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가 곧 민주요 경제정의

국가 자본의 57%는 법치국가라는 제도이고 그 36%는 교육이다.

 

 기 소르망은 <<경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에서 세계은행을 거론하며, 국가의 부는 실물자산보다 비(非)실물자산 곧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invisible asset)이 월등히 크다고 한다. 자연자원은 1%에서 3%밖에 차지하지 않는다고 한다. OECD 국가의 1인당 평균 자본은 44만 달러인데, 자연자원이 1만 달러, 실물자본이 7만 달러이고 나머지는 무형자본이다. 세계 1위는 스위스로 64만 달러이다.

 

 국가 자본의 57%는 법치국가라는 제도이고 36%는 교육이다. 좀 단순하게 표현하면, 법치와 교육이 국가 자본의 93%나 차지한다. 

 

 좀더 구체적인 자료를 알아보기 위해, 나는 세계은행의 홈페이지를 들렀다. 법치

(rule of law) 항목만 뽑아 보았다. 기 소르망은 100점 만점으로 했을 때 스위스가 99.5, 미국이 91.8, 나이지리아가 5.8, OECD의 평균이 90,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는 28이라고 했지만, 이런 자료는 찾지 못했다. 아마 이것은 법치를 중심으로 하여 다른 것을 다 합한 수치인 듯하다.

 

 세계은행은 법치를 계량화하면서 중간을 0, 최고를 2.5, 최저를 -2.5로 표시했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이해하기가 곤란할 것 같아, 나는 100을 기준으로 하여 다시 표를 만들었다. 통계는 1996년부터 2006년에 걸쳐 있다.  

 

 한국은 2006년 64.4, 1996년 64.2였다. 10년 동안 제자리걸음이다. 이 사이에 최고는 2002년으로 65.8이었고 최저는 2003년으로 63.0이었다. 최저 수치는 1998년의 63.8과 비슷하다. 각각 노무현 정부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해다.   

 

 '더불어 삶'에 익숙한 바이킹의 후손과 게르만의 후손이 최상위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하는 2006년 기준이다.) 덴마크 90.6, 노르웨이 90.4, 스위스 89.2, 스웨덴 87.2, 뉴질랜드 88.6, 호주 86.2, 독일 85.4, 네덜란드 85.0, 영국 84.6, 미국 81.4이다. 우리나라처럼 우랄알타이어계통인 핀란드는 북구에 위치한 덕분인지 89.0이다. 

 

 아시아에선 영국법의 세례를 받은 싱가포르와 홍콩이 각각 86.4와 79.0으로 1위와 2위다. 3위는 일본으로 78.0이다. 이들은 프랑스 76.2보다 높고 스페인 72.0보다는 한결 높다.  아시아에선 이 세 경제권만이 선진권이다. 4위는 대만인데, 한국보다 약간 높은 65.4이다. 70이 넘으면 선진권이라고 보아 무방할 것 같다. 선진국의 말석을 차지하는 이태리는 57.4로 우리나라보다 낮다. 더 이상 이태리는 선진권으로 분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세계제일의 외환보유고로 기세가 등등하지만, 법치지수가 고작 42.0이다. 아직 낙제점이다. 러시아 31.8보다는 낫지만, 중국은 앞길이 험난하기만 하다. 경찰과 법관을 몽땅 바꾸는 등 획기적인 조치로 2003년 25.8에서 20006년 37.8로 상승률 단연 1위를 자랑하는 스탈린의 고향 그루지아(영어명 조지아)와 같은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부정부패의 온상 공안(경찰)의 무릉도원이자 권력의 낙원인 중국이 지도적인 국가로 발돋움하려면 50년 이상 걸릴 듯하다.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르고. 1986년부터 개혁개방의 길로 나선 베트남은 41.4이다. 후진국 중에서는 민주의 전통이 유구한 인도가 53.4로 제법 높다. 인도에선 중국과 달리 '빽'과 연줄(꽌시)보다 법과 논리가 앞선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인도가 중국보다 나을 수도 있다.

 

 놀라운 나라는 칠레다. 중남미에선 독보적인 73.0이다. 우리나라가 최초의 FTA를 맺은 상대국인 칠레는 어떤 나라보다 FTA를 많이 맺는 등 자유화 조치로 중남미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성장하는데, 법치지수론 이미 선진국이다. 브라질 40.4, 아르헨티나 38.4, 멕시코 40.2에 비하면 급이 다르다. 중남미에선 미국의 뒷마당인 푸에르토리코가 61.6으로 돋보인다. 차베스의 나라 베네수엘라는 22.2요, 발 치기 달인 강기갑의 이상 국가 쿠바는 31.8이다. 참고로 북한은 24.4다. 지구상 최악의 독재이긴 하지만, 북한은 법이 베네수엘라보다는 쬐끔  잘 지켜진다고 보는 셈이다.

 

 반세기 전이긴 하지만, 민주의 경험이 약간 있는 동구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헝가리와 체코가 64.6으로 동일하다. 폴란드는 55.0다. 압제가 심했던 루마니아는 46.8이고 알바니아는 36.0이다. 우크라이나는 35.6이다. 발트 3국은 상대적으로 높아서 리투아니아는 59.0이다. 에스토니아는 한국보다 높은 68.2이다. 어떤 나라든 어느 날 갑자기 인치(人治)에서 법치로 도약하긴 어렵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한국도 50년대에는 현재의 아프리카(나이지리아 24.6) 수준이었을 것이다. 운동권의 눈이 아닌 보통사람의 눈으로 보면, 한국의 법치지수는 60년대와 70년대에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운동권이 독재의 시대라고 다짜고짜 역사의 쓰레기통에 집어던지는 시대다. 1996년부터 2006년 사이에 우리나라는 법치지수를 64 수준에서 75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자칭 민주화 정부들은 법치 곧 민주를 제자리걸음시켰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자화자찬과 선전선동뿐 민주에 기여한 바가 전혀 없다.

 

 정치 민주화만이 아니라 경제정의도 마찬가지다.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농지개혁과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연공서열, 부자에게 세금을 왕창 매기는 누진세, 불필요한 인력도 상당수 고용해 주는 한솥밥 먹기, 평균수명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전국민 의료보험, 양적 질적으로 획기적으로 발전한 교육 등으로 한국은 눈부신 경제개발 시대에도 분배를 소홀히 한 적이 없다. 그것은 분배의 가장 정확한 잣대인 지니계수에서 드러난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 인기 정책으로 약간 개선된 것 외에는 지속적으로 나빠졌다.

 

 노태우 정부 시절에 노동조합도 합법화, 나아가 권력화되었기 때문에 경제정의 문제는 오히려 노사 대결에서 노노(勞勞)대결로 바뀌었다. 이를 제 자리잡게 만드는 게 시대적 소명이었지만, 김영삼과 김대중과 노무현은 노조와 친여 시민단체에 '로열(royal)' 정치권력과 '조커' 경영권을 더해 줌으로써 경제정의가 한결 악화되었다. 평등의 붉은 깃발로 사람들을 현혹시켜 노동귀족의 기득권을 한층 공고히 해 준 것이다.

 

 정권교체를 외친 이명박 정부는 법치지수를 높였을까. 세계은행의 새 통계를 볼 것도 없이, 아닐 것이다. 한때 전봇대를 뽑는다고 했지만, 그것은 어디 한쪽 구석에 처박힌 비효율의 전봇대지 온 나라에 만연한 불법의 전봇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는 두 번이나 있었다. 2008년과 2009년 각각 한 번이다. 반미(反美)에 미친 사람들의 '미친 소 타령'과 '때려 봐' 집단의 생명을 담보로 한 공권력 비웃기가 그것이다. 두 번 다 법치 우호 세력이 한국의 선진화를 위해서, 민주를 위해서, 경제정의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이명박 정부를 지원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두 번 다 이쪽 저쪽 눈치를 보다가, 끝내 정의의 여신이 내민 손을 슬그머니 외면했다. 떼법을 실정법과 동등하게 대우해 버린 것이다. 얼핏  보면 중도적 입장을 지킨 듯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떼법은 실정법과 동일 선상에 설 수 없기 때문이다. '도의적 책임'은 떼법에 무릎을 꿇는다는 의미다. 떼법이 실정법의 상위에 계신다는 조용한 그러나, 날벼락 같은 선언이다. 앞으로 4년간 한국의 법치지수는 계속 떨어질 것이다. 제자리걸음하면 다행이리라.
  (2009.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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