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추악하고 거짓이 아름다울 때

진실이 추악하고 거짓이 아름다운 사회의 표본이 북한이다.

  진실과 아름다움, 거짓과 추악함은 각각 잘 어울리는 쌍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 진위미추(眞僞美醜)의 개념들이 엇갈리게 조합되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한 사회나 나라가 어지러울수록, 진실은 오히려 추악하고 거짓이 되려 아름답다. 적절한 긴장이 유지되는 평화 체제, 달리 표현하면, 자정(自淨) 능력이 있는 평화 체제 아래서는 진실이 아름답고 거짓이 추악한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런 곳에서는 상식이 통한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는 진실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이롭기도 하다. 신용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다. 신용은 정직에서 나오는데, 정직은 진실을 밝힘에 있어서 이익을 기대할 뿐 불이익을 두려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사회에서 보편화된다.  

 

 진실이 추악하고 거짓이 아름다운 사회의 표본이 북한이다. 거기서는 방송이든 신문이든, 교과서든 관보든, 영화든 집단체조든, 소설이든 연설이든 추악한 진실은 꽁꽁 숨기고 아름다운 거짓은 속속 드러내고 덕지덕지 쳐 바른다. 개방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개방의 햇빛 아래 추악한 진실이 구더기처럼 해골처럼 쓰레기처럼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거짓을 핵폭탄처럼 강력한 무기로 삼아 대를 이어 권력과 부와 명예를 독과점하고 있는 한 줌의 무리가 그 날로 먼지 덮어쓴 두더지 사담 꼴이 될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아름다운 거짓에 따르면, 북한의 공산독재는 정통성과 평화의 상징이고 한국의 자유민주는 민족반역과 전쟁의 상징이다. 북한의 배고픔은 거짓 무리의 악법에 쓰러진 진실의 대변자 소크라테스의 가난이고, 한국의 배부름은 음흉한 인간에게 잡아먹히기 위해 사육되는 어리석음의 대명사 돼지의 배부름이다. 

 

 북한의 아름다운 거짓은 사오정의 귀로 듣고 손오공의 손발로 지지하고, 한국의 아름다운 진실은 저팔계의 코로 코방귀 뀌고 삼장법사의 지팡이로 후려치는 현상이 KBS를 나팔수로 하여 지난 10여년 간 맹위를 떨쳤다.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뿌리는 깊고도 넓지만, 줄기와 잎이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약 10년 전이다. 북한에 이어 한국에서도 아름다운 거짓이 판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아름다운 진실은 꽁꽁 숨어 때로 나타나도 선뜻 믿질 못한다. 긴가민가 국민들은 너나 없이 회의론자가 되어 버렸다. 그 틈새를 노려 아름다운 거짓의 무리들이 여전히 해방 후 50년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진실은 추악한 거짓으로 매도하고 해방공간 3년에 육이오 남침 3년 도합 6년간 반(反)대한민국의 추악한 진실은 아름다운 거짓으로 추앙한다. 대한민국의 헌법 위에서 호령하는 자들이 떼를 지어 아름다운 거짓을 악다구니와 완력으로 강요하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유산을 이어받았다고 자처하는 새 정부조차 무엇이 두려운지 허둥지둥 그들의 생떼를 거의 다 들어준다. 새 정부의 진실도 하나하나 의심의 대상이 된다. 새 정부의 아름다운 거짓이 하나둘 밝혀지기도 한다.  

 

 아름답든 추악하든 진실이라고 하여 속속들이 드러낼 필요는 없다. 거기에는 도덕적으로 하등 문제될 것이 없지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생활과 관련된 비밀도 있고, 국가 안보나 개인의 정당한 이익과 관련된 비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아야 할 공공의 진실이 추악하다고 하여 아름다운 거짓의 가면에 가려진다면, 그리하여 아름다운 거짓이 아름다운 진실로 횡행한다면, 그 사회나 국가는 화약고 위에 올라선 거나 마찬가지다. 언젠가 곳곳에 묻혀 있는 도화선에 작은 불씨만 떨어져도 추악한 진실의 화약고가 폭발하면서 아름다운 거짓을 일시에 날리며 주변에 가득 무시무시한 파괴를 부른다. 

 

 아름다운 거짓으로 중무장한 집단이 국가권력 또는 반란집단 북한처럼 국가권력에 준하는 폭력을 장악하고 있을 때, 그들의 추악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보다 강한 국가들의 아름다운 진실과 패도적인 폭력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름다운 진실이 우세한 국가라 할지라도 현재의 한국처럼 국론이 첨예하게 양분되어 있을 때는 아름다운 거짓으로 중무장한 이웃의 무리가 내부모순으로 폭발하거나 내부모순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이 쪽의 아름다운 거짓의 무리를 믿고 침략을 감행할 때에, 100년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하는 역사적 순간에 허둥지둥하느라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가 어렵다. 

 

 6자회담, 6·15공동선언, 10·4선언--이들은 북한의 아름다운 거짓에 미소짓고 북한의 추악한 진실에 침묵하는 국제공조 수단 또는 민족공조 수단으로 전락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점점 키웠다. 더불어 한국도 위로 인왕산 자락에서 아래로 광화문 네거리까지 추악한 진실은 숨기고 아름다운 거짓은 드러내는 데 신바람이 났다. 이제 신명난 굿에 대나무를 꺾어들고 앞장서 무당춤을 추던 정모가 쫓겨나고, 아름다운 거짓이 횡행한 덕분에 귀신 잡던 대한민국의 군부대를 돌아다니며 당당히 북한을 찬양하던 원모가 잡혔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북한의 추악한 진실이 드러나고 북한의 아름다운 거짓이 불타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08. 8. 30.)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