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지는 달러, 굴러 떨어지는 원화(貨)

한국의 원화는 미끄러지는 달러에 부딪쳐 우당탕탕 굴러 떨어지고 있다.

 기축 통화 미국 달러의 체면이 영 말씀 아니다. 2차대전 후 반세기 동안 허름한 청바지에 빨간 셔츠만 대충 걸쳐도 미국 달러는 넥타이에 조끼를 받쳐입은 영국 파운드나 나비 넥타이에 제비꼬리 연주복을 차려입은 불란서 프랑보다 멋지게 보였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유럽연합의 유로, 일본의 엔뿐만 아니라 세계최대 개도국 중국의 위안에도 영 영이 안 선다. 카우보이가 감히 총을 뽑아들지 못하는 것은 실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계 줄을 길게 늘어뜨리고 고개를 삐딱하게 숙여 안경 위로 건너다보는 배불뚝이 채권자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1999년 1월에 1대 1로 시작한 유로는 2008년 9월 17일 현재 달러 대비 1대 0.70(유로 기준 1:1.43)으로 치솟았다. 1950년 무렵 1대 360이었던 엔화는 현재 1대 105로 3배 이상 몸값이 올라갔다. 1대 7.8로 고정되었던 위안화도 히말라야 산맥의 눈덩이보다 커지는 대미흑자 때문에 환율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1대 6.84로 떠밀려 올라갔다. 1대 6, 1대 5가 시장가치를 정확히 반영할 것이다.

 

 독일의 메르켈이 미국의 부시에게 한 말씀하자 프랑스의 사르코지도 거든다. 주제파악도 못하는 한국의 언론도 은근히 또는 내놓고 신바람 났다. 미안하지만 한국의 원화는 미끄러지는 달러에 부딪쳐 우당탕탕 굴러 떨어지고 있다. 달러 대비 1년 전 927원이던 원화가 9월 17일 현재 1116원(어제는 1160원까지 돌파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흑자를 구가하던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후 줄어들기는커녕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일인당 1만 달러 고지를 서둘러 점령하기 위해 시장가치보다 20% 정도 인위적으로 원화 가치를 밀어 올리다가 국제시장의 쇠 채찍을 맞은 것이 외환위기였는데, 그것은 원화를 국제외환시장에 맡겨서 제자리를 찾게 만들자 즉시 수출경쟁력이 되살아난 공산품의 소나기 수출로 이내 극복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환율이 올라가도 수출 경쟁력이 살아나지 못한다.

 

 환율은 한 국가의 국제경쟁력을 상징한다. 2차 산업만이 아니라 1차 산업, 3차 산업 모두 포함하여 국제경쟁력이 높으면 해외시장에서 외화를 벌 수 있다. 그러면 국내에 그 외화를 들여와 자국의 화폐와 바꾼다. 화폐도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에 수요가 많은 쪽 화폐의 가치가 올라간다. 그래서 경상수지 흑자국의 화폐는 가치가 올라가고 적자국의 화폐는 가치가 내려간다. 미국은 3차 산업과 1차 산업 중 농업의 경쟁력은 높지만, 2차 산업과 1차 산업 중 에너지원의 경쟁력이 낮다. 이 모두를 더하기 빼기하면, 미국은 세계최대 적자국이다. 3차 산업을 제외한 무역적자는 연간 8천억 달러가 넘고 3차 산업을 포함한 경상수지 적자는 약 7천억 달러다. GDP의 4.8%를 경상수지에서 까먹고 있다. 이런 상황이 80년대 이후 계속되고 있다.

 

 반면에 독일과 일본은 80년대 이후 만년 흑자국이다. 이들과 맞먹거나 추월한 나라가 중국이다. 자연 이들 세 나라의 화폐가치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유로화의 가치는 사실상 옛 마르크의 가치에 다름 아니다. 영국과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미국에 대해 전혀 큰 소리 칠 게 없다. 그들도 만년 적자국이니까. 영국은 아직 파운드화를 고수하지만, 나머지 세 나라는 무리하게 자국의 통화를 유로화, 사실상의 마르크화에 통합한 것이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미국보다 더 위험하다. 메르켈은 큰 소리쳐도 좋지만, 사르코지는 큰 소리칠 자격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호랑이 앞에서 으스대는 여우 꼴이다.
               
 미국은 적자국이면서 소비자에게 계속 아첨하여 인위적으로 경제를 성장시켰다. 오늘날 GDP는 소비와 투자와 경상수지로 계산하는데, 미국에서는 소비의 비중이 약 70%를 차지한다. 투자는 해외로 쏠리고 경상수지는 해가 갈수록 적자가 커졌기 때문에 소비가 성장의 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거품이 잔뜩 끼었다. 과소비 곧 빚내서 소비하는 것도 GDP로 계상되었기 때문이다. GDP를 생산기준으로 계산할 때는 쓰레기나 다름없는 재고품도 GDP로 계상되는 맹점이 있지만(공산국가의 GDP는 그런 식으로 터무니없이 부풀렸음) 이렇게 소비기준으로 계산할 때는 과소비가 GDP에 들어가는 맹점이 있다. 미국은 21세기가 시작되면서 닷컴 버블에 대처하기 위해, 당시 경제대통령 그린스펀이 이자율을 인플레이션 감안하면 0% 내지 마이너스로 내렸는데, 이것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서 빚내서 소비하는 게 멋진 신세계의 일대 유행으로 자리잡았다. 주택담보 부실채권도 이렇게 하여 타이타닉호를 잽 한 방으로 날려 버렸던 빙산처럼 커졌다. 지난 10년간 미국은 부동산을 포함하면 약 10조 달러 과소비했다고 한다. 엄격히 말하면 이만큼 GDP에서 공제해야 한다. 거품은 바늘 한 개에도 꺼지기 마련이고, 사상누각은 바람 한 점에도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남의 나라 얘기할 때가 아니다. 한국은 10여년 간의 무역흑자로 외환보유고가 2천억 달러를 넘어섰지만, 성장잠재력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누구도 거부하기 힘든 명분인 분배정의의 완장을 찬 정부들이 분노한 친정부 시민단체와 눈짓을 주고받으며 집요하게 기업의 발목을 잡고(잘 나가는 기업일수록 더 집요하게) 부동산을 중심으로 과소비를 부추겨 생산적 투자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기업투자는 해외로 쏠렸고, 갈 곳 잃은 은행의 돈은 우량기업으로 가는 대신 개인과 한계기업에게 마구 흘러 들어가 가계부채가 지난 10년간 500조원 가량 증가했다. 그 사이의 경제성장을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200조 원의 과소비가 발생했다는 말이다.

 

 한국의 반(反)자유주의 정부는 기업의 투자 부족을 정부 투자로 메웠다. 아뿔싸, 그것이 균형개발이란 이름으로 80년대의 일본정부가 그러했듯이 부동산 투자 또는 투기에 집중되었다. 토지보상비가 노무현 정부에서만 100조원을 능가했고 그 돈은 대부분 부동산 또는 생산 없는 소비에 재투자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균형개발과 투자란 꿩 먹고 알 먹기 선무당 정책으로 부동산 거품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는 징벌적 보복적 부동산 세금 폭탄을 터뜨려 부동산 시장에 거대한 웅덩이를 파놓고 드디어 '강부자'를 때려잡았다며 퇴임 후에도 2.0 아고라를 개설하여 희희낙락한다. 통화승수를 감안하면 100조원의 토지보상비로 인하여 보수적으로 잡더라도 300조원의 통화증발이 발생한 셈인데, 이것이 대부분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투자로 쓰이지 않고 도리어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부동산 과소비로 쓰였다. 3차 산업 포함하여 전 산업에 걸친 생산력 강화에 쓰이지 않고 주체할 수 없는 무역흑자를 국토균형발전에 쏟아 붓다가 부동산 거품이 터짐으로써 잃어버린 10년이란 흑자도산의 고통을 겪은 일본을 거의 그대로 좇아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라고 나을 게 없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만 만들어 주면 투자하지 말라고 해도 기를 쓰고 투자할 건데 환경은 만들어 주지 않고, 뻐꾸기 깃털처럼 가벼운 입으로 시장 '프렌들리한'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제발 투자하라고 기업가에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그치는 한편, 한반도대운하다(한다, 안 한다, 안 할 수도 있다, 할지도 모른다), 녹색성장이다, 국토균형개발 계속이다, 신도시 개발이다, 신성장동력이다, 하여 정부 주도의 백화점식 즉흥적 투자 풍선을 붕붕 띄우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수출을 늘린다며 환율을 올린다는 잘못된 신호를 너무도 노골적으로 시장에 보내어 가만 두어도 올라갈 환율을 걷잡을 수 없이 오르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환율을 방어한다며 수백 억 달러를 시장에 헛되이 쏟아 붓기도 했다. 미국의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외국인 투자가들이 이익도 실현할 겸 올해 초부터 한국에서 줄기차게 주식을 팔아 달러로 바꾸어 가는 바람에 한국의 외환시장에는 원화가 흔해 빠지게 되었다. 또한 그보다 앞서 고유가로 달러 수요가 급증하여 세계시장에선 동네북인 달러가 한국시장에선 이래저래 금방망이가 되었다.  

 

 각종 역차별적 규제와 조차지의 마피아처럼 치외법권을 향유하는 귀족노조의 '이 놈 저 놈 다 죽이고 우리끼리만 잘살자'는 집단이기주의--이 둘을 해결하지 못하면 동네북 달러가 둥둥 울릴 때마다 엔화와 위안화, 유로화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이 원화는 아랫배를 움켜쥐고 피를 토할 것이다. 

 

 남의 나라 걱정할 때가 아니다. 남의 나라 불행을 고소해할 때가 아니다. 신자유주의를 조소할 때가 아니다. 미국은 오히려 가장 먼저 시장의 냉혹한 경고를 받았기 때문에 80년대 말의 저축대부조합 금융위기와 2002년의 버블 닷컴을 극복했듯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든 유럽연합이든 중국이든 세계최대 소비시장이 주저앉은 영향을 받아 앞서거니 뒤서거니 미국 못지않은 조정을 받을지 모른다. 세계 소비시장의 축소로 가장 빠르고 가장 크게 영향받고 있는 한국은 부동산시장과 금융시장의 동시 폭삭으로 1997년의 외환위기가 낭만적으로 여기질 정도로 혹독한 시련을 겪을지도 있다.
              (2008.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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