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이 선진국이 되려면 영어교육보다 국어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옥스퍼드대 교수 수전 로메인 교수는 모국어를 사용할 때 창의력이 가장 활발해진다고 주장한다.
이 두 사람이 영어교육의 중요성을 여느 사람보다 모르는 게 아니다. 더 잘 안다. 로메인 교수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영어교육을 '전도'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을 경계한다. 머리를 주고 팔다리를 얻는 어리석음을 경계한다. 팔다리도 중요하지만, 머리는 더 중요하다. 그렇다고 머리만으로 살 수도 없고 팔다리만으로 살 수도 없다. 둘 다 살리고 튼실하게 하되, 머리는 어디까지나 머리가 되어야 하고 팔다리는 어디까지나 팔다리가 되어야 한다.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시대의 선구자를 자처하고 있다. 싱가포르나 인도처럼 영어를 공식어(official language)로 하자는 말이다. 세계화(globalization) 시대에 한 발 앞서 나가자는 말이다. 대학에서는 최근 이런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하여 너도나도 영어로 강의하는 강좌가 늘고 있다. 그것이 마치 세계수준의 대학이 되는 지름길로 여겨지고 있다. 평가점수를 잘 받으려고 교수들이 짧은 영어로 강의하다 보니까, 정작 중요한 전문지식은 우리말로 할 때의 반도 전달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해서 '봉숭아학당' 개설이다. 영어로 강의하더라도 영어권 교수의 임용을 늘여서 서서히 도입해야 할 것을 너무 서두른 탓이다. 질적인 문제인 대학경쟁력을 양적인 차원으로 단순 대입한 탓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는 초중고를 대상으로 음으로 양으로 영어올인교육을 밀어붙인다. 국어가 영어교육에 걸림돌이 되니, 국어 외의 전과목을 아예 영어로만 수업하자는 것이다. 최근 초등학생의 학부모들로부터 올림픽 금메달 소식보다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국제중은 바로 그런 교육의 실험학교다. 영어시간에 영어로만 수업해야 한다는 지상명령은 누구도 반론을 못 내세운다. 영어시간에 국어를 추방하면 영어가 획기적으로 는다는 발상(영어교수법에서는 이를 direct method라고 함)이 마치 구구단처럼 달달 암송되고 있다.
세계화에 목숨거는 사람은 이미 한 걸음 시대에 뒤쳐진 구세대다. 20세기와 달리 21세기는 현지화(localization)와 세계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이 두 용어를 결합한 새 단어가 glocalization이다. 아직 우리말로는 번역도 안 되었다. '따뜻한 세계화' 정도로 새길 수 있다. 현지화는 각 국가 또는 각 지방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다. 문화의 핵심은 언어다. 각국의 언어요 각 지방의 사투리다. 세계화를 획일화로 착각하면 안 된다. 세계화를 미국화(Americanization)로 착각하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다양성이 말살되고 개성이 사라지고 창의력이 고갈된다. 세계화는 일종의 표준인데, 그 표준에는 미국식이 있을 수도 있고 한국식이 있을 수도 있다. 독일식이 있을 수도 있고 중국식이 있을 수도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어느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에 도하라운드가 실패한 이유도 WTO의 무리한 획일화에 세계경제에서 하루가 다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는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여러 개도국이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영어도 현지화되면서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 일색에서 각국의 특색이 가미된 새로운 영어가 태어나고 있다. 인도식 영어와 필리핀식 영어가 대표적이다. 미국이나 영국도 이제는 이런 영어가 틀렸다고 우길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이 새로운 영어를 배워야 한다.
무역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초강대국의 위상이 해가 갈수록 떨어지자, 미국인도 이제 영어만 고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외국어 곧 중국어나 일본어, 한국어, 아랍어 등 영향력 있는 국가나 지역의 언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미국이 과학기술과 경제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을 때는 영어만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미국인에게 도리어 유리했지만, IT분야에서는 한국, 제조업에서는 중국이 세계표준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는 한국어와 중국어를 모르면 손해보는 쪽은 오히려 미국이기 때문이다.
영어의 중요성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영어에 앞서 국어다. 국어가 탄탄하면 영어 배우기가 더 쉽다. 국어를 잘하려면 한자도 2천자는 필히 배워야 하고 국문법도 정확히 익혀야 하고 읽기와 쓰기도 제대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 국어를 영어의 걸림돌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요, 머리와 몸통을 혼동한 사고방식이다. 그것은 해방 후 미군정 시대에 영어를 국어 대신 학교와 관공서의 공용어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줏대 없는 자의 사대주의적 발상이요, 주인의식이 없는 자의 노예근성이다.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사람은 영어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언제 어디서나 상상할 수 있거니와, 이 상상은 곧바로 창의력과 연결된다. 또한 한국적 어조(액센트)와 발상이 가미된 한국식 영어가 인도식 영어처럼 또 하나의 표준이 될 수도 있다. 혀를 꼬부리고 말아서 미국식 영어를 앵무새처럼 흉내낸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발음에만 병적으로 집착하는 자들은 오히려 영어가 늘지 않는다. 반기문 유엔총장은 한국식 액센트가 강하지만, 그를 보고 영어 못한다고 비아냥거리는 영어 원어민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자신들보다 잘한다는 찬탄을 듣는다. 상대방의 영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독창적인 뜻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영어를 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어 교육을 이원화해야 한다. 1년, 2년 계획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10년, 20년, 100년 계획을 세워 원어민 포함하여 회화와 작문을 전담하는 교사를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양성하여 일선학교에 투입해야 한다. 기존의 교사 중에서도 그런 능력이 있거나 계발할 의향이 있는 사람은 다시 대학원에 편입시키거나 해외로 2년 이상 보내어 제대로 자격을 갖춘 교사로 만들어야 한다. 나머지 교사들은 문법과 독해를 가르쳐 학생들로 하여금 대학에서 영어원서 읽는 능력을 기르게 하면 된다. 일상회화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영어원서 독해 능력이다.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어설프게 영어회화를 중심으로 가르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이스라엘처럼 영어교육을 이원화하면 영어에 열등감을 갖지 않은 학생들이 10년, 20년 후부터는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들은 아마 어학연수의 필요성도 못 느낄 것이다. 도리어 한국으로 영어연수 받으러 올지 모른다.
위로 대통령부터 말끝마다 정부정책마다 설익은 영어를 마구 섞어 쓰는 것을 무슨 세계화인 양 착각하는 괴이한 풍토부터 고쳐야 한다. 그것은 영어도 못하고 국어도 못한다는 반증이다. 국어를 영어의 걸림돌로 여긴다는 간접적 증거다.
(2008. 8.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