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농장은 인류 최악의 경제제도다. 거기에 공산주의의 모순이 집약되어 있다. 공산혁명의 광풍과 더불어 제일 먼저 도입된 경제제도가 모든 산업의 국유화 곧 공산화였거니와, 토지가 예외일 수가 없었다. 공산혁명은 하나같이 농업국가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최고최대의 자산인 토지가 최우선적으로 내전 승리자인 공산당의 재산으로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만인평등의 지상낙원 건설이라는 마약을 복용하고 스스로 양심의 씨가 말라버린 자들은 총 한 자루 없는 지주들을 상대로 너무 싱거운 전쟁을 벌이며 악랄하게 약탈했다. 아무리 사악한 전쟁도 약탈은 승리 후 며칠간으로 한정되고 그 다음은 승리자들이 바람과 같이 떠나거나, 그들이 남을 경우 농민을 다독거려 다시 생업을 계속하게 하고 세금을 걷어갔을 뿐이다. 공산당은 그렇지 않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조직적이고 잔혹하고 영구적인 방법으로 약탈하고 또 약탈했다. 완벽하게 약탈했다. 이 악랄한 약탈의 결정판이 협동농장이다.
현실을 지극히 단순화한 공산주의 이론과는 달리, 공산화는 하나같이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 봉건 국가에서 발생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절로 드러난다. 빈부격차는 공업화 초기에 약간 증가할 뿐 어느 단계만 지나면 중산층의 급격한 부상과 더불어 점차 줄어들지만, 이제 막 굴뚝 공장이 하나둘 들어서는 나라는 농업국가 본래의 고질적 빈부격차에 초기 공업화에서 오는 빈부격차가 겹쳐서 빈부격차가 더 커지기 때문에, 사유재산제도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마르크스 말씀이 사막에 빗물이 스며들 듯이 잘 먹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에 요원의 불길처럼 번진 신흥종교의 열성당(zealots)이 바라던 바와는 달리, 협동농장제도는 지주를 학살하거나 몰락시킨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지상낙원의 새 주인이라는 농민도 그들로부터 생산량의 90%를 빼앗음으로써 인류 역사상 가장 비참한 국가 소작인으로 공산주의가 곧 신이요 정치인 신정일치 국가의 농노로 전락시켰다. 더불어 그들에게서 근로의욕과 행복추구권과 영혼의 고귀함을 영구히 앗아가 버렸다. 새로운 신정일치의 땅에서는 협동농장 도입으로 양산한 유휴 노동력이 기술 혁신과 경영 합리화와 안전 개념과 위생 시설이 원천적으로 결여된 원시적 중화학 공업에 유(有)노동 무(無)임금 유(有)재해 무(無)치료 원칙 하에 인간 기계로 무한히 투입되었다. 뼈와 살이 있는 인간이 기계가 될 수는 없었다. 당연히 근로의욕이 급격히 떨어졌다. 그러나 엉터리 통계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한국의 지식인과 학생들에게 남북한의 농지개혁에 관한 것만큼 잘못 알려져 있는 것도 드물 것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한국의 농지개혁은 그 거대한 숲은 시속 100km로 달리는 고속버스에서 하품하며 흘낏 보는 것에 그치고 천지개벽의 인공조림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일부 묘목의 시듦과 숲의 모양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잡초의 돋아남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비판만 화려하게 꽃피우는 반면, 북한의 농지개혁은 무상몰수 원칙에서 봉건지주의 몰락과 친일파의 청산을 은근히 연계하고 무상분배 원칙에서 소작농이 새 나라의 새 주인으로 탄생하는 지상낙원을 상상함으로써 처음에는 30%, 나중에는 90%에 달하는 살인적 세율의 국가 소작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 한국의 진실과 북한의 거짓을 바꿔치기 한다. 당연히 북한 주민의 굶주림에 대해 협동농장 제도를 혁파하라는 말은 감히 꺼내지도 못하고 무조건 지원이라는 웬 민족 정서를 강요한다.
신포지구에 경수로를 건설할 당시 한국의 원전 기술자들은 북한의 사과를 거봉사과라 불렀다. 어쩌다 구경하는 북한의 사과가 한국의 거봉포도 크기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옥수수는 난쟁이 키에 굵기는 손가락만하다. 대신에 손바닥만한 개인의 뙈기밭과 협동농장의 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논두렁 밭두렁에는 탐스런 농작물이 방실방실 웃고 있다.
공산국가에 노동자와 농민의 배고픔을 노예의 배고픔이 아니라 자신의 배고픔으로 느끼는 지도자가 들어서면서 왜 제일 먼저 한 일이 협동농장의 해체이었는지는 세 살 어린애의 이성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의 협동농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한 사막으로 변한다. 한국의 비료를 쏟아 부으면 그 정도는 더 심해진다. 오로지 김정일과 공산간부용 특별농장에서만 풍년가가 한 해도 거르지 않는다.
1992년 12월 한국에 민주주의 독점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하궁전 철봉각에서 망명을 꿈꾸던 김정일은 보따리를 풀고 덩실덩실 신바람 춤을 췄다. 핵도 터뜨리고 미사일도 쏘고 무장 잠수정도 내려보내고 한국의 함정도 불태우고! 민주화의 봄바람은 휴전선에서 북으로는 한 발짝도 올라가지 못하고 대신 독재의 겨울바람이 남으로 씽씽 불어왔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죄다 독재정권으로 낙인찍혀 날마다 북에서 내려온 겨울바람에 발가벗고 서 있어야 했지만, 북한의 김씨 왕조는 독재로 매도되기는커녕 간접적으로 정통성을 부여받고서 눈만 찡긋해도 주먹만 한 번 불끈 쥐어도 인도적 지원의 만국기를 흔들고 남북화해의 한반도기를 휘날리며 달러와 식량과 비료와 생필품이 당당히 올라가는 것 이상으로 뒷구멍으로 밑구멍으로 마구 올라가는 바람에, 정일금고는 절대 마르지 않고 절대 망하지 않는 중앙은행으로 바뀌어갔다. 남의 봄바람이 올라가야 북의 협동농장에도 봄비가 내리고 봄볕이 들 건데, 그것은 우주 비행사가 가져간 산소통처럼 봉지 바람이 되어 정일금고에 자본금을 늘려주는 철조망 여행과 철조망 사업을 하는 여행객과 사업가에게 조마조마한 산소 공급기 역할만 했다.
한국과 미국과 일본의 무조건 지원이 올라갈수록 중국의 조건부 폭리장사는 규모가 점점 커지고, 정치든 경제든 종교든 일체를 독점한 김정일이 차고앉은 금고는 그만큼 더 중앙은행으로서 입지를 굳혀간다. 그와 반비례해서 북한에서 협동농장의 사막화는 가속화된다. 김정일의 배는 등에서 점점 멀어지고 북한주민의 배는 점점 등에 가까워진다.
이명박 정부는 한나라당의 깃발로 청와대에 들어갔지만, 대북 정책은 이미 햇볕정책과 동일해졌다. 햇볕정책의 원조로부터 아낌없는 칭찬을 받기에 이르렀다. 북한주민과 탈북자의 생존권과 인권에 대해서는 가끔 속이 텅 빈 화려한 포장의 말씀 선물이나 보낼 뿐이지만, 김정일의 강철 독재와 황금 금고에 대해서는 침묵과 헛기침으로 일관하다가 포장이 밋밋한 무한 인내의 컨테이너 속에 국제바보 부시를 본받아 인도적 지원을 듬뿍 담아 보내기로 했다.
―알아서 좋은 데 써 주세요.
―원하시면 나무도 심어 줄게요.
―협동농장, 거기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몰라요.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말밖에 몰라요.
(2008. 6. 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