젊은이' 취급을 받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보수단체의 세미나 강연회 등에 참석하는 분의 평균연령은 적어도 65세는 되기 때문이다. 보수단체가 주최하는 야외 집회도 다를 것이 없었다. 나이 든 분들의 국가관이 건전하고, 그분들이 살아 온 과정이 현시점에 주는 교훈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예비역 참전용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국민행동본부 같은 시민단체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막아내는 등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충정(衷情)이라도 후대(後代)가 알아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어르신들은 이 점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 우파(보수)가 주최하는 많은 행사의 주 구성원이 연로하신 어르신들이라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몇년 전의 이야기이고, 최근들어 젊은층의 참석이 비록 더디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은 애써 외면한체, 50대 중반인 자신이 젊은이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함은, 뒤이어지는 촛불집회에 모여들었던 십대와 이십대들의 돋보임을 위한, 비아냥적 사전포석임을 읽는다.
후대가 알아주지 않는 충정은 소용이 없고, 그렇기에 완전히 실패했다라..
대체 무슨 근거로 이리 확정적 발언을 겁도 없이 내뱉는가?
연로하신 어르신 한분 한분의 충정(衷情) 그리고 충정(忠情)은, 비록 촛불신도들의 대놓고 환호와 같은 열병은 없을지라도, 진정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분들의 심장 그리고 뇌에 깊히 각인되고 있음을 모르는가?
비록 후대가 그리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보이는 많은 애국우파에 대한 모독이다.
후대가 알아주지 않으면 꽝?
심부름값 안주면 심부름 않겠다는 철부지의 사고수준이, 교수의 임용잣대인가 보다.
『어르신들은 또한 조선일보의 김대중 류근일 칼럼을 열심히 읽고, 조갑제 선생과 김성욱 기자의 책을 사서 탐독한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조갑제, 김성욱씨의 글을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글은 남의 생각을 움직이는데 의미가 있다. 특히 우리의 미래를 지고 갈 젊은 세대에 영향을 주어야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의 보수는 이 점에서도 완전히 실패했다. 그럼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으로 이명박씨가 30% 지지로 대통령직을 따내서 보수가 정권을 따냈을 뿐이다. 조갑제씨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이명박 혁명'이라고 불렀다. 신동아와 월간조선은 금년 1월호를 이명박 찬양 기사로 가뜩 채워서 만들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는 바다 수면 위에 나온 빙산 같은 것이다. 수면 위에 보이는 빙산은 수면 아래 빙산에 비하면 그야말로 빙산일각(氷山一角)이다. 수면 아래의 사정은 수면 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수면 아래에서 보수는 계속 패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 올바른 사고를 가진 이의 연설을 힘들여 찾아가 듣고, 그런 이들의 글을 애써 찾아 읽는 이들이 바보인가?
어르신들은 이런 이들의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라는 말에는, 한푼의 동의도 하지 못한다.
이런 어르신들이 그들에게서 얻은 지식과 현실을 직시케하는 금언을 혼자만의 양식으로 가슴에만 품어두겠는가?
어르신들이 듣고 읽고 느낀 사실은, 가깝게는 자식들이란 젊은이에게로 유입되고, 멀게는 탑골공원에서 함께 장기두는 상대와의 한담속에서도 녹아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전파의 경로는 굳이 싹둑 잘라버리고, 무조건 '아니다' '실패했다'고 단언함은, 떫고도 시그러운 익지않은 사고의 어설픔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30%의 지지로 따낸 대통령이라는 자리라..
그럼 잽도 안되게 망가진 정동영은 뭔가?
전체 투표자 수를 머리에 걸어놓고는, 찍은 투표자 수로 산출하는 방식을 소개함에, 좌파사이트에서 따끈하게 옯겨온 노력까지 보여주시고..
그렇다면 이런 이상돈 교수의 글에 찬성하는 이를, 대한민국 전체 국민으로 생각했을때는 몇 %나 될까?
0.01%나 될런지.
그럼 나머지 99.99%의 국민들은, 이상돈 교수의 글에 반대한다고 말하면 화내실려나?
수면 아래에서 보수는 계속 패배하고 있는게 아니라, 패배의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지 싶고.
『요즘 촛불 시위를 보면, 그야말로 '10대-20대의 바다'이다. 특히 여학생 파워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변에 진치고 있는 좌파 진영을 초라하게 보이게 할 정도다. 이들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도무지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움직인단 말인가? 이들이 과연 전교조와 좌파 미디어의 선동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말인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증오가 그토록 크단 말인가? 손에 손에 휴대폰과 디카를 든, 이 풍요한 세대를 누가 그토록 분노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보수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좌익의 엄청난 음모'로 보고 있다. 따라서 '배후'를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확실한 '배후'가 있어야 하는데, 도무지 그런 것 같지가 않으니 문제다. 물론 민노총 등 진보진영이 이번 사태를 호재로 보고 대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시위의 주축을 이룬 10대와 20대의 대부분을 '좌파'라고 부를 수는 없다』
→ 예전에 한번 글을 올렸던 바, 이상돈 교수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그 10대 여학생들, 물론 전부 다는 아닐지는 몰라도, 그들이 교주로 모시는 연예인들에 대한 '보호'차원에서의 철부지 짓이 개입됨에는 까막눈임이 안타깝다.
또한 촛불집회의 배후론에 대한 이상돈 교수의 강한 부정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절대진리라 착각하는 오만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렇게 냉철한 현인의 눈을 가진 이가, 어찌 얼마못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레벨낮은 우리네 일반인보다 못한 행태를 보였을까의 조금은 너저분한 의문부호를 드린다.
맞는 말이다.
이번 촛불시위의 주축이었던(이제는 아님을 아셨을테고) 10대와 20대의 젊은이들이 모두 좌파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군중심리와 영웅심리 그리고 좌파의 음습한 선동이 뒤범벅된 상태에서, 마약적 들뜸에 취한 좌파의 어릿광대노릇에 충실했음은 사실이었다.
물론 이런 것에서 자유로운, 정말이지 순수한 마음으로 동참했던 젊은이들의 소신에는, 소리 작게나마 인정하는 마음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휘둘려 나선 이들에게까지 무등을 태우려는 이상돈 교수의 의도에는, 심히 유감의 뜻을 보낸다.
『보수진영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철없는 젊은 세대의 경거망동(輕擧妄動)으로 보고 있다. 그것도 어리석은 판단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젊은이들의 분노가 '일시적 감정의 분출'이고 '유행'이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감정'과 '유행'이 한 나라의 공권력을 무력화시킨다면, 이건 이미 '나라'가 아니다. 한국의 보수가 생각했던 '나라'는 이미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현상에 나는 곤혹스러울 뿐이다. 나는 평소부터 '문화전쟁'을 모르는 보수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젊은이들의 가슴과 머리에 건전한 보수의 철학과 생각을 넣지 않으면 진보 세력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도덕성을 저버린 보수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촛불시위는 '문화전쟁'의 연장이고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도덕성을 상실하고 '문화전쟁'을 모르는 한국의 보수는 이제 '마지막 패배'를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 젊은이들의 '감정'과 '유행'이 한 나라의 공권력을 무력화시킨다면, 이건 이미 '나라'가 아니다라는 말..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공권력을 무력화시킴에, 그렇다면 그건 이미 나라가 아닌게 아니라,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는 인간들은, 이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격이 없다해야 맞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상돈 교수는 무엇이 우선인지를 착각하고 있는건 아닌가?
문화전쟁?
불법과격 폭도들의 촛불집회가 어찌 문화라는 고급의 단어로 포장될 수 있는가?
파괴도 문화라고 주장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초딩이 폭력시위에 대항하는 경찰에게 쌍욕을 해대고, 주위의 어른이란 것들은 박수쳐대며 오히려 잘한다 부추기는 희안한 문화.
전대미문이라는 말은 이럴때 써야하지 않겠는가?
이상돈 교수의 주장처럼, 보수는 마지막 패배를 향해 가고 있는 듯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 패배를 피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상돈 교수같이 패배주의에 빠져 허우적대지않고,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보수가 많음을, 샤워후 베란다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한번쯤 생각해 보기를..
'나는 한국전쟁 중 부산 피난시 태어났으니 몇 년 후면 '환갑'이 된다. 교수 생활도 25년이 되어, 학내에선 '원로교수'가 됐다. 교수라는 직업이 좋은 것은 젊은이들과 생활하는 것이다. 새 학기가 되면 싱싱한 새 얼굴들을 보는 기분이 교직을 하게 하는 아드레날린이다'라는 그의 머릿말.
이상돈 교수님.
이제 대학으로 돌아가시지요.
거기서 싱싱한 젊은이들을 가르치며, 기분좋은 아드레날린의 효과를 보십시오.
이런 아찔한 패배주의적 글로, 우파들에게 소화불량을 유발하는 우울한 아세틸콜린 분비를 촉진시키지 마시고..
이상돈 교수의 아찔한 '패배주의'
- 자유의깃발(토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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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6-19, 14: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