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의 아들로 나오는 준이는 기차역 앞 거대한 김일성 초상 밑에서 걸식(乞食)을 한다. 뼈만 남은 꽃제비들은 먹다 남긴 음식으로 힘겹게 연명(延命)한다. 영생불멸의 수령(首領)이 만든 지상낙원은 그렇게 생지옥이 된 지 오래다.
변방 구류장(拘留場)은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사악(邪惡)의 집결소다.
만삭의 임부(姙婦)의 배를 군홧발로 짓밟는 강제낙태(强制落胎)에서 찍소리도 못한 채 개머리판에 맞아 절명하는 탈북자들이 등장한다. 준이의 「쥐 가죽」치료에도 불구하고 소꿉친구 미선은 구더기 끓는 부스럼으로 죽어나간다.
글로 보고, 말로 들었던 곳이다. 그러나 눈으로 본 그곳은 가장 역겨운 궁창의 모습이다. 탈북자를 임시로 가두는 구류장이 저 정도라면 정치범수용소, 그 끝에 있는 완전통제구역은 또 어떤 모습이란 말인가? 그 곳에서 죽어간 수 백 만 죄 없는 정치범은 얼마나 억울한 피를 쏟아냈을까?
노무현은 지난 해 10월 평양인민궁전을 방문해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라는 글(?)을 남겼다. 동족을 수백만이나 굶겨죽이고, 얼려죽이고, 때려죽인 살인마 소굴에서 『행복』과 『주권』을 빌어「저주」를 각인했다. 한국에 이런 자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은 현실을 힘들게 만든다.
우리 모두 아픔이 있고,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동족의 상처를 보며 몸 둘 바 모르게 고통스러워한다. 양심이 마비된 세대, 어둠에 영혼을 판 자(者)들이 세상권세 잡고 흔들어대지만, 동족에 대한 구원(救援)을 멈출 순 없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이사야 42장 6~7절)
원수, 대적(大敵), 행악자(行惡者)들이 지금도 내 살을 파먹으려 으르렁대고, 환란(患亂)이 넋을 빼놓을 듯 사납게 몰려오지만, 저들을 구해야 한다. 그들이 울고 있다. 의인(義人)을 찾아 하늘을 바라며 울부짖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