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정신박약아가 지껄이는 이야기
음향과 분노로 가득 찬 무의미한 지껄임 (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맥베스』셰익스피어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속된 말로 '꼭지가 돌아버린다'는 게 있다. 순간적으로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치밀어 만화로 표시하면 머리 위로 분노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는 뜻이다. 청소년들이 잘 쓰는 표현이었는데, 이제는 성인들도 심심찮게 쓴다. 감정억제가 미덕이었던 시대에서 감정폭발이 '쿨(cool)'한 시대가 되면서, 감정절제의 중용지도(中庸之道)마저 바보병신 짓으로 손가락질 받는 듯하자, 시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숱한 아이들이 거짓말의 효용성을 깨닫기 시작하는 서너 살 무렵부터 사회적 동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도덕적 기준, 다시 말해서, 감정의 용암을 가두는 초자아의 지각(地殼)을 아예 형성도 못한 결과, 감정의 지진을 언제 어디서든 일으킬 수 있는 헐크가 되었다. 감정억제 세대인 부모의 박수를 받으며 그렇게 충동에 살고 충동에 죽는 자들이 속출한다. TV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출연교섭이 쇄도하는 아역 스타가 비일비재하다. 그게 일찌감치 육체를 망가뜨리는 소아암 못지 않게 심각한 소아 정신 파괴 질환인 줄도 모르고 조기 치료의 시기를 놓침에 따라, 이제 청소년 중에도 이런 자들이 수두룩하다.
오늘날 한국 청소년의 입에는 네 자식 내 자식 할 것 없이 70년대만 해도 뒷골목에서조차 함부로 쓰지 않던 섬뜩한 욕설이 더덕더덕 붙어 있다. 순간순간 그렇게 감정을 미세하게 조절하지 않으면, '꼭지가 돌아버릴' 일이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럴지 모른다. 덩치가 부모와 비슷해지는 중학생만 되면, 이런 괴물은 부모의 상전이 된다. 선생님들도 국적 불명의 민주교육 방패 뒤에 숨어 슬금슬금 헐크의 눈치를 본다. 아무런 미움의 감정 없이 또는 은근한 사랑의 감정으로 꿀밤 한 대 먹이는 것에도 헐크는 '꼭지가 돌아' 눈에 핏발을 세우며 즉각 휴대폰을 꺼내어 물증을 확보함과 동시에 112를 누르거나 그 자리서 '되로 받고 말로 갚는' 게 이젠 반상회 뉴스감도 못 된다. 헐크의 연령이 갈수록 낮아져서 선생님들은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의 담임도 극구 사양한다. 무서워서!
놀랍게도 헐크의 팬은 어른 사회에도 쫙 깔렸다. 가장 대표적인 집단이 사법부 위에 군림하는 국가인권위다. 그들은 2천만 동족에 대한 천인공노할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해마다 증거불충분이라는 궤변으로 에덴의 뱀처럼 유유히 빠져나가지만, 아무리 사소한 것도 학생 인권 문제가 될 만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알았는지 빛의 속도로 달려와 무조건 인권 피해자 편에 서서 역시 빛의 속도로 인터넷과 방송에 여론재판의 판결문을 퍼뜨린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사회의 거울이다. 거울은 거울 앞에 나타나는 물체를 그대로 반사한다. 거울은 또한 물체가 앞에 있더라도 빛이 없으면 아무 역할을 못한다. 여기서 물체는 방송과 인터넷과 신문이다. 빛은 정치적 권력과 문화적 권력이다. 불평불만과 증오로 가득 찬 매체를 밤낮으로 보고 듣고 자라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나라의 권력이 어디 있는지,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그들의 온갖 불평불만은 분단의 업보에 매어 있고, 근원적 증오는 대한민국의 원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사회의 거울은 무의식중에 깨닫는다.
―잘 사는 것도 잘 사는 것이 아니고 자유로운 것도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알고 보면 다 엉터리다. 모든 걸 뒤집어엎어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시장바닥에서건 길거리에서건 잔칫집에서건 아무나 붙잡고 대화를 나누던 때보다 현재 한국은 더 어지럽다. 소피스트의 음향과 분노만 가득할 뿐, 어디에도 소크라테스의 언어와 이성이 없다. 너나 없이 스스로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는 진리의 상대성에 대한 나름대로의 믿음이라도 있었지만, 한국의 지식인은 그마저도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인의 음향과 분노 뒤에는 진리의 상대성, 불가지론(不可知論)보다 더 무서운 기준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북한의 잣대다. 북한의 거짓은 침묵함으로 진실로 둔갑하게 만들고 한국의 진실은 헐뜯음으로 거짓으로 자리잡게 만드는 것이다. 북한의 인권유린에는 특수성이란 고무줄 잣대를 들이대고 한국의 인권유린에는 보편성이란 강철 잣대를 들이댄다. 그 보편성마저 지극히 자의적이고 비이성적이다.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보편성이요 절대적 기준이다. 한 마디로 독재자의 잣대다.
촛불집회에만 음향과 분노가 가득 찬 게 아니다. 파업에도 환경살리기 시위에도 남북공동 응원에도 공청회에도 음향과 분노가 가득하다. 선거에도 국회에도 국무회의에도 법정에도 남북회담에도 온통 음향과 분노가 가득하다. 공산권의 몰락 후에 세계 어디서나 공유되는 가치관도 한국에만 오면, 미친 애완견이 주인한테 짖는 소리가 되고 심심해 죽을 지경인 학생이 신도림역에서 스트립 쇼하는 부조리극이 된다. 정권교체? 도대체 스스로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도 모르고 스스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른다. 아그배나무에 돌배나무를 접붙이고 가을만 되면, 두고 보라, 반년만 지나면 보기만 해도 침이 절로 넘어가는 나주배가 주렁주렁 달릴 것이니까, 하며 고개를 기린처럼 쭉 빼어 기다리는 격이다.
(2008. 7.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