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자유도 없고 평등도 없다

한국은 자유도 있고 평등도 있지만, 북한은 자유도 없고 평등도 없다.

 
 남한의 자유와 북한의 평등이 하나되는 것이 남북의 평화통일 --문익환
 
 대한민국의 전통적 자유통일 정책에 '양심'의 반기를 들고 남북을 오가며 힘차게 흔든 이들이 문익환과 임수경이다. 그들이 내세운 새로운 통일 이론의 근거가 바로 한국에는 자유는 있지만 평등이 없고 북한에는 자유는 없지만 북한에는 평등이 있다는 것이었다.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가 자유이고 공산주의의 핵심 가치가 평등이니까, 이것은 논리적으로 자명한 진리처럼 보인다. 사실 이 논리는 친북좌파의 존립기반이다. 따라서 좌파 정부는 당연히 평등에 치우치는 정책을 쓰게 마련이다.

 

 공산주의는 국민을 소수의 자산계급과 다수의 무산계급으로 나눈 다음 폭력으로 자산계급을 거꾸러뜨리고 무산계급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상으로도 자체모순을 내포하고 있고, 현실적으로도 모순투성이다. 공산혁명을 일으키려면 군대와 경찰을 수중에 넣어야만 하는데, 그것을 차지한 권력은 관료계급의 꼭대기에 위치한 소수가 독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이 새로운 자산계급이 된다. 공산주의는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모든 재산은 인민의 것이라고 하지만 재산을 대신 관리할 권력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들이 바로 새로운 자산계급이 된다. 그것도 스스로 노력해서 번 것이 아니라 권력으로 강탈한 것이다. 이 새로운 자산계급은 재산 관리를 할 뿐이라는 명목 하에 노른자위를 차지한다. 그들보다 큰 권력을 가진 자들이 없기 때문에 권력에서 밀려나지 않는 한 국가의 모든 재산이 사실상 그들의 수중에 들어간다. 다시 말해서 권력 순위가 곧 부의 순위가 된다.

 

 공산주의가 이론대로 제대로 굴러가려면 이 새로운 계급도 거꾸러뜨려야 한다. 그것이 이론상 무한 반복된다. 새로운 피지배층끼리의 노예적 평등은 있겠지만, 새로운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평등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봉건제의 주인과 노예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노예는 원래 재산이 없고 주인이 재산을 독차지하니까, 공산권력을 장악한 자는 주인으로서 국가의 모든 재산을 차지하고 절대다수 인민은 노예로서 최소한의 생존 수단 외에는 철저히 무소유의 삶을 살아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이론보다 더 참혹했고(구 공산권) 참혹하다(북한).

 

 유련(32살의 사단장 부인):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지.
 오대왕(28살의 취사병 유부남): ....
 유련: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지. 어서 벗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염련과 지음)

 

 출세하려면, 살아남으려면 쥐뿔만큼 권력이 높은 자를 위해서도, 그 가족을 위해서도, 그 아내와 자식을 위해서도 옛날의 노비가 하던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해 줘야 한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모택동의 어록에 충실한다는 미명하에 90%의 새 인민은 공산 권력자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심지어 사단장의 개인 취사병이 출장간 사단장의 사모님을 위해서 몸을 바치는 것도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된다. 그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좌천이나 강제노동, 감옥살이가 기다린다. 연좌제에 따라 삼족(三族)이 반동으로 몰린다. 

 

 '대를 이어 충성하자.'
 북한에서 이 구호는 공산국가 최초의 세습독재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2세 황제에게 대를 이어 진시황의 권력을 인정해 준다는 것과, 2세 황제의 신하인 1대 권력자들의 2세들에게도 부모의 권력을 고스란히 세습시키는 것을 허용한다는 이중의 의미가 있다.

 

 평등의 핵심은 법 앞의 평등인데, 철저한 권력 사회인 공산사회에서는 법은 권력에 철저히 종속한다. 따라서 불평등한 공개 투표만 있을 뿐 평등한 비밀 투표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성인이 똑같은 한 표라는 평등의 대원칙이 적용될 수 없다. 시장경제는 많이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중국에서도 태자당(太子黨) 곧 권력자의 2세들이 민영화되었건 여전히 국유화로 머물러 있건 경제권력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겉으로야 가장 높은 국가 주석의 월급이 고작 한국 돈으로 100만원도 될까 말까 할 정도로 공산당의 고위층이 청렴결백한 것 같지만, 인민과 평등한 것 같지만 뒤로는 가족을 통하여 자본주의의 재벌 못지 않은 재산을 갖고 있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대부분 중산층이 차지한 한국의 경우와는 천양지차다. 중국에는 스스로 정당하게 벌어서 중산층이 된 경우가 거의 없다. 13억 인구 중에 1천 만 명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공산당의 일당 독재가 계속되는 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중국에서는 평등은 현실적으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모든 것을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는 미명하에 권력의 순으로 국가 재산을 나눠 갖던 모택동 시절과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 북한에서 평등은 노예의 평등일 따름이다. 

 

 1948년 이래 한국은 모든 성인이 평등하게 신성한 한 표를 행사했다. 그 표로 훌륭하든 훌륭하지 않든 지도자를 스스로 뽑았다. 게다가 1961년부터 약 30년간 세계 1위의 경제성장률을 자랑하면서 대부분의 부가 노동자와 농민과 상인과 자영업자에게 돌아가면서 중산층이 70%로 늘어났다. 경제적으로도 대대적인 상향 평등화가 이뤄진 것이다. 한국의 이런 경제적 평등은 90%가 숟가락 하나, 젓가락 둘, 옷 두 벌, 하루 540g의 식량(일제시대 756g), 방 한 칸밖에 없는 무참한 북한의 하향 평등화와는 선명하게 대조된다. 

 

 북한의 지배층과 한국의 평등 선동꾼은 진실과 사실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래서 북한은 권력의 진공상태가 오기 전까지는 절대 개방하지 못한다. 개방의 시늉을 내더라도 북한의 지배층에게 달러를 바치기 위해, 인간 사파리 식 개방밖에 못한다. 그걸 무슨 대단한 업적인 양 남북의 화해인 양 동네방네 떠벌린다. 

 

 한국은 자유도 있고 평등도 있지만, 북한은 자유도 없고 평등도 없다. 북한에는 이론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자유와 평등이 있을 수 없다. 남북이 자유왕래하면 한 눈에 모든 것이 들통나니까, 북한의 지배층과 한국의 평등 선동꾼은 자유왕래를 그 어떤 것보다 두려워한다. 오늘의 독립운동가들이 띄워 보내는 삐라 한 장도 두려워 벌벌 떤다. 거기엔 거짓말이 한 글자도 없기 때문이다.     (2008.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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