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싱은 호기심 가는 영화는 아니었다. 북한에 관한 이야기, 대충 알고 항상 쓰고 계속 말해 온 것들이다.
장마당에 꽃제비, 변방의 구류장, 몽골의 탈주로까지...다 알고 있던 그곳을 보는데 두 눈은 엉망이 됐다. 소매로 감당 못할 눈물에 당혹스러웠다. 낮 시간, 큰 극장에 서너 명 밖에 없다는 핑계로 실컷 울었다.
「대의(大義)」를 다시 보았다. 「저들을 구(救)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좌익에 대한 미움이 아니었다. 「죽어가는 동족을 살리고, 갇힌 자를 옥(獄)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선(善)한 동기의 사랑이었다. 간절히 간구해왔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의(義)로운 행위에 실수(失手)도 따른다. 때론 어정거리며, 때론 절름발이처럼 걷는다. 원수, 대적, 행악자(行惡者)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는다. 내 살을 파먹으려 군대가 진을 치고 전쟁을 일으킨다. 나의 입을 막고, 나의 글을 태우려 한다.
그러나 보라. 저들이 지옥(地獄)에서 죽어간다! 하늘은 어째서 침묵하는가? 원수들이 나의 팔을 꺾고, 나의 다리를 자르려한다. 하늘의 영(靈)은 떠나갔는가? 지옥에서 죽어가는 저들을 보고만 있어야 하나?
차인표의 대사는 들리지 않았다. 배우의 눈빛이 마음에 공명했다. 아들 「준이」에 대한 애끓는 부정(父情)은 나의 마음이었다. 지금도 수많은 용수(차인표 扮)의 절망은 대륙에서 반복된다. 숱한 준이의 죽음이 끝없이 이어진다.
지옥(地獄)의 일상 북녘을 짓누르는데, 심령(心靈)은 속절없이 부르짖고만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