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선 이념이 곧 권력

북한공산집단이 다 망했다고? 한국의 친북좌파가 설 자리가 없다고?

 

 자유민주의 이념이 분명하면, 공권력에 도전하는 세력의 광풍(狂風)은 찻잔 속의 태풍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민주의 이념이 분명하지 않으면, 공권력에 도전하는 세력의 미풍(微風)은 해변 도시의 쓰나미로 다가온다. 우습게도 자유민주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정책은 군사 쿠데타의 한 주역이라는 노태우를 끝으로 대한민국에서 사라졌다. 이른바 민주화가 몰이념화 또는 친북좌익화에 다름없음을, 지난 16년의 시간이 증명한 것이다. 냉전구도 아래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도 자유민주는 대외적으로는 반공으로, 대내적으로는 다양성 존중과 법치 확립과 경제적 풍요 달성과 복지 확대로 구현되었다. 공산독재의 서슬이 퍼럴 때는 그에 대한 단호한 반대와 그 도발에 대한 지체 없는 응징이 자유민주를 지키는 보루였다. 그러나 자유민주도 상대에 따라 변한다. 중소분쟁처럼 공산국가끼리 분열하거나 등소평의 중국이나 고르바초프의 소련처럼 공산독재가 악의 원천을 외국에서 찾지 않고 자신의 내부에서 찾을 때는 기꺼이 자유민주는 국경을 개방하여 도움의 손길을 뻗는다.

 

 공산독재의 이념은 일점일획도 바꾸지 않고, 전쟁 위협과 거짓 선동으로 자본과 재화만을 요구할 때는 국방력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공산독재의 폭로하는 것으로 맞불을 놓아 공산독재의 불똥이 강이나 산이나 바다를 감히 건너지 못하게 가로막아야 한다. 그래야 공산독재가 자체 모순으로 몰락하거나 일부나마 개과천선의 길로 나아간다. 이것이 바로 자유민주의 외교 원칙이다.

 

 빈곤과 무법천지, 불평등과 무지는 공산 바이러스의 온상이다. 따라서 자유민주는 대외적인 반공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대내적으로 성장과 분배, 법치와 교육, 사회적 안정과 문화적 다양성이 골고루 자리잡아야 한다. 역사만 찬란했을 뿐 사실상 가난하고 무질서한 신생독립국 신세였던 대한민국은 이 점에서 이승만 정부에서 노태우 정부까지 세계적인 모범 국가였다. 더군다나 북한 공산집단이 소련이란 북쪽 하늘도 무너지고 중공이란 서쪽 하늘도 무너짐에 따라, 싹싹하게 협상테이블로 나와 불가침에 대한 보증으로 5년간 일체 도발하지 않고(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어지지 않고 있음)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을 요구했을 때, 노태우 정부는 연례적인 한미 군사훈련까지 연기하면서까지 기꺼이 과거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고 평화공존의 대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모든 약속을 하루아침에 팽개친 것은 북한공산집단이었고, 그를 끄덕끄덕 또는 굽신굽신 받아 준 것은 한국의 '민주' 정부였다.

 

 자유민주의 이념을 민족의 하위 개념으로 치부한 김영삼 정부부터 육이오 후 40년간 대한민국이 쥐었던 남북간의 주도권이 방장 숨이 꼴딱 넘어가던 북한공산세력에게 얼렁뚱땅 넘어갔다. 그럼으로써 공산독재의 이념을 고수하는 세력이 슬그머니 민족의 구성 분자에서 최상층을 차지하게 이르렀다. 그 아래서 신음하는 90% 민족 노예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입으로만 행복해요, 하면서 여차하면 북쪽의 두 강을 건너가지만 그들은 '민족반역자'로서 또는 굶주림에 지쳐 동물원을 탈출한 원숭이로서 북한도 중국도 한국도 태국도 미국도 잡아가거나 돌려보내거나 못 본 척하거나 남의 눈이 무서워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어쩌다 한 명만 넘어와도 귀순용사로 국민적 영웅으로 떠받들던 역대 반공 정권이야말로 자유민주의 수호자였음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김정일이 적반하장 격으로 이념의 칼자루를 쥐고 휘두르자, 김영삼은 클린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고 친일파의 관을 꺼내 채찍질하고 군사독재의 빛 바랜 별을 저자거리에 내걸어 조롱했다. 반사 효과로 공산독재란 말은 쏙 들어가고 대신 우습게도 북한공산집단이 친일파를 청산하고 미제국주의를 쳐부순 순결한 민족으로 은근히 자리매김했을 뿐만 아니라, 지주와 자본가를 내쫓고 노동자와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권을 수립한 정통성 있는 '정부'로서 그 후 '약간의' 과오가 있지만 그것은 '약간의' 성취가 있다고 한들 아예 태어나지 말아야 했던 '남측'의 친일친미 군사독재 정부에 비하면 감히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고귀한 집단으로 부지불식간에 부상했다. 한강의 기적은 실개천의 모래성이라고 초등학생도 제 멋대로 비난할 수 있지만, 대동강의 타는 목마름은 동서냉전의 부산물로 먼 훗날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무언의 약속이 맺어졌다. 동서화해의 시대를 맞이하여 자주적 평화통일의 남북 고속도로를 닦기 위해 북측의 민족에겐 무조건 퍼주기만 해야지 시대착오적인 반공 논리로 절대 비판하면 안 된다, 라고. 

 

 단 한 번도 제한 받지 않았던 거주이전과 직업선택의 자유,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상고 출신도 거푸 대통령이 될 수 있고 금강산 기슭의 소도둑도 세계적 대기업 총수가 될 수 있는 만인평등의 기회, 부자에겐 세금을 왕창 걷고 가난한 노동자 농민은 세금을 거의 면제하는 복지 등 한국이 아무리 잘한 것도 200년 300년의 자유민주와 시장경제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최고 선진국과 비교하여 해외여행 해외유학을 무시로 다니면서도 마음껏 욕할 수 있지만, 자유가 뭔지 평등이 뭔지 선거가 뭔지 배부름이 뭔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하게 한 북한공산독재는 오로지 민족과 평화와 통일의 잣대로 끌어안고 눈물 흘리고 퍼 줄 뿐 과거에서 현재까지 일체 비판의 면죄부를 제공하여 오로지 퍼 주고 또 퍼 주어야만 한다. '쩨쩨하게' 달러와 식량과 의료품과 생필품이 어디로 흘러가고 어느 입으로 들어가는지에 대해서는 일체 묻지 말아야 한다. 의심하면 될 일도 안 된다고 강변한다. 단, 한국의 '군사독재자(자유민주수호의 큰 머슴)'와 '재벌총수(GNP성장과 고용창출과 세금납부의 일등 공로자)'는 그 금고와 주머니를 10년이고 20년이고 밤낮으로 뒤집고 털어야 마땅하다. 뒤집은 것도 또 뒤집고 턴 것도 또 털어야 마땅하다.  

       
  바다로 쳐들어와 구닥다리 대포를 쏘아도 최신식 대포를 쏘는 대신 몸으로 막다가 죽어 줘야 하고, 미사일을 쏘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인민군의 10년(120개월) 복무에 대해서는 절대 언급하지 말고 자진해서 국군의 복무를 24개월에서 18개월로 줄여야 하고, 핵실험을 단행하면 그건 수만 리 떨어진 부시 히틀러를 겨냥한 것 곧  민족적 쾌거로 이해하여 크게 감동 먹고 미군으로부터 전시 작전권을 회수하여야 한다.          

 

 

 2007년 12월 14일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두고 조선일보는 대통령 후보 3명의 이념 성향을 도표로 보여 주었다. 그에 따르면, 중도를 5로 보고 이회창은 6, 이명박과 정동영은 둘 다 4로 보았다. 이회창은 중도 우파, 이명박과 정동영은 중도 좌파로 본 것이다. 오보인지, 그 때야 진실을 알았는지 좌파 정권 10년을 심판하는 선거에서 우파의 대표주자로 조선일보가 직간접으로 밀었던 이명박을 선거 막판에 좌파로 보았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서 이념적 후원자이자 이론적 대변자였던 뉴 라이트는 원래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하거나 전향했다고 주장하는 무리다. 조선일보는 아마 그들의 성향을 보고 그렇게 판단했는지 모른다. 그 말이 맞다면  친북좌파 심판은 신기루요 코미디였다.  63 동지회는 한일수교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성공한 반공정부에 대해 지금도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는데, 그 회장직을 이명박과 이재오는 주거니 받거니 했다.

 

 이명박은 이념 성향을 스스로 밝힌 적이 없다. 자유민주를 얘기하면 시장경제만 얘기한다.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사단의 좌장인 이재오를 보면 이명박의 이념 성향이 정동영과 같다는 말이 맞은 듯하다. 하여간 이명박 정부는 이념은 낡은 것이라 하여 자유민주와 공산주의를 동급으로 취급하고 그보다 앞선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실용을 주창한다. 이리하여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권력은 이원화되었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실용 정부가 잡고 있지만, 사회권력과 문화권력은 이념 전쟁에서 승승장구한 친북좌파가 잡고 있다. 공산주의나 주체사상은 아직 보란 듯이 내놓지 못하는지라, 이들은 동일한 의미로 평등을 만병통치약으로 휘두른다.

 

 이념은 관념으로 머물러야 다수를 끌어 모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평등의 개념을 기회의 평등이든 결과의 평등이든 북한에는 절대 들이대지 않는다. 절대 평등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평등이란 잣대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이 세상 어디에도 안 통하는 데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실용이란 말로 이명박 정부는 상당한 유화 제스처를 쓰면서 은근히 이상동몽(異床同夢)임을 보여 주었지만, 친북좌파는 평등 이념의 칼자루를 쥐고 이명박 정부가 무슨 일을 하든 기득권 세력, 재벌, 군사독재의 향수병자, 극우보수, 반민족집단 등으로 매도한다. 촛불집회, 폭력시위, 악플 릴레이, 방송 겹치기 출연, 계기 교육 등으로 신라에서 어린애까지 즐겨 부르던 서동요처럼 남녀노소 누구나 'MB 아웃'을 노래 부르게 만든다.        

 

 한국은 명분사회다. 조선시대의 명분 유전자는 남북 공히 이어받았는데, 한국보다 북한이 훨씬 심하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적 명분은 현대 들어 민주 명분으로 변신했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적 명분, 현대는 민주 이념을 선점하면 권력이 따라온다. 한편 민주는 남북한이 같이 쓰는 말이지만, 내용이 정반대다. 북한은 민주가 공산주의이자 주체사상 곧 평등이고 한국은 민주가 자유민주 곧 자유이다. 그런데 한국의 자유민주는 80년대 접어들면서 대학부터 시작하여 민중민주 곧 사회주의로 바뀌었다. 그것은 관념적인 사회주의와 현실적인 북한공산주의로 나뉘어졌는데, 공산권의 몰락과 더불어 전자가 스스로 패하고 후자가 국민 대신 민족이란 개념을 매개체로 하여 주도권을 잡았다. 이 때 패한 자들의 상당수가 후에 뉴 라이트로 변신하여 정치권력을 잡는 데 성공한다.

 

 뉴 라이트는 올드 레프트 못지않게 올드 라이트를 경멸한다. 이들은 평등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뉴 레프트를 학수고대하며 이념 전쟁을 슬슬 피한다. 그리하여 좌파는 뉴 레프트로 변신할 것도 없이 노(김대중)소(노무현 등 386운동권)동락(同樂)으로 이념 전쟁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국회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숫자가 여당에 형편없이 뒤지고 지지율이 10% 대를 맴돌아도, 이들은 평등과 평화와 통일과 민족과 정통성 더 나아가 환경과 여성주의란 스스로 구축한 이념의 아성이 있기 때문에 다수를 언제든지 오합지졸로 만들 수 있다. 어디서나 공권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더군다나 이들 뒤에는 관념적 평등 이념을 금과옥조로 삼는 북한공산집단이 있고 중국 공산당이 있다. 북한공산집단이 다 망했다고? 한국의 친북좌파가 설 자리가 없다고? 그것은 조선시대 이래로 명분 내지 이념이 곧 권력인 한반도의 특수상황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오히려 칼자루는 그들이 쥐고 있다.
   (2009.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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