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4월 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 전에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쏠 모양이다. 연초부터 태평양 저쪽의 진보 대통령을 바라보면서 눈가에 띌 듯 말 듯 웃음을 머금고, 형형한 눈길로 휴전선 이남의 실용 대통령을 쏘아보면서 목에 잔뜩 핏대를 세우고 전면적 대결을 외치더니, 개성 관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기어코 한 명 잡아놓고 두만강을 바라보던 미국인 두 명을 납치한 후 드디어 한 판 벌일 모양이다.
"가난한 나라는 우주개발도 못하냐?"
이것이 수개월간 머리를 맞대고 개발한 북한의 논리다.
"그래, 못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는 이승만처럼 또는 그보다는 훨씬 못해도 등소평처럼 농지개혁부터 단행해서 농민들을 신바람 나게 함으로써 식량 자급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다. 강성대국이라면서 근 20년 동안 전세계로부터 식량을 구걸하는 게 창피하지도 않느냐. 우주개발인지 핵개발인지 그 돈으로 당장 굶어죽게 된 수백만의 목숨부터 살려라. 국제거지도 모자라, 국제깡패로 데뷔하려고 하느냐!"
실용 대통령이 이렇게 똑똑 대변인을 내세워 당당히 말하면 얼마나 좋으랴. 얼렁뚱땅 대변인은 그저,
"안 된다. 핵도 안 되고 미사일도 안 된다. 그러나 핵은 핵, 교류는 교류, 개성공단은 절대 닫지 않는다. 금강산 길도 곧 열 것이다. 대화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라고, 저 쪽이 치고 나오면 물러날 수밖에 없는 쇼당(show-down) 작전이나 쓴다.
미국과 한국의 솜방망이에 익숙한 김정일이 반 발짝이라도 물러날 리 만무하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던 해부터 핵 주도권을 쥐고 미국과 한국을 이간시키고 농락한 솜씨가 이제 마술의 경지에 들어섰다. 미국의 진보 대통령이 직접 대화를 공약하고, 미국의 진보 국무장관이 옛 대통령 남편의 15년 전 케케묵은 원칙론을 다시금 확인하고, 미국의 진보 국방장관이 '노, 예스, 노, 예스' 선문답을 혼자 주고받는 게 김정일은 재미있기만 하다. 자신의 건강 문제로 헛물을 키는 한국과 미국을 보고 세계최고부자는, 세계최고의료진을 언제든지 대령시킬 수 있는 절대권력자는 또 얼마나 즐거워할까. 콧노래가 절로 나올 것이다.
중국이 뒤를 봐 주는 한, 김정일은 두려울 게 없다. 압록강을 건너가 천자를 직접 알현하여 눈 도장을 확실히 받고 돌아와서는 일개 대사한테도 직접 세배 가서 조공국의 예를 다하는 등 중국한테는 철저히 기는 전략으로, 그는 G2의 하나를 G20 두렵지 않은 큰 형님으로 모시고 있다.
알고 보면, 그는 중국보다 더 큰 후원자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다. 민주화 세력이라면, 전국방방곡곡에 없는 데가 없다. 각계각층에서 이들은 주도권을 잡고 있다. 여기엔 63세대가 중심인 이명박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김영삼과 김대중과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고, 이들은 때로 권력을 두고 전략적 갈등관계에 있을지라도 반공이라면 지금도 이를 갈고 북한인권이라면 재빨리 먼 산을 쳐다본다. 자연히 이들은 10·4성명은 약간의 이견이 있을지라도 6·15선언은 대한민국 헌법보다 존중한다. 김정일이 보기에 이들은 '일사모'다. 지원세력 또는 응원세력 또는 쓸모 있는 바보들이다. 현상유지(status quo)만 되면, 이들은 잠시 술렁거리다가 고분고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되어 있고, 대화의 장에 나왔다 하면 김정일의 벼랑 끝 전술에 밀려 한 발 한 발 물러서게 되어 있다.
편지 한 통 주고 받지 못하게 하고 전화 한 통 주고 받지 못하게 하고, 단 한 명 자유왕래도 못하게 하고, 단 한 명 자유취재하지 못하게 해도, 일방적으로 김정일에게 유리한 동물원 관광과 식물원 사업은 감지덕지하여 절대 그만둔다는 말을 못한다. 도리어 김정일이 나가라고 큰소리친다. 쌀 주고 비료 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인도주의로 광고한다. 민족화해와 민족교류의 상징으로 자랑한다. 반공의 허구성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산 교육장으로 홍보한다. 도대체가 김정일을 위원장이라 부르지 않는 자는 한 줌도 안 되는 극우세력이요 군부독재의 잔재세력이다. 이 점에서 조선과 동아도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논다.
나쁜 행동에 대한 징벌이 사실상 아무 것도 없는데, 오히려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푸짐한 상품과 함께 그랑프리 표창장이 올라가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얼마나 신나랴. 스스로 자명고도 찢고 칼도 버리고 성문도 활짝 열어놓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군사든 경제든 외교든 모든 제재 수단을 스스로 버린 상태에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이 공산김씨왕조를 변화시킬 방법은 없다. 기껏 엄포에 대한 내성만 키워준다.
오냐 오냐 하다 보면, 다섯 살 응석받이도 어른의 상전으로 군림한다. 울고불고 악쓰고 떼써서 충족시키지 못할 욕구가 없다. 굶기나 자해행위(식량지원을 안 받겠다느니, 개성의 문을 닫겠다느니 등)마저 강력한 무기다. 뒤늦게 버릇 들인다고 다섯 살 응석받이가 한 끼 굶어도 모른 척하면, 어른의 상전은 아예 세 끼를 굶어 버린다. 그러면 부모와 조부모는 손이야 발이야 빈다. 이미 응석받이가 심리전의 고수임을 사랑에 눈먼 부모와 조부모만 모른다.
하물며 김정일은 어릴 때부터 소황제로 등극하여 20대 중반에 제2의 권력자가 되었다. 협박과 공갈, 감금과 테러, 전격적인 숙청과 극적인 사면 등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소풍가듯이 쉽게 절대권력자의 권좌에 올라섰다. 스스로의 완력은 이제 보잘것없지만, 절대권력을 결사옹위하는 완력(군사력)은 70만 대군의 팔을 단 한 방에 무력화시킬 정도로 강력해졌다. 아무 것도 한 일 없이 그저 민주, 대화, 화해, 평화, 민족, 통일 등을 입에 달고 다님으로써 크게 출세한 또 다른 응석받이들은 장군님이 헛기침만 해도 부들부들 떤다.
"오바마? 이명박? 하하하!"
김정일이 배꼽을 잡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유엔 제재? 한미공조? 랄랄라!"
오늘은 영변 약산 진달래, 내일은 백두산 밀영 개나리를 둘러보는 김정일의 콧노래가 들린다.
(2009. 4.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