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빌붙어 미국 내쫓고 한국 삼키기

중국이 김정일을 다루듯 하면, 김정일은 자진해서 벌벌 긴다.

 김정일은 2007년, 2008년 정월에 연속으로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에 찾아갔다. 세배하러 간 셈이다. 중국 사신만 보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막무가내로 큰절을 올리겠다고 애원하던 선조 이연이 되살아난 듯하다. 아무리 작은 나라도 자국 주재의 대사를 직접 찾아가는 일은 없다. 무릇 어떤 강대국의 대사도 주재국의 원수가 설날에 불러만 주어도 감지덕지한다. 또한 아무리 작은 나라도 국가 원수가 큰 나라의 사신에게 큰절하는 법은 없다. 철두철미한 사대주의자 김정일과 선조는 망국의 순간에도 최고 권력자로선 차마 못할 짓을 자랑스럽게 너무도 진지하게 실천한 자다. 한민족의 수치요, 인류의 치욕이다.

 

 스탈린과 모택동에 빌붙어 절대권력을 차지한 김일성과 그에게서 권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김정일은 중국과 소련한테는 고양이 앞의 쥐다. 중국이나 소련이 사흘만 압력을 가하면, 한국만 대하면 즉각 배 밖으로 나와 앞산처럼 커지는 간이 광속으로 뱃속으로 들어가 원자만큼 작아진다. 소련이 제 앞가림도 잘 못하게 되자, 그 다음부터는 중국에게 개처럼 꼬리를 흔들며 말같이 냅다 휴전선 이남으로 달린다. 가끔 호기를 부리는 듯하지만, 송유관을 사흘만 닫고 압록강 다리를 사흘만 통제하면 혼비백산하여 100년을 써도 못 다 쓸 무산철광을 철보다 녹이 더 많이 낀 고철 값으로 상납한다.

 

 김정일은 미국과 한국만 대하면 기고만장한다. 대국의 황제를 믿고 강아지가 주인이 시키기도 전에 겁도 없이 아무나 보고 혼신의 힘을 다해 짖듯이 밀림의 왕자에게 왕왕 짖고, 타잔보다 큰 소리로 승리의 함성을 지른다. 안방에서 뉴스를 보시는 어르신의 마음에 들기 위해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팔과 다리와 입의 근육을 최대한 활용하여 TV에 볼썽사나운 모습을 자랑스럽게 찍히는 것과 흡사하다. 한국은 숫제 종 취급한다. 조상대대의 종을 부리듯이 마구잡이로 성질을 부리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대포와 총과 미사일을 잊을 만하면 쏘아대며 맡긴 돈 찾아가듯이 돈을 뜯어가고 마름을 시켜 곡식을 실어가듯이 팔짱을 낀 채 인상을 찌푸리며 식량을 상납 받는다.
 
-받아 주는 것만 해도 고마워 해라!
그러면 한국의 촛불파는 정신병자 프로이트보다 더 해몽을 잘한다.
-이게 바로 민족화해니라. 한 술 밥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예로부터 겁쟁이는 한 치 틈도 없는 강자에겐 더없이 비굴하지만 만만한 자에게는 더할 수 없이 잔인하다.(They say the greatest coward can hurt the most ferociously.) 강자에게 영혼이 얼어붙을 정도로 억눌린 억하심정을 열 배 백 배로 약자 또는 스스로 굽히고 들어오는 종자에게 지랄탄처럼 터뜨린다. 또한 주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주인보다 더 강한 자에게도 물불을 안 가린다. 그것만이 살 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싸우게 되면, 주인이 턱 나서서 다 처리해 줄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노예보다 못한 북한 주민에게 야차보다 더 잔인하게 군다. 또한 한국에 운동권 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못된 시어미가 효부의 화신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잘해 줄수록 기고만장하여 변덕과 짜증을 마음대로 퍼붓듯이 실지로 북한 정권을 먹여 살리는 한국을 상대로 갖은 행패를 다 부린다. 섣불리 덤볐다가 애국심과 반공정신으로 똘똘 뭉친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군에게 개망신을 당한 후, 도리어 한국의 국가 원수로부터 선제공격을 절대 못하게 하는 명령을 전군에 하달 받게 한 다음, 유유히 손발이 묶인 6명의 용사를 수장시킨 적도 있다.

 

 이번에는 김정일의 알토란 비자금 조성 개구멍 근처에서, 총을 쏘면서 휴전선을 넘어오는 미군을 사살하듯이 숙소로부터 반경 2km도 벗어나지 않은 관광지에서 산책하는 한국의 관광객을 10초의 사이를 두고 단 두 방으로 저승사자에게 딸려 보냈다. 그 소식을 접하고도 한국의 대통령은 국회에서 대북한 연설문을 한 줄도 고치지 않았다. 남북간의 의사소통 문제가 한국의 새 정부에도 없지 않음을 인정하는 나긋나긋한 연설이었다. 여론이 빗발치듯 험악해지자, 뒤늦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경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을 했지만, 여지없이 퇴짜 맞았다. 도리어 한국이 사죄하라고 윽박지르는 말 속에는 언제든지 100만 명을 추가로 죽일 수 있다는 뜻이 숨겨 있을지도 모른다. 

 

 폭도의 정통성밖에 갖추지 못했고 반세기가 넘도록 2천만 동족에게 지옥생활을 강요한 업적밖에 없는 김일성과 김정일은 1945년부터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목표가 있다. 그것은 기어코 한국도 제2의 생지옥으로 만드는 것이다. 방법은 소련 또는 중국에 빌붙어 미국을 내쫓고 한국을 단숨에 삼키는 것이다. 이른바 혁명의 완성이다. 1950년에 일차 실패하고도 목표는 더욱 굳건해졌다. 한국이 세계최빈국에서 세계 10위를 넘보는 경제대국으로 올라섬에 따라, 그 목표는 약오름 더하기 불안함과 상승 작용하여 더욱 단단해지고 뚜렷해졌다. 한국만 모르거나 모른 척할 따름이다. 이제 목표는 눈앞에 다가왔다고 보는 듯하다. 2012년 죽어도 죽지 않는 김일성이 100살 되는 해에, 미군이 나가거나 허수아비가 될 것이고, 그 사이 한국은 지리멸렬하여 정권과 무관하게 민족공조파가 더욱 득세할 것이다.

 

 북한주민의 아픔에는 먼 산의 불 구경하듯 추상적인 인도주의를 중얼거리지만, 김정일의 찡그림에는 몸둘 바를 모르는 자들이 손에 손에 촛불을 치켜들면, 나라 전체가 삽시간에 무법천지로 돌변한다. 미국도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김정일의 손안에서 놀아난다. 실은 중국이 무섭고 러시아가 두렵기 때문이다. 한국이 진절머리가 나기 때문이다.

-그래, 그토록 소원이면 어디 너희들끼리 잘 살아 봐라. 나도 내 코가 석 자다.
 서부영화 속의 카우보이와 보안관은 더 이상 없다. 미쳐 날뛰는 소 떼에 절절 매는 카우보이와, 황야에 자옥한 먼지를 날리는 무법자에게 아첨하는 보안관이 있을 따름이다. 

 

 약 100년 전 사라예보의 총성 한 방으로 유럽은 전쟁터로 바뀌었다. 만약 그 때 오스트리아가 전쟁을 피하기 위해 황태자의 죽음을 노숙자의 죽음이라도 되는 양 굴욕적으로 처리했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오스트리아 제국은 그대로 보존되었을 것인가. 그것은 단지 곳곳에 널린 뇌관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일이 없었다면 그보다 더한 일이, 전쟁할 구실이 얼마든지 생겨났을 것이다. 

 

 서해에서 산화한 여섯 용사의 죽음을 헛되이 한 것처럼 금강산의 해변을 붉게 물들인 피를 물 한 바가지로 대충 씻어 버린다면, 100만 명의 피로도 모자랄 것이다. 개성과 금강산에서 한국인을 모조리 철수시키면, 100만 명의 피가 단 100명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이지만, 자유왕래 한 명 없는 괴상망측한 민족화해에 연연하면 100만 명의 피로도 모자랄지 모른다.               

 김정일을 다루는 방법은 중국이 김정일을 대하는 것을 보면 세 살 어린애도 알 수 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압박하면 자진해서 벌벌 긴다. 공중에 대고 종주먹 한 번 못 날린다. 낮 새가 보고 밤 쥐가 들을까 봐. 한국의 촛불파가 왜 반세기 전 자유민주통일의 주적 중국에 벌벌 기는가는 불문가지(不問可知)!
           (2008. 7. 15.)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