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세계에서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신과 가장 닮은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이 아닐까 한다. 21세기를 한 뼘쯤 앞두고 공산 국가들이 와르르 도미노 신세가 되면서, 모든 분야에서 세계 표준으로 자리잡아 가는 듯했던 유일 초강대국의 원수로서 바람 피우는 것까지 쏙 빼 닮았던 빌 클린턴이 제우스에 가장 근접했던 것 같다.
세상은 급변하여 유한한 인간은 영원히 오를 수 없어 보이던 올림포스산 정상에 상서롭고 신비한 흰 구름 대신 불길하고 괴이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부족함이 없는 신들의 세계에서 반란이라도 일어났는지, 하얀 제우스가 검은 제우스로 변신했다. 검은 제우스의 천둥소리는 올림포스산만이 아니라 그 아래 땅과 바다에 널리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신들과 뭇 인간들이 최면에 걸리듯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희망의 환호를 보내고 있다. 과연 그의 번개 뿌리는 솜씨는 어떠할지 자못 궁금하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는 상위 5%와 하위 95%를 나누어 무엄하게 신의 자리를 넘보는 자들에겐 번개를 내리고 짐승의 자리로 추락하고 있는 자들에겐 단비를 내리겠다고 예고했다. 그것이 천둥 제1호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신의 자리를 넘본다고 널리 알려진 그들이 실은 번개가 내리기 전 이미 제우스 대신 단비를 아낌없이 내려 주었다고 한다. 미국의 최상위 5%도 아닌 불과 2.93%가 미국 전체 조세의 54%를 담당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보다 얼마나 더 세금을 내란 말인가. 과연 그들이 미국에 남아 있을 마음이 들까.
자비심에 넘치는 검은 제우스는 의료보험에 들지 못한 5천만 전원에게 의료보험 혜택을 주겠다고 말했다. 바다 요정 사이렌의 목소리처럼 달콤한 천둥 제2호다. 미국 연방 예산의 40%를 차지하는 메디케어(medicare 노인 의료지원)와 메디케이드(medicaid 저소득층 의료지원)는 눈사태처럼 불어나는데, 이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흑백을 가리지 않고 오바마에게 표를 몰아 줬다. 상위 5%에게서 세금을 더 짜내어 5천만 명에게 추가로 의료혜택을 주면서 동시에 노인과 저소득층에게 계속 의료비를 지원할 수 있을까. 그들로부터, 돈 없고 빽 없는 그들로부터 과연 알량한 기득권을 빼앗을 수 있을까. 설령 상위 5%의 전 재산을 몰수하더라도 곶감 빼먹기 식으로 몇 년간 버틸 수 있을까. 빌 클린턴의 부인 힐러리가 8년간 의욕에 넘쳐서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를 개혁하려다가 용의 몸통은커녕 뱀의 꼬리나 보여 주고 만 이유가 무얼까.
오바마는 세계를 향해서도 평화를 예고하는 천둥을 울렸다. 핵무기를 들고 위협하거나 핵무기를 곧 만들어 널리 구경시켜 주겠다고 장담하는 독재자는 직접 만나 먼저 미국의 오만을 사과하여 그들의 마음을 산 후 부드러운 몇 마디 말로써 그들을 우크라이나나 리비아나 남아공처럼 다소곳하게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체임벌린을 농락하던 히틀러를 사숙(私塾)하여 받아먹을 것 다 받아먹고 온갖 협박과 감언이설과 궤변으로 시간을 질질 끌면서 바람둥이 제우스도 좋고 바보 제우스도 좋고 살살 약을 올리며 기어코 핵무기를 개발하여 일약 강성대국으로 올라선 거지와 노예 땅의 유일 대지주가 검은 제우스 말은 특별히 잘 알아 듣고 크게 감동 먹고 기다렸다는 듯이 척 들어줄까. 스스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 나라들은 미국이 먼저 고개를 숙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들이 스스로 개과천선하여 독재자의 권력보다 국민의 행복을 우선해서 그랬을까.
오바마는 또한 여러 번 한국의 자동차에 번개를 내리겠다고 경고했다. 70만 대를 팔아 먹고 7천 대만 사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일본이나 독일과 달리 만만한 한 나라를 대상으로 한 이 작은 천둥은 수치상으로는 95% 미국인에게 너무도 솔깃했을 것이다. 본보기로 이런 나라쯤에야 번개를 내리기도 쉽다고 느껴질 것이다. 한때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도로를 점령했던 디트로이트의 바퀴 달린 기계 제작소가 제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공룡으로 전락한 것은 무엇보다 노조 때문이다. 이들은 심지어 퇴사한 후에도 의료보험비를 이전의 회사에 자동 청구한다. 기술 개발이든 디자인 창조든 이들에게는 후순위일 뿐이다. 월급 많이 챙겨 가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런데 이들은 오바마만 보면 전설의 록 가수를 보듯 깡충깡충 뛰며 두 손을 흔들었다. 한국은 미국이든 독일이든 일본이든 자동차 시장을 똑같은 조건으로 개방했다. 한국의 도로에서 독일과 일본의 멋쟁이들은 웃음과 휘파람을 주체하지 못하는데, 미국의 람보는 유독 울상이고 죽을상이다.
검은 제우스의 검음은 쌍수를 들고 눈가에 이슬을 맺으며 환영한다. 그러나 그의 천둥소리는 가슴이 섬뜩하다. 그가 내릴 번개는 머리가 쭈뼛거린다. 특히 7천만 한민족으로선 인권 유린과 거짓말의 세계 챔피언에겐 단비와 넥타와 꿀을 약속하고, 혈맹의 도움을 열 배 백 배로 키워 일본 이후 처음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직전에 이른 반세기 전만 해도 세계 최후진국이었던 기적의 나라에겐 번개와 눈물과 독을 공언하는 검은 제우스가 바람둥이 제우스나 바보 제우스보다 더 무섭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오바마가 연극의 유세장과 삶의 현장을 구별할 줄 아는 친구, 내년이면 탄생 200주년이 되는 링컨의 친구가 되길 바란다.
(2008. 11.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