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기준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적용될까? 선악의 기준은 도덕과 법률이다.
도덕은 사회 관습과 개인 양심이 조화를 이뤄 부드럽게 드러나거나 갈등을 빚어 거칠게 드러난다.
법률은 이론적 제도와 현실적 권력 사이에 위치한다. 이론적으로는 법률에 의해 성립된 제도가 권력에 우선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권력이 제도를 이끈다. 그래서 그저 그런 제도도 권력에 의해 빛나기도 하지만, 훌륭한 제도도 권력에 의해 빛이 바래는 수가 많다. 제도는 사법(司法)의 권위를 빌어 법치를 선호하고 권력은 정치의 이름으로 인치(人治)를 선호하기 마련인데, 권력이 인치의 유혹을 뿌리치고 법치에 순종하고 시대의 변화로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제도는 정당한 절차에 의해 권력 주변의 몇몇 사람만이 아니라 권력에 반대하는 세력을 포함하여 널리 중지(衆智)를 모아 기존의 법률은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여 새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권력이 제도를 무력화시키면, 제도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권력을 악의 화신이라 생각하지만 권력은 도리어 그런 사람들을 악의 앞잡이라 규정짓고 고무줄 법률에 따라 잡아가두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법률의 하위법인 규칙과 명령으로 그들을 옭아매어 사회적으로 생매장시키려 든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력의 입김이 강한 분야가 교육이다. 약 15년 전부터 교육계의 권력은 크게 셋으로 나눠졌다. 첫째는 교육계 관료이고, 두 번째는 정치인이고(제왕적 권력을 가진 한국의 대통령은 이 두 범주에 모두 포함됨), 세 번째는 전교조이다. 이들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하나는 암묵적 동의를 공유하지만, 다른 하나는 명시적으로 반대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공교육은 선이요, 사교육은 악’이라는 명제에는 셋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협동은 선이요 경쟁은 악’이라는 명제에는 좌파 정부에서는 셋 모두 동의했지만, 보수를 표방한 당에서 배출한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를 우파 정부라고 한다면, 이 우파 정부에서는 ‘경쟁은 선’이라는 명제를 정치인(주무부서의 정치 장관 포함)은 믿어 의심치 않지만 정부 관료는 중립을 지키고 전교조는 극렬하게 반대한다.
‘공교육은 선이요, 사교육은 악’이라는 명제는 전교조가 태동하기 약 10년 전부터 광범위한 동의를 얻었다. 전두환 정부가 전격적으로 도입한 재학생의 사교육 금지령은 법률의 하위 개념인 대통령령으로 강제한 특별법이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극도로 제한한 일종의 반민주적인 강제사항이었지만, 사교육 시장 외에서는 유례가 드문 박수를 받았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전두환 정권은 교육 소비자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한 대신 공교육에 많은 힘을 실어 주었다.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의 무제한 허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헌법이 마련되고 제도적으로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민주적 제도를 갖춘 후에 재학생의 사교육 금지령은 하나둘 폐지되거나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이 때 등장한 제3의 세력이 전교조이다. 그들은 사교육도 반대했지만, 공교육의 사교육화에도 극렬하게 반대했다.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은 공교육의 정상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로 보고 독재의 잔재로 보았다. 협동을 없애고 경쟁을 격화시키는 원흉으로 보았다. 그래서 전교조는 학원이나 과외에 비하면 저렴하지만 수익자 부담 원칙에 의해 돈이 학부모의 주머니에서 교사의 주머니로 서비스의 대가로 지불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부 부작용을 내부고발하여 마치 그것 때문에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하는 것처럼 하나둘 까발려 법률적이든 도덕적이든 교장과 교사의 권위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가했다. 정상수업만 하고 인간교육을 강화하면(이를 그들은 참교육이라고 함) 비인간적인 경쟁도 사라지고 부자에게 유리한 사교육도 사라진다고 전교조는 진심으로 믿었다. 인간적인 협동이 살아나고 가난한 자에게 유리한 공교육이 살아난다고 믿었다.
전교조가 정식으로 허용된 것은 김대중 정부이지만, 이미 전교조의 전신인 전교협 시절부터 전교조는 교육계의 제3 세력으로 부상했다. 하나의 권력으로서는 반대했지만, 그 후로 모든 정부는 전교조의 주장을 법률로 제도화하는 데 앞장섰다. 정상수업과 경쟁체제 완화와 사교육 무력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호언장담하면서 새로운 입시제도를 마련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동원되었다. 결과는 100전 100패! 수학능력시험도 그 중의 하나다. 종합적 사고능력을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사교육으로도 보충수업으로도 절대 점수를 올릴 수 없다고 큰소리쳤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말짱 거짓말이었다. 대한민국의 교육열에 의해 수능점수도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는 것이 금방 증명되었다. 그 사이에 수능점수 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교육 시장은 더욱 커졌다. 전교조의 입김에 의해 일선학교에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이 대폭 축소되자, 재학생의 선택권이 넓어진 상황에서 교육 소비자는 학원에 우르르 몰려갔다.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자, 발끈한 정부와 한 건 크게 잡으려는 정치계는 제왕적 대통령을 중심으로 그 후부터 오로지 교육의 목표는 사교육 박멸 정책밖에 없게 되었다.
입시문제를 쉽게 내고 대학문을 획기적으로 넓히면 사교육이 없어질 거라는 것도 전두환 정부가 내놓은 아이디어인데, 이것도 금과옥조처럼 지켜졌다. 대학입시에 중학 문제와 고1문제가 무더기로 출제되었다. 희극도 그런 희극이 없었다. 그러나 이것도 안 먹혔다. 전두환 시절에도 졸업정원제로 대학문을 넓히자 재학생의 학원 수강과 개인 과외는 좀 수그러들었지만, 이전에는 아예 대학을 포기할 학생들도 대거 입시전쟁의 전투부대에 자진입대함에 따라 전체적으로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교육을 박멸하는 확실한 방법이라며 몇 년 동안 문제 쉽게 내기와 대학문 넓히기는 금과옥조처럼 지켜졌다. 김영삼 정부의 대학설립자율화에 의해 아무나 대학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웬만한 학원 설립할 돈이면 대학을 세울 수 있었다.
입시과목 줄이면 경쟁이 그만큼 완화되고 사교육시장이 설 자리가 좁아진다는 것도 말짱 거짓말이었다. 오히려 이로써 공교육은 더욱 황폐화되었다. 입시에 들어가지 않는 과목이 많아짐에 따라, 학원은 오직 입시과목을 집중적으로 가르쳐서 더욱 호황을 누린 반면에 학교에서는 입시와 전혀 무관한 과목도 강제로 가르치니까 한 반에 한 명도 제대로 듣지 않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대여섯 명만 듣는 게 다반사다.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르는 듯 이명박 대통령은 과목을 확 줄이려다가 거센 반발을 받자 사회와 과학에서 각각 한 과목을 줄이기로 했다. 도끼와 거적때기를 들고 가서 ‘아니되옵니다, 그 이유는 이렇사옵니다!’라고 바른 말하는 자가 정부와 여당에 단 한 명도 없는 듯하다. 오히려 그를 잘 받드는 왕차관 왕수석 왕위원장 왕국회의원이 ‘지당하옵니다!’를 연발하는 모양이다.
전교조의 논리는 잘도 먹혀서 평준화도 지속적으로 늘었다. 학력(學力)이 천차만별인 학생을 입학정원이 졸업정원과 거의 같거나 그보다 적다는 이유로 유급제를 보완하던 연합고사마저 김영삼 정부는 서울에서부터 폐지하자, 한 학급의 학력 차이는 끝도 모르게 벌어졌다. 맞춤식 공부는 더욱 필요해졌다. 당연히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와 여당과 전교조의 말만 믿고 하기 싫은 공부는 제쳐놓고 인간답게 실컷 놀다 보면 신분 상승의 기회는 영영 사라졌다. 잘 사는 부모와 교육 수준이 높은 부모일수록 얼씨구나, 사교육에 더욱 매달렸다. 전에는 가난하고 못 배운 학부모의 자녀도 학교 공부만으로 명문대를 쑥쑥 들어갔지만, 정부와 여당과 전교조가 한 통속이 된 이른바 이해찬 세대부터는 재산에 이어 지식도 대물림하기 시작했다. 명문대에는 이제 못 사는 사람이 가물에 콩나물 나듯 드물다.
수시모집도 사교육 시장을 키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학업성적 외의 다른 부문으로 학생을 선발하라고 정부가 대학에 강요하자, 틈새시장이 블루 오션으로 떠올랐다. 대치동 학원은 강남을 넘어 서울을 넘어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이르렀다. 수능에서 점수 올리듯이 수시모집에서 성적 이외의 부문에서 점수 올리는 것도 돈을 두둑이 주면 위대한 프로들이 사교육 시장에서는 맞춤식으로 얼마든지 제공한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심지어 교육2번지 목동에서 대치동으로 맹모(孟母)는 자녀를 태우고 오간다. 학교의 정상수업으로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니까, 학원은 학교를 제치고 전문 입시기관으로 떠올랐다.
내신강화도 사교육 시장을 키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내신용 학원이 동네마다 생긴 것이다. 몇 년 간의 정기고사 문제를 분석하고 예상문제를 찍어주는 것은 기본이었다. 전 과목을 대상으로 학원에서는 입맛에 쏙쏙 들게 가르쳤다. 못 사는 학부모도 어이 자녀를 학원에 안 보내랴!
특수목적 고등학교에서 경쟁을 약화시킨다며 입시를 없앤 것도 사교육 시장을 키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내신의 비중을 아무리 높여도 과학고에서는 수학과 과학, 외국어고에서는 영어를 입시문제 안 닮은 문제로 내니까, 그것은 중학과정을 모두 훌쩍 넘었다. 그렇지 않으면 변별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강남의 내신 상위 1%와 강북의 내신 1%는 천양지차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고등학교로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변별력 있는 테스트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보고 이명박 정부는 아예 그런 테스트도 없애서 내신만으로 또는 추첨으로 전국에 100개의 자율학교를 세우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면 사교육이 없어진단다! 공부 잘하는 것이 죄이고 운 좋은 것이 최고라는 로또 만능 사고방식이다. ‘경쟁이 선’이라고 강변하다가, 갑자기 전교조의 말을 그대로 복창하여 ‘경쟁은 악’이라고 한 입으로 두 말한다. 죽도 밥도 안 되게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공교육은 선이고 사교육은 악이다.’
‘협동은 선이고 경쟁은 악이다.’
이런 독재적 발상과 독선적 사고방식부터 고쳐야 한다. 사교육보다 훨씬 못한데, 정부의 산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善) 그 자체라며 공교육은 한없이 과보호하고 사교육은 무슨 도둑질 가르친 것도 아니고 강도짓 시킨 것도 아닌데, 만악의 근원으로 낙인찍어서 정권만 바뀌면 이번만은 다르다며 권력의 칼을 마구 휘두른다. 그러면 공교육은 더욱더 엉망이 되고 사교육은 더욱더 경쟁력을 갖춘다.
협동농장에 협동이 없듯이 경쟁을 억압하면 경쟁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불공정 경쟁이 공정경쟁을 대체한다. 그런 데서는 만인이 만인을 의심하여 협동은 더욱더 멀리 달아난다. 경쟁은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절대 없앨 수 없다. 그러므로 공정한 경쟁을 장려해야 한다. 모든 스포츠는 경쟁이 생명이다. 그러나 그걸 보고 경쟁이 치열하다며 아예 없애자고 하는 자는 옛날의 모택동밖에 없었다. 그냥 운동만 하자고 하여 그 시절에 중공은 인구만 많았지 정말 스포츠를 못했다. 그런 스포츠가 재미있었을 리 없다. 왜 사람들은 스포츠에 열광하는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국적도 없고 인종도 없고 종교도 없다. 국제 룰에 따라 더 나은 실력을 발휘한 사람에게 영광이 돌아간다. 패배자도 심판만 공정하면 깨끗이 승복하고 승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정치권과 정부부터 교육에 대한 독점적 권력을 포기해야 한다. 만악의 근원은 사교육이 아니라 교육 권력이다.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와 여당 그리고 전교조다. 이 세 교육 권력은 서로가 미워하는 척하면서 공교육을 과보호하는 데는 일치단결한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어떤 집단보다 우수한 인재가 많이 모인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은 정부의 명령에 따르고 여당의 호통에 안절부절하고 전교조의 이념에 휘둘려 능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사교육의 노다지 평준화부터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
대학에 학생선발권부터 돌려 주어야 한다. 정부는 옛날의 예비고사처럼, 또는 영국의 A-레벨 시험, 독일의 졸업시험처럼 최소한의 간섭만 해야 한다. 중졸, 아니 초등학교 졸업 실력도 대학에 갈 수 있는 제도는 정부가 고쳐야 한다.
공교육이 선이고 사교육이 악인가? 그렇지 않다. 이 둘은 서로가 보완관계에 있다. 특히나 평생교육의 시대를 맞이하여 어떤 형태로든 사교육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학교가 못하는 것을 이들이 대신해 주니까, 감사해야 한다. 대학생과 회사원이 이젠 중고등학생 못지않게 사교육에 의존한다. 해외로는 더 나간다. 왜 그건 가만 내버려 두는가.
전두환 정부의 성공을 사모하고 시기하여 사교육 때려잡겠다는 불가능한 인기영합주의에 사로잡히는 한, 공교육은 더욱 황폐화되고 그만큼 사교육 시장은 커진다. 공교육을 매력적으로 만들어 교육소비자를 유혹해야 한다. 선전선동하고 강제하는 것은 독재다. 교육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독재 국가다. 교육의 3대 권력자인 정부와 여당과 전교조는 자신의 잘못부터 깨달아야 한다. 교육독재의 결과 교육에 관한 한, 4800만이 저마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은 선이지만, 다른 사람과 집단과 제도와 권력은 모조리 악이라고 양심을 걸고 진심으로 믿는다.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2009. 5. 2.)











