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등불 들고 다니는 사람은 철학자 아니면 미치광이일 터! 철학자도 아니고 미치광이도 아닌데 대낮에 등불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북한인권운동가! 풍요의 거리 소돔의 의인이요 향락의 홍등가 고모라의 천사다. 풍요의 도시에서 굶주림을 말하는 것은 다이어트의 고통을 호소하는 격이고, 향락의 낙원에서 인권유린을 말하는 것은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개인적 취향을 비방하는 격이다. 그들은 굶주림과 인권유린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알지만 도대체 실감하지 못한다. 실감나지 않으니, 어쩌다 고개를 끄덕이다가 저도 모르게 졸거나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이윽고 다들 귀찮아하고 먼 산 보는 척하며 피한다.
바야흐로 21세기는 지구촌의 아무리 구석진 곳에 일어난 일도 곧바로 전세계의 뉴스로 뜨는 정보의 시대라고 한다. 여기에도 치명적 결함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 갈수록 커지는 의사소통의 부재, 다른 하나는 무지막지한 정보차단 앞에 발생하는 원시시대보다 더한 정보의 암흑 현상이다. 이 두 현상이 동시에 벌어지는 땅이 있다. 그 곳은 한반도로, 남쪽은 의사소통의 부재 때문에 밤마다 촛불시위요 북쪽은 정보의 암흑 현상 때문에 날마다 어릿광대 쇼다. 아무리 용감한 종군기자도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는 어떤 정보의 빛도 직접적으로 흘러나올 수 없기 때문에 강아지 한 마리의 죽음에도 눈물 콧물 줄줄 흘리는 사람들조차 300만이 굶어 죽고 20만이 죽을 때까지 채찍 아래 시달리고 총칼 아래 시시때때로 즉결처분된다는 소문에도 동정의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노숙자에게 동전 한 닢 던져주는 정도의 동정도 부담스러워 한다.
의인의 등불과 천사의 목소리는 아무리 희미하고 미약할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밝아질 수 있고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악인과 악마는 너무도 잘 안다. 따라서 그들은 희미한 등불을 아예 꺼뜨리고 미약한 목소리를 숫제 들리지 않게 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쉼 없이 거대한 바람을 일으키고 엄청난 소음을 터뜨린다.
자유왕래 한 명 없는 괴상망측한 민족화해의 바람에 북한인권의 등불은 거의 꺼졌고, 집요한 선정적 반미반일의 소음에 북한인권의 목소리는 거의 잦아들었다. 이에 발맞추어 초강대국의 무릎도 핵무기로 위협받는 평화의 제단 앞에 꿇려졌고, 세계의 양심도 주권침해라는 악다구니 선전선동의 스피커 앞에 마비되었다.
암흑의 세력은 언제나 불멸을 꿈꿨지만 성공한 적이 없다. 거짓의 성벽이 아무리 높고 튼튼해도 무너지지 않은 적이 없다. 언제 암흑과 거짓이 임계점에 도달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일단 그 순간이 오면, 폭풍우가 들이닥치고 지진이 터진다. 암흑의 세력이 회심의 미소를 지을 때, 거짓의 성벽이 하늘을 조롱할 때, 그 때가 바로 멸망의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은 하나님밖에 모르시겠지만,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희미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숫자가 적어질수록 때는 그만큼 가까워진다. 열에서 다섯으로 다섯에서 하나로 줄어들 때, 그 때가 바로 절망 속에서 희망의 꽃이 봉우리를 맺을 때다.
(2008. 7.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