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5의 배수(倍數) 해를 꺾어진 해라고 하는데, 그런 해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 중에서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 북조선 민주기지 곧 북조선 소련 위성국의 생일, 이렇게 3대 기념일은 5년 10년을 주기로 천지창조일과, 태양신 아폴로와 전쟁의 신 마르스의 탄생에 버금가는 의미를 부여하여 2천만 주민을 총동원해서 펄쩍펄쩍 뛰며 감격해 마지않게 한다. 현재의 고통을 잊거나 숨기기 위해 과거의 영광을 요란하게 기리는 한편 수십만 명이 동원된 집단체조 또는 군대사열로 미래의 희망을 표현한다. 미래의 희망이란 다름 아닌 전 조선의 민주화 곧 적화통일이다. 그를 위해 총폭탄이 되기로 어느 해보다 크게 다지는 해가 바로 꺾어진 해이다.
북한에선 2002년과 2008년과 2012년은 21세기 들어 가장 중요한 해다. 2002년은 김정일이 김유라란 소련 아이 이름으로 태어난 지 60년이 되는 해이고, 2008년은 소련의 위성국 일원으로 정식으로 편입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고, 2012년은 김일성이 김성주란 이름으로 김영주의 형으로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2002년은 김정일을 식견 있는 지도자라고 추켜세우던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2천만 노예들은 유일무이한 주인을 위해 조촐하나마 그의 회갑을 기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은 월드컵 4강 진출로 온 국민이 1945년 이후 어쩌면 처음으로 하나되어 아무나 붙잡고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었다. 벌레 씹은 표정을 지으며 심심해 하던 천출장군에게 회갑 선물을 줄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2002년 6월 29일 월드컵 3강을 놓고 태극전사가 6·25 참전국 터키의 용사와 져도 괜찮은 축제를 앞둔 날, 대통령님의 엄명으로 북방한계선을 넘어온 적군을 눈앞에 번히 보면서도 열중쉬어 하고 있던 대한민국 해군을, 새총으로 새장 안의 참수리를 쏘아 죽이듯 구닥다리 대포로 즉사시켰다. 남조선 해방 전쟁은 감히 못 일으켰지만, 그것은 회갑을 맞이한 김정일에게 더없이 좋은 선물이었다.
김정일은 이틀 후 경제개선조치란 걸 발표하여 연평 앞 바다의 붉은 짠물에 맹물을 타버렸다. 한국의 언론은 즉시 제2의 등소평을 예상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떤 해보다 의미 깊은 꺾어진 해를 멋지게 장식한 것이다. 한국은 김정일 회갑 선물은 생각도 못하고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두 소녀의 영정을 앞세워 제2의 햇볕정부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한다. 한국의 두 여중생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는 것으로 '당 중앙'은 한국의 새 정부를 간접적으로 승인했다.
제2의 햇볕정부는 물러나기 직전 14조 원어치의 어음을 끊어 주었을 뿐 아니라 그것에 비하면 실은 수천 수만 배 큰 선물도 5년 앞당겨 미리 선사했다. 그것은 바로 김일성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에 정말 크게 꺾어지는 해인 2012년에, 김일성의 생일 이틀 후가 되는 2012년 4월 17일에 남조선 해방의 최대 걸림돌 주한미군이 핵무기로 무장한 120만 총폭탄 인민군이 보기에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는 60만 국군과 별거에 들어간다는 계약서에 대못 같은 도장을 찍은 일이다.
북한으로선 2008년도 여간 중요한 해가 아니다. 소련의 위성국 편입 60주년, 크게 꺾어진 해이기 때문이다. 그 50주년은 3년간의 유훈통치를 끝내고 김정일이 명실상부하게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등극한 해이고 한국에선 외환위기에 뒤이어 제1기 햇볕정부가 들어선 해라 나름대로 뜻깊게 보냈다. 김정일은 훗날 너무도 기뻐서 김대중을 만난 자리에서 '통일은 내 마음먹기'라고 실실 웃으며 호언장담했다. 김일성이 60회 생일을 맞이한 해는 1972년인데, 남북대화를 빌미로 북한에서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수령독재체제가 확립된 해다.
소련의 위성국으로 정식으로 편입한 지 60년이 되는 2008년 9월 9일에 김정일이 팔짝팔짝 뛰는 2천만의 기쁨에 손을 들어 답례하지 못했다. 은둔 쇼는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지만, 위성국의 회갑을 기리는 크게 꺾어지는 해인지라, 은둔 쇼라기에는 아무래도 설득력이 약했다. 결국 여러 경로를 통해 김정일의 건강 문제 때문임이 밝혀졌다. 그러자 김칫국 마시는 소리(한국의 순진우파), 속으로 곡하는 소리(한국의 친북좌파), 은근히 오금박는 소리(중국), 들릴 듯 말 듯 침 삼키는 소리(일본), 태연한 척 헛기침하는 소리(미국) 등이 어지럽게 들린다.
최고의 북한 전문가 황장엽씨가 제일 정확히 보는 듯하다.
'중국이 버티는 한 김정일을 대신할 자는 100명이 넘는다.'
절대권력자는 지상에서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까지 시한폭탄이다. 때로 절대권력자가 병상에 있을 때 언로가 완전히 차단되는 수가 있다. 레닌이 죽기 전에 스탈린이 그러했고, 모택동이 죽기 전에 4인방이 그러했고, 김일성이 죽기 전에 김정일이 그러했다. 김정일은 스스로의 업보 때문에 이것을 전쟁보다 두려워한다. 그래서 어떤 아들도 후계자로 지목하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의 대형 사건이 터져 버렸다. 방탕한 생활의 대가겠지만, 한창 나이에 더 이상 축지법과 둔갑술을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4년만 더 기다리면 되는데, 2012년 4월 17일만 지나면 '민주기지'를 제주도까지 뻗쳐 '민주조선독립국가'를 건국하는 것은 초읽기에 들어가는데, 적화통일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누군가에 의해 자신이 꼭두각시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현재로선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이 유력하다. 그는 그의 측근들과 더불어 김정일에 의해 숙청되었지만, 2007년에 북한의 새 하늘 중국이 복권시켰다. 김정일은 1985년 경부터 김일성과 공동통치했고 1992년부터는 사실상의 1인자로 올라섰다. 이에 비하면 김정남은 북한의 일개 도나 시도 맡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지금 당장 '세자책봉'을 하더라도 전문(電文) 전달자 이상의 일을 못할 것이다. 따라서 장성택이 김정일의 그림자 무사가 될 수밖에 없다. 김정남은 얼굴 마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김정일은 실은 그렇게 위중한 상황이 아닐 것이다. 세상이 다 아는 뚱보병인데다가 세계 최고의 의료진을 언제든지 파격적인 대우로 평양에 데려올 수 있기 때문에, '짠! 또는 메롱!' 하고 나타나기 위해, 뭔가 큰 일을 꾸미기 위해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를 동시에 흘려보낼 것이다. 그는 지금 적화통일시계를 밤낮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얼마나 연침(年針)을 앞당길 것인지 장고에 장고를 거듭할지 모른다. 중국이 노골적으로 숨통을 조여오기 전에 한국의 어여쁜 햇볕파를 예의주시하면서 오색구름을 타고 서울에 강림할 해를 행복에 겨워 하면서 고를지 모른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는 동정(同情) 뉴런이 뇌에 하나도 없는 사이코패스(psychopath) 김정일은 누구에게나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절대권력에 중독된 자로서 권력누수 또는 권력찬탈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것이 감지되는 순간 절대비밀의 치밀한 계획을 세워 3백만을 굶겨 죽인 잔인성을 다시 한 번 폭발하여, 내부적으로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하거나 '조국통일과 국토완정'을 위한 마왕 강림의 일대결단을 내릴지 모른다. 우왕좌왕하는 위기대처 능력밖에 없는 태평천하국은 그 날에 망연자실 검은 하늘만 쳐다볼 것이다.
(2008. 9. 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